현장설명회

慶州 德泉里遺蹟 發掘調査Ⅱ 경주 덕천리유적 발굴조사Ⅱ

시대 청동기,원삼국,삼국,통일신라,조선
성격 생활,분묘
회수 1
개최일자 2006.10.25
조회수 4,596
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38


경부고속철도 경주 덕천리 건설구간내
慶州 德泉里遺蹟 發掘調査Ⅱ


Ⅰ. 調査槪要

1. 유적위치 :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2리 484-2 일원
2. 조사기간 : 2004년 6월 18일~2006년 11월 11일(예정)
3. 조사면적 : 35,320㎡
4.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이백규)
5. 조사의뢰기관 : 한국철도시설공단

Ⅱ. 調査經過

경주 덕천리Ⅰ유적 조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추진하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형질변경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과 국립경주박물관이 공동으로 1996년 10월 17일~1996년 12월 4일에 걸쳐, 경주 경유구간 68㎞의 3개 노선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새로 선정한 제 4안(화천리노선)에 대하여 1997년 1월 6일~1997년 1월 1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추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덕천리유적은 추가 지표조사에서 유적의 분포가 예상되어 시굴조사(2002. 11~2003. 3)를 통해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다. 발굴조사는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4년 6월 18일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2004년 10월 29일(5구역), 2005년 12월 8일(1~3구역)에 1·2차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개최하였다. 현재 청동기시대 주거지, 원삼국시대 목관묘, 삼국시대 수혈·구·유물포함층 등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Ⅲ. 遺蹟의 立地및 考古學的環境

덕천리유적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덕천 2리 484-2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덕천들과 이조천이 연결되는 자연부락주변이다. 이 지역은 경주중심지를 기준으로 보면, 서남방면의 교통로상에 위치하며, 이 일대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유적이 위치한 덕천들을 중심으로 북쪽은 벽도산(해발 423m)에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에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이조천이 형산강과 합류하면서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이들 주변의 평지와 구릉지대에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주변유적으로는 덕천리지석묘, 월산리지석묘, 상신리지석묘, 월산리유적(國立慶州文化財硏究所, 2003), 월산리Ⅱ유적(蔚山大學校博物館, 2002), 덕천리Ⅱ유적(신라문화유산조사단, 2006) 등의 선사유적과 경덕왕릉(사적 23호)을 비롯한 덕천리고분군, 부지리고분군, 부지리와요지, 부지리유물산포지, 덕천리유물산포지, 이조리유물산포지, 덕천리야철지 등의 역사유적이 지근거리에 분포하고 있다. 또한 최근 발굴조사에서 기마인물형토기와 각종 이형토기가 출토된 덕천리적석목곽묘(中央文化財硏究院, 2005)가 인접하고 있다.

Ⅳ. 調査內容

가. 層位
덕천리유적은 하상퇴적에 의한 선상지에 유구가 형성되어 있다. 현재는 경지구획정리로 인해 원지형이 부분적으로 삭평되어 해발 62~63m의 평지를 이루고 있지만, 원지형은 형산강이 위치한 동쪽으로 갈수록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청동기시대 유구와 원삼국시대 분묘가 위치한 유적 중앙부분이 조금 높고 남쪽과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1구역, 5구역, 6구역에서는 삼국시대유물이 포함된 흑갈색사질점토층과 조선시대유물이 포함된 갈색사질점토층의 간층이 확인되기도 한다. 유구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다양하게 확인되지만, 원지형의 훼손이 심하여 시기와 상관없이 대부분이 역석층과 암갈색사질점토층에서 확인되며 문화층은 찾기 어렵다.

나. 遺構
덕천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 등 여러 시대에 걸쳐서 다양한 유구가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수는 300기이며 출토된 유물수량은 약 2,347점이다.

1) 靑銅器時代
(1) 住居址
주거지는 25동이 확인되었으며 19동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평면형태에 따라 세장방형(11호), 장방형(2호, 7호, 8호, 10호, 12호~16호, 17호, 20호), 방형․말각방형(1호, 6호, 9호)으로 구분되며, 그 외 3호․4호․5호․19호주거지는 삭평되어 평면형태를 알 수 없다. 세장방형주거지인 11호주거지의 규모는 현길이 1,250㎝, 너비 452㎝, 잔존깊이 30㎝이며, 장방형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530~742㎝, 너비 338~357㎝, 잔존깊이 8~65㎝이며, 방형과 말각방형주거지는 길이 275~438㎝, 너비 225~314㎝, 잔존깊이는 13~21㎝이다.
내부시설로는 주혈, 노지, 벽구 등이 확인된다. 주혈은 배치상에서 뚜렷한 정형성을 보이지 않는다. 노지는 3호․4호․5호․6호․8호․12호~15호․17호주거지에서 확인되며, (타)원형 또는 부정형의 토광형노지로 대부분 주거지의 서편에 위치한다. 상면처리는 2호․8호․11호․14호․20호주거지의 경우, 불다짐 처리를 하였고, 나머지 주거지는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14호주거지는 상면과 함께 벽면을 2~3㎝ 두께로 불다짐하였다. 바닥면을 불다짐한 주거지의 비율은 27%를 차지하는데, 이는 방습과 제습을 위한 방법으로 판단된다. 폐기는 화재폐기된 2호․11호․14호․20호주거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연폐기되었다. 15호주거지는 자연폐기되고 일정기간이 경과하고 돌무더기(집석)가 유입된 양상이다.

2) 原三國時代
원삼국시대 분묘 관련 유구의 분포는 유적의 가운데부분(2~4구역)에 집중적으로 조영되었다. 대다수의 유구는 경지구획정리에 의한 삭평으로 경작교란층 제토과정에서 토기가 노출되며, 목곽묘의 경우는 묘광선과 목곽선이 함께 확인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목관묘 11기, 토광묘 2기, 목곽묘 122기, 옹관묘 65기, 불명유구 24기, 토기매납유구 9기, 수혈 2기 등이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분묘군은 크게 목관묘단계와 목곽묘단계로 나눌 수 있다. 목관묘단계의 무덤은 분묘군의 남동편에 별도의 묘역을 가지고 옹관묘와 함께 조영되었다.

(1) 木棺墓
목관묘는 현재 11기가 확인되었으며 4기가 조사완료되었다. 목관묘는 분묘군의 남동쪽에 독립적으로 조영되었으며, 목곽묘군과 구분된다. 목관묘는 규모와 주축방향에 따라 다음과 같이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Ⅰ유형은 대부분이 ‘ㅡ’자형 또는 ‘ㄷ’자형, ‘ㅁ’자형에 단절적인 주구가 확인되며, 주축방향이 N-31°~53°-E로 목곽묘와 소형목관묘의 방향과는 차이를 보인다. 규모는 묘광이 길이 292~381㎝, 너비 148~167㎝, 깊이는 40~117㎝로 목곽묘에 비해 깊은 편이다. 목관의 규모는 길이 256~276㎝, 너비 93~128㎝이며, 높이는 남아있는 충전토의 높이에서 35㎝이상으로 추정된다.
덕천리 Ⅰ유형 목관묘의 축조방법과 유물 부장상에서 보이는 몇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묘광의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묘광은 1단으로 굴착하였다.
둘째, 유구의 묘광선 확인시 묘광선 안쪽으로 두께 10~30㎝의 황갈색사질점토로 구성된 띠가 돌아가며, 이 띠는 토층상에서󰡐U󰡑자상으로 묘광내부로 가면서 두터워지면서 목관 바닥 부근까지 함몰되고 있다. 기본토층은 ①암갈색사질점토층-②황갈색사질점토층-③흑갈색점토층 순으로 함몰층위가 형성되어 있으며 목관과 묘광 사이는 회황갈색사질점토로 충전하였다. 충전토는 관내부쪽으로 일부 붕괴되어 삼각형모양을 띠며, 잔존 높이 15~35㎝, 너비 25~30㎝정도이다. 바닥과 충전토 안쪽면에는 회갈색의 점토띠가 형성되어 있다. 132호묘와 133호묘의 토층에서는 ①과 ②층이 역전되거나 서로 지그재그로 물려 함몰된 양상과 함께 목관상부의 충전토가 토층상에서 명확하게 관찰되지 않는다. 이러한 토층양상으로 볼 때, 목관묘 축조는 묘광을 판 후, 목관을 안치하고 목관과 묘광사이를 묘광 굴착시 나온 흙으로 충전하고, 목관위에는 흙을 채우지 않고 비워둔 상태로 목개를 얹고 봉토를 조성하였거나 목관상부에 부분적으로만 충전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Ⅰ유형 목관묘는 목관의 규모가 크고, 관내에 토기와 철기유물을 부장되는 목곽묘적인 요소가 보이는 점이 특징적이다. 토기는 두향인 동단벽쪽 목관 내에서 출토되며, 철기도 시신의 왼편에 부장되고 있다. 유물은 토기의 경우, 전기와질토기단계의 점토대옹, 무문토기옹, 주머니호, 단경호 등이 출토되며, 철기는 철촉, 철모, 철부, 판상철부 등이 출토되었다.
Ⅱ유형은 목곽묘의 주축방향과 동일한 동서방향을 기본축으로 하는 소형묘로 목관의 형태에 따라 판재식 목관(123호묘, 124호묘, 125호묘)과 통나무식 목관(126호묘, 127호묘)으로 구분된다. 판재식 목관묘의 규모는 묘광이 길이 213~267㎝, 너비 79~104㎝, 잔존깊이 33~50㎝이하이며, 목관이 길이 160~191㎝, 너비 45~58㎝이다. 통나무식 목관묘의 규모는 묘광이 길이 213~267㎝, 너비 79~104㎝, 잔존깊이 40~44㎝이다.

(2) 土壙墓
128호와 129호는 묘광의 규모가 작고 토층에서 충전토와 관아래에 띠상의 회갈색점토층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관을 사용하지 않고 시신을 그냥 매장한 것으로 추정하여 토광묘로 분류하고자 한다. 시기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지만 Ⅱ유형 목관묘 묘역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Ⅱ유형 목관묘와 동시기로 판단된다.

(3) 木槨墓
목곽묘는 122기가 조사되었다. 개별 무덤은 유물에서 약간의 시기차이를 보이지만 중복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큰 시기차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목곽묘의 평면형태는 장단비가 2.5:1내외의 장방형과 3:1이상의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세장방형은 유물의 배치양상에서 단곽식과 주부곽식으로 나눌 수 있으나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장방형목곽묘는 묘광이 장축 143~520㎝, 단축 70~208㎝, 잔존깊이 5~35㎝이며, 목곽이 장축 108~461㎝, 단축 46~151㎝이다. 세장방형목곽묘는 묘광이 장축 346~600㎝, 단축 112~195㎝, 잔존깊이 8~24㎝이며, 목곽이 장축 305~560㎝, 단축 80~157㎝이다. 목곽의 높이는 삭평으로 인해 알 수 없다. 목곽의 주축방향은 모두 동-서방향을 기본 축으로 하며, 두향은 동향으로 판단된다. 유물의 부장은 발치쪽인 서단벽쪽에 토기를 부장하고 머리쪽인 동쪽에 철기를 부장하였다.
토기는 경지정리로 인해 동상반부 또는 구연부가 대부분 결실되었다. 철기는 대부분 시신의 좌․우측 또는 머리위쪽에 부장하였는데, 3호묘, 19호묘, 33호묘, 120호묘 등은 시신 아래에 철모를 10여점 이상 깔았다.
목곽의 축조는 묘광을 판 후, 바닥에 초본류를 깔고, 목곽을 안치하고 굴착한 흙으로 묘광과 목곽사이를 충전하였다. 봉토가 남아 있지 않지만 90호묘, 92호묘에서 주구가 확인되는 점에서 일부는 어느 정도의 봉토와 묘역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적인 유구로는 목곽을 불에 태운 19호묘를 들 수 있다. 목탄은 주곽의 철기유물 상부에서 길이 30~70㎝, 폭 10~30㎝, 두께 1㎝ 내외의 판재형 목탄이 장벽과 평행하게 확인되며, 철기 아래쪽에서 목탄부스러기가 확인된다. 상부의 목탄은 유물과 벽면에 불 맞은 흔적이 없는 점에서 목곽을 넣기 전에 그을린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의 목탄은 철기 뒷면에 초본류와 노끈흔이 남아 있는 점에서 묘광굴착 후, 바닥에 불을 질러 목탄을 깔고 발처럼 엮은 초본류 위에 철기를 부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행위는 목곽의 건조와 방습을 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4) 甕棺墓
옹관묘는 65기가 조사되었다. 옹관묘는 목관묘의 묘역 내에 조영된 목관묘단계의 옹관묘(57호, 59호, 62호, 63호, 64호, 65호)와 목곽묘단계의 옹관묘로 구분된다. 목관묘단계의 옹관묘는 공동묘역내에서 묘역이 분리된 형태이고, 목곽묘단계의 옹관묘는 목곽묘군 내에 고르게 분포하며 다른 묘제와 관련 없이 독립적으로 매장된 獨立甕棺墓, 주묘제에 인접한 陪葬甕棺墓가 모두 확인된다.
목관묘단계의 옹관묘는 모두 합구식이며, 묘광의 규모는 길이 88~149㎝, 너비 55~85㎝, 잔존깊이 5.5~48㎝이다. 주옹은 장동옹, 대호, 시루 등을 사용하였고, 막음옹은 무문토기옹, 점토대옹, 장동옹, 단경호 등을 사용하였다. 목곽묘단계의 옹관묘는 합구식 56기, 단옹식 3기이며, 규모는 길이 64~143㎝, 너비 37~98㎝, 잔존깊이 6~37㎝이다. 옹관의 주축방향은 대부분 목곽묘와 동일하게 동-서방향을 기본축으로 하며, 두향은 동향으로 판단된다. 합구식은 대다수가 동편에 주옹이 서편에 막음옹이 위치한다. 주옹은 장동옹, 단경호, 발, 대호, 시루(파수부발) 등을 사용하였고, 막음옹은 (파수부)발, 단경호, 장동옹, 노형토기 등을 사용하였다. 단옹식은 대호 또는 장동옹을 사용하였으며 구연부를 서향으로 매납하였다.
옹관묘는 옹관 그 자체의 크기를 기준으로 장법과 피장자 주체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덕천리유적의 옹관묘도 시신을 伸展葬한 1차장으로 판단되며 옹관의 길이가 45~103.5㎝인 점을 볼 때, 4세 이하의 유아 또는 신생아의 묘로 추정된다.

(5) 土器埋納遺構
토기매납유구는 9기가 조사되었다. 토기매납유구는 定置 또는 倒置된 상태로 토기가 매납되는 점에서 옹관묘와는 구별되며 주로 대호를 매납하였으며, 단경호와 발을 매납한 경우도 있다. 평면형태는 원형 또는 타원형을 띠며, 규모는 길이 32~125㎝, 너비 32~122㎝, 잔존깊이는 14.5㎝미만이다.

(6) 不明遺構
불명유구는 부정형, 원형, 타원형을 띠며, 규모는 길이 104~470㎝, 너비 74.5~184㎝, 잔존깊이는 25㎝미만이다. 유물은 대호, 단경호, 노형토기, 컵형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불명유구의 성격은 분묘와 인접하여 토기를 매납한 점에서 토기매납유구와 유사하나, 토기를 인위적으로 깨트려 훼기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 遺物

덕천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 등 여러 시대에 걸쳐서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300여기의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수량은 약 2,347점이다.

1) 청동기시대
유물은 주거지, 수혈, 구, 집석유구 등 생활유구에서 발, 호, 홍도 등 토기류 82점과 석부, 석도, 지석, 석착, 미완성석기, 박편 등의 석기류 75점, 토제방추차 4점 등이 출토되었으며 대다수가 주거지 출토유물이다. 유일한 분묘유구인 1호석관묘에서 홍도 1점, 무경식석촉 2점, 유경식석촉 1점, 미완성석검 2점과 함께 인골의 부스러기가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시기는 내부구조와 출토된 발(공열문, 구순각목문+공열문, 공열문+단사선문, 이중구연단사선문)과 호(단사선문)의 문양구성과 석기유물을 통해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의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2) 원삼국시대

(1) 목관묘
목관묘 출토유물은 Ⅰ유형 목관묘와 Ⅱ유형 목관묘의 유물로 구분된다. Ⅰ유형 목관묘에서 출토된 토기는 무문토기와 와질토기로 나눌 수 있는데 서로 공반되어 출토되고 있다.
130호묘에서 와질단경호와 점토대옹, 131호묘에서 주머니호와 무문토기옹, 133호묘에는 와질단경호와 무문토기옹, 134호묘에서 단경호와 와질옹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모두 머리쪽인 북동단벽의 목관 내에 부장된 것으로 판단된다. 철기가 출토된 유구는 130호묘로 철모 2점, 철겸 2점, 무경식철촉 2점, 판상철부 1점이 출토되었다. 판상철부는 충전토 위에 놓여진 것이 안쪽으로 떨어진 것으로 판단되며 나머지 철기유물은 시신의 오른쪽 관내에 부장된 것으로 판단된다. 경식은 유리제 환옥으로 130호묘와 131호묘의 둥단벽쪽에서 확인되며, 130호묘에서는 수정제의 환옥 1점을 포함하고 있다.
131호묘 무문토기옹은 원저로 동하반부에서 구연까지 부드럽게 내만하며, 구연부는 짧게 외반한다. 133호묘 무문토기옹은 평저로 동하반부가 약간 불룩하고 구연을 바깥쪽으로 말아 손으로 눌러 마무리 하였다. 점토대옹은 뚜렷한 굽이 없는 평저로 동체가 동하반부에서 구연까지 부드럽게 내만하며, 구연부에는 삼각형의 점토대를 부착하였다. 와질 단경호는 동하반부가 불룩하고 경부가 직립하다가 구연부는 짧고 외반하며 구연단이 편평하다. 133호묘 출토 단경호는 횡침선이 돌아가는데 정연하지 못하다. 출토유물의 공반관계와 개별 유물의 형태를 통해 볼 때, Ⅰ유형 목관묘는 전기와질토기의 이른 단계로 설정되며 그 중심연대는 1세기대로 판단된다.
Ⅱ유형 목관묘에서는 청동제대구와 철모, 철부, 무경식철촉, 유리제환옥으로 구성된 경식이 출토되었다. 청동제대구는 124호묘에서 마형대구 1점, 127호묘에서 호형대구 1점이 출토되었다. 철기는 125호묘 출토품으로 충전토 내에서 철모 1점과 무경식철촉 9점, 북장벽쪽 목관내에서 철부 1점이 출토되었다. 경식은 모두 동단벽쪽에서 출토되었으며 유리제환옥으로 구성되었다. 124호묘와 127호묘에서 출토된 마형대구와 호형대구는 형상의 사실적인 표현이나 문양의 시문부위와 구성에서 A.D 1세기 무렵의 영천 어은동 출토품의 다음 단계로 김해 구지로 42호 석곽묘, 경주 조양동 60호묘 출토품과 유사하며, 127호묘 호형대구는 사라리 130호묘 출토품보다 약간 후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Ⅱ유형 목관묘의 연대는 2세기대로 보아진다.


(2) 목곽묘
유물은 토기 535점, 철기 554점, 유리․보석류 29연 3점, 토제방추차 13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대부분 서단벽쪽(발치쪽)에 부장되며 일부 장벽의 가장자리 또는 동단벽쪽에 소형토기가 부장되기도 한다. 토기는 (유개)단경호, (유개)대부광구호, (유개)대부직구호, (유개)노형토기, 고배, 양이부호, 양유부호, 발, 파수부호, 장동호, 개 등이 주를 이루며, 특히 고배가 출토된 목곽묘는 51%(133점)로 높은 비율을 보인다.
특징적인 유물로는 16호(2점)․70호(1점)․80호묘(3점)․100호묘(1점)․120호묘(4점)에서 출토된 오리모양토기와 110호묘에서 출토된 有蓋半圓筒形土器를 들 수 있다. 오리모양토기는 출토 예가 아주 드문데 반해, 본 유적에서는 11점이 출토되어 덕천리집단의 우월성과 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철기는 환두대도, 유자이기, 철모, 철부, 판상철부, 철겸, 따비, 철촉, 철착, 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환두대도는 12호묘․15호묘․19호묘․39호묘․80호묘․82호묘에서 각 1점이 출토되었다. 각기 출토되는 철기유물의 부장위치를 살펴보면, 가장 많이 출토되는 철모(189점)는 시신이 안치되는 동편에 무덤의 단축과 평행 또는 직교되게 목곽의 가장자리에 부장되거나 시신 아래에 10여점을 깔고 있다. 환두대도는 시신의 머리 윗부분에 부장되는 경우(12호묘, 19호묘), 시신 오른편에 부장되는 경우(15호묘, 39호묘, 82호묘), 시신의 왼편에 부장되는 경우(80호묘)로 볼 때 착장용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철부, 철촉, 철겸, 따비의 부장은 시신을 중심으로 머리, 허리, 발 등 다양한 위치에서 출토된다. 유리․보석은 수정제곡옥, 수정제다면옥, 수정제절자옥, 마노제다면옥, 유리제환옥으로 구성된 경식이 주를 이루는데, 15호․24호묘에서는 금박구슬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19호묘에서는 발치쪽에서 수정제다면옥 2점과 수정제곡옥 1점이 경식과 별도로 출토되었다.
토제방추차는 1호묘, 70호묘, 84호묘, 89호묘, 94호묘, 113호묘, 116호묘에서 총 13점이 출토되었다.
목곽묘단계는 방형목곽묘는 확인되지 않으며, 장방형목곽묘에서 세장방형의 경주식목곽묘로 이행하는 단계이다. 목곽묘간의 중복이 없는 점과 대부광구호, 노형토기, 대부직구호, 고배, 양이부호 등의 후기와질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그 중심 연대는 3세기대로 판단된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본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선상지에 형성된 저지성취락으로서 이 시기의 주거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2. 현재까지 경주 인근의 원삼국시대의 분묘는 경주분지의 황성동유적을 중심으로 영천 방면의 사라리유적, 포항 방면의 안계리․옥성리유적, 울산 방면의 조양동․구정동․죽동리․입실리유적 등 동서남북의 교통로상에 분포하고 있다. 이번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언양 방면의 덕천리유적의 존재는 초기신라 사로국의 모체가 되는 새로운 집단의 존재를 확인한 점에서 그 의미가 크며, 1세기~3세기대의 초기신라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3. 덕천리유적에서는 목관묘, 목곽묘, 옹관묘 등의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장유물을 통해 당시의 묘제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주구가 딸린 목관묘는 새로 확인된 것으로서 주구의 구조와 성격에 대해서는 주목된다.

4. 덕천리유적의 목곽묘 16호묘, 70호묘, 80호묘, 100호묘, 120호묘에서 출토된 오리모양토기와 목관묘 124호묘와 127호묘에서 각각 출토된 마형대구와 호형대구는 당시 분묘 피장자의 지위를 알려주는 위세품으로서 덕천리집단의 성격과 정치적 지위를 이해하는데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130호묘 전경
마형대구
호형대구
유적전경
유적위치도
유구배치도
주거지 11,13,14,20호
2,3구역 전경
원삼국시대 유구배치도
목관묘 130호
목관묘 131,132,133,134호
목관묘 124,127호
목곽묘 80,90,110,120호
옹관묘 57,62,6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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