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鳳舞洞遺蹟 發掘調査 대구 봉무동유적 발굴조사

시대 삼국,통일신라,조선
성격 생활,분묘,도로
회수 15
개최일자 2005.12.29
조회수 1,682
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37


대구 봉무지방산업단지 1단계 조성공사부지내
大邱 鳳舞洞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360번지 일원
2. 조사기간 : 2004. 12. 20. ~ 2006. 6. 17.
3. 조사면적 : 29,979㎡
4.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李白圭)
5. 조사의뢰기관 : 대구광역시종합건설본부


Ⅱ. 調査對象地域의 立地와 環境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에서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가로질러 팔공산방면으로 향하는 도로(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의 동쪽과 서쪽 일대에는 봉무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봉무지방산업단지는 이 넓은 봉무들 일대에 조성될 예정이고, 이번 조사대상지역은 봉무지방산업단지 1단계 조성공사부지내에서 확인된 유적 중에서 시굴조사시 Ⅰ구역의 중앙부분에 해당된다. 조사대상지는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360번지 일원으로 최근까지 농원, 논, 미나리밭 등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자연 지리적 환경을 살펴보면 조사대상지역은 문암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다가 다시 서쪽을 향해 소구릉을 이루며 남북으로 여러 갈래 나뉘어지는 능선의 말단부 일대와 금호강을 향해 펼쳐진 평지에 위치한다. 조사대상지를 중심으로 북동쪽으로는 일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인 丹山池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금호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다가 동에서 서로 굽이쳐 흐르고 있다. 명치 28년(1895)과 대정 4년(1915)에 발행된 지형도를 살펴보면, 조사대상지역인 봉무들 일대는 금호강의 진행방향 및 유역에 있어 현재의 모습과 크게 차이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다만 금호강과 인접한 동쪽지역의 상당부분이 경작되지 않고 강변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당시에 하천의 범람에 의한 영향을 자주 받는 곳이어서 경작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봉무공원 진입도로를 중심으로 북쪽일대는 1960년대 경지정리가 이루어지기전까지는 금호강의 범람으로 단산마을 앞까지 강물이 밀려져 왔으며, 이 일대는 큰 늪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조사대상지역의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 유적을 살펴보면, 북동쪽에는 단산마을 북쪽의 나지막한 구릉 일대에 위치한 단산고분군이 있고, 동쪽 구릉일대는 아주 넓은 범위에 걸쳐 봉무동 고분군이 위치한다. 봉무동 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의 남쪽인 경부고속도로 건너편 일대에는 이 지역의 삼국시대 중심고분군인 불로동 고분군(사적 262호)이 위치하고 있다. 또, 서쪽으로는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부지내유적에서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영남문화재연구원, 2004,「대구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문화재 발굴조사 약보고서」). 이외에도 조사대상지 주변으로는 봉무토성, 봉무동 원삼국시대유물산포지, 검단토성 등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조사대상지 동쪽에 위치한 봉무동고분군과 이 주변으로 분포하고 있는 불로동고분군에 대한 기존의 조사성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봉무동고분군은 경부고속도로 금호-동대구간 8차로 확장공사 구간에 분포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고분군의 남쪽 가장자리 일부분이 조사되어 삼국시대 석곽묘, 석실묘 등이 확인(慶尙北道文化財硏究院,『琴湖-東大邱間 京釜高速道路 擴張區間內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2001)된 바 있고,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봉무동 고분군의 서쪽능선이 조사되었다(영남문화재연구원, 「대구 영신초․중․고등학교 이전예정부지내 대구 봉무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집-」, 2004). 그리고 불로동고분군에 대한 조사로는 1938년에 解顔面古墳이란 이름으로 2기가 조사되었고(齊藤 忠, 「大邱附近に於ける古墳の調査」『昭和十三年度 古蹟調査報告』, 1940, 朝鮮古蹟硏究會), 1963년에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不老洞 甲․乙號墳을 조사한 바 있다(金英夏․尹容鎭, 『仁洞․不老洞 高靈古衙古墳發掘調査報告』, 1966, 慶北大學校博物館). 그리고 2002년에는 불로동고분군 91․93호분 및 주변 석곽묘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大邱不老洞古墳群 發掘調査報告書』, 2004).


Ⅲ. 調査內容

1. 조사경과

이번 조사는 대구광역시종합건설본부에서 동구 봉무동 262-3번지 일원에 대하여 봉무지방산업단지 조성공사를 계획하고, 공사추진을 위해 본 연구원에 사전 지표조사를 의뢰하여 2000년 3월 2일부터 4월 30일까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지표조사결과 지상에 드러난 유구 및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주변에 불로동 고분군․봉무동 고분군 등 많은 유적이 위치하고 있어 이 일대는 매장문화재의 분포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판단되었기에 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후 봉무지방산업단지 전체구간 중 진입로구간에 대한 시굴조사가 2002년 9월 2일부터 10월 30일까지 실시되었다. 시굴조사 결과에 따라 유구가 확인된 일부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결과 삼국시대 도로유구 및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봉무지방산업단지 1단계 조성공사부지(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를 중심으로 도로의 동쪽부분과 북서쪽 배수펌프장부지)에 대한 시굴조사가 2004년 5월 6일부터 9월 10일까지 실시되었다. 시굴조사결과 진입도로의 동쪽 Ⅰ구역 전체구간과 Ⅱ구역 남쪽일부구간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원삼국시대 주거지․삼국시대 생활유구 및 고분군, 그리고 조선시대의 생활유구에 이르는 대규모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이번에 실시하고 있는 발굴조사는 봉무지방산업단지 1단계 조성공사부지내에서 확인된 유적 중에서 시굴조사시 Ⅰ구역의 중앙부분을 조사대상으로 하는 발굴조사이다. 이번 조사대상지는 삼국시대 생활유구와 생산유구, 매장유구 등 다양한 성격의 유구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유적으로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로부지유적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도로유구, 생활유구와 연결되고 있다.


2. 조사방법

가. 퇴적토제거: 현장조사 착수시 우선적으로 조사대상지역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동시에 조사대상지역의 조사전 상태를 촬영 및 기록하고, 유구가 확인된 시굴트렌치를 정리하여 확인된 유구의 최상면까지 제토함을 원칙으로 하였고, 주변에 위치한 유적에 대한 성격파악을 한 후 조사대상지역의 조사전 상태를 촬영 및 기록하고, Grid구획 및 퇴적토 제거를 위한 정지작업을 실시하였다. Grid구획은 시굴조사시 설치한 트렌치의 설치방향과 평행․직교되게 50×50m 단위로 구획한 후 남동쪽을 기준으로 1Grid라 명명하고, 서쪽으로 가면서 2, 3, 4Grid로 연번을 주어 북서쪽 Grid까지 총 14Grid로 나누어 구획을 하였다. 그리고 각 Grid의 사이에는 폭 3m의 둑을 남겼고, 개별 Grid내 25m지점에는 폭 1m의 둑을 십자상으로 남겨 토층파악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조사는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 중 중요성이 인지되고, 장기간 조사기간이 필요한 남서쪽의 조사를 먼저 진행하였으며, 유구의 최상면까지 전면 제토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나. 유구확인 및 내부조사 : 각 Grid별로 표토제거 후 유구확인작업을 실시하였고,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였다. 그리고 유구의 규모에 맞추어 내부에 십자상 또는 일자상의 둑을 설치하였고, 그 둑에 붙혀 트렌치를 설정하여 토층을 파악하면서 층위별로 내부토를 제거하였다.

다. 유적․유구의 기록 및 사진촬영 : 조사내용, 주변현황 및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기록지 및 조사일지를 기록하고 조사완료된 유구에 대해서는 평․단면도 실측을 하였으며 이를 통한 유구배치도를 작성하였다. 사진촬영은 조사대상지에 대한 전체전경 및 개별 유구에 대한 조사단계별(조사전․조사중․조사완료 등)로 칼라․슬라이드․디지탈카메라를 이용하였고, 조사진행에 맞추어 적절한 시점에 유적․유구에 대한 공중촬영을 실시하였다.


3. 조사내용

가. 층위
유적의 지형은 동쪽부분이 구릉사면의 말단부로 높고, 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데 후대의 경작에 의해 계단상으로 원지형이 많이 파괴된 상태이며, 계곡부가 만나는 골짜기 지점인 남서쪽은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전체적인 층위는 상층부터 살펴보면 후대의 복토된 갈색사질점토의 표토층, 그 아래는 최근까지 이용된 논과 미나리밭 경작층인 회갈색점토와 황갈색사질점토층과 황갈색산화층이다. 이 경작층은 여러 번의 경지정리작업을 거치면서 반복되어 퇴적되어 있고, 계단상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 아래는 유구가 형성된 층으로 동쪽과 중앙부분은 경작층 아래가 바로 기반층으로 점토가 많이 섞여 있고 점성이 강한 명황갈색사질점토층이다. 서쪽의 일부는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갈색사질점토인 퇴적층 위에서 유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그 아래층은 암갈색과 흑갈색의 점토층으로 기반층이다. 유적의 남서쪽은 회흑색점토의 습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층내에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고, 그 상부의 퇴적층 위에는 다량의 유물을 포함하는 암갈색사질점토층이 형성되어 있다.

나. 조사내용
현재까지 유적내에서 확인․조사된 유구는 도로유구, 바퀴자국, 목탄요, 수혈유구, 고상식건물지, 구상유구, 석실묘, 석곽묘, 습지 등 성격이 다양하다. 유구배치상의 특징은 봉무동 고분군 능선의 서쪽끝자락에 해당하고 유적내에서는 동쪽으로 치우쳐서 석실묘와 석곽묘가 확인되었고, 중앙부에서는 수혈유구, 구상유구, 고상식건물지, 주혈군 등의 생활유구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그리고 유적의 남서쪽에서는 북동쪽으로 향하는 도로유구와 바퀴흔적이 길게 이어져 조사되었고, 습지가 조성된 남서쪽 부근의 능선사면에서는 목탄요 2기가 조사되었다.

1) 유구
가) 도로유구
도로유구는 유적 내에서 시기차이와 방향성, 축조방법 등을 토대로 하여 1호와 1-1호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도로유구 1호는 북동-남서방향으로 진행하는 主道路로, 보강 및 보수하여 도로를 오랫동안 사용하였음을 조사시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의 남서쪽 8Grid에서부터 북동쪽의 11․ 13․14Grid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서 확인된다. 도로유구 1-1호는 主道路를 따라서 진행하다가 유적의 북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꺾여지는 고려시대 이후에 조성된 도로이며, 현재 13․14Grid에 걸쳐서 확인된다.

1층 : 근대경작층
2.5Y 5/1 황회색 사질점토
2층 : 근대경작층
10YR 5/4 황갈색 사질점토
2-1층 : 근대경작층
10YR 5/4 황갈색 사질점토
2-2층 : 근대경작층, 망간다량포함
10YR 6/6 명황갈색 사질점토
3층 : 도로유구 1-1호 내부토(고려시대이후층)
2차 도로보수흔
황갈색사질토+10YR 7/1 회백색사질점토
4층 : 도로유구 1호 내부토
10YR 5/2 회황갈색 사질점토
5층 : 생토층
10YR 6/8 명황갈색 사질점토

① 도로유구 1호
유구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진행하는 직선도로이다. 남서쪽은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2004, 「대구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문화재 발굴조사 약보고서」)에서 조사된 도로유구와 연결되며, 북쪽은 조사경계구역 바깥으로 연장되고 있다. 도로의 규모는 길이 143m, 너비 300~520㎝ 정도이며, 생토층인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에 15~40㎝ 내외의 천석․할석이 1~2단 정도 깔려서 확인되었다. 사용된 천석․할석은 비교적 넓고 편평한 면을 도로면이 되도록 축조하였다. 남서쪽인 8Grid에서 확인된 도로의 천석재들은 유구의 훼손이 심하지 않아 잘 남아있는 편이지만, 유구의 중심부에 속하는 11Grid에서는 후대의 경작으로 인해 상당부분 유실되어 도로 조성에 사용된 돌들의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도로유구 1호는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에 15~40㎝ 내외의 천석․할석과 비교적 작은 돌을 1~2단 정도 깔아서 조성하였다. 도로는 지속적인 사용으로 인해 유실된 부분을 보강하였는데, 1차적으로는 5㎝ 내외의 밤자갈을 덮어 노면을 편평하게 다져 사용하였다. 또한 고려시대 이후에는 황갈색 사질토를 깔아서 도로의 경도를 강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도로면에서는 수레의 하중으로 인해 생긴 여러조의 바퀴자국이 확인되며, 유물은 도로면과 도로의 내부에서 확인되는 바퀴자국에서 호편․병편․파수․기와편과 철기류 등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도로유구 1호는 후대층(고려시대 이후)인 회황갈색 사질점토층이 퇴적된 이후에도 상면에서 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바퀴자국들이 나타난다. 이처럼 도로면의 지속적인 보수흔적 및 도로의 상면에서 확인되는 수레바퀴자국과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서 볼 때, 유구는 삼국시대에 조성되어 고려시대 이후까지 계속적으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구의 양쪽에서도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바퀴자국이 다수 확인된다.

② 도로유구 1-1호
유구는 남서쪽의 도로유구 1호를 따라서 진행하다가 북쪽부분에서 동쪽방향으로 꺾여서 확인되며, 현재 조사중에 있다. 유구는 후대의 복토와 경작으로 인해 훼손이 심하며, 동쪽으로 가면서는 천석이 거의 확인되지 않고 바퀴자국의 벽면과 바닥에서 일부가 깔려서 나타난다. 비교적 양호한 부분은 동쪽으로 꺾이는 부분으로,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에서 10~15㎝ 정도의 작은 천석이 듬성듬성 깔린 채 밀집도가 낮게 확인된다. 주변으로는 유구와 같은 방향으로 바퀴자국들이 진행하고 있으며, 바퀴자국의 폭간의 거리는 약 210㎝ 정도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도로의 길이는 48m이고, 너비는 230㎝에서 주변 바퀴자국까지 합친 최대너비인 800㎝ 정도로 확인된다. 토층상에서 바퀴자국이 퇴적된 후에 황갈색 사질토를 깔아서 보수한 흔적이 확인되는데, 바퀴자국 내부와 황갈색 사질토층에서 청자편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시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③ 바퀴자국
수레바퀴자국은 유적내에서 전반적으로 확인되는데, 진행방향에 따라 직선도로인 主道路(도로유구 1호)를 따라 나란하게 진행하는 바퀴자국과 도로와는 진행방향을 약간 달리하면서 바퀴자국만이 확인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바퀴자국은 도로의 상면과 양쪽에서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도로의 동쪽에 위치한 바퀴자국들은 지속적인 사용이 있었던 듯 중복․교차되어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바퀴자국의 폭은 15㎝ 내외이며 깊이는 5~30㎝ 내외로 다양하게 확인된다. 같은 축으로 진행하는 바퀴자국으로 미루어 볼 때, 수레의 축간 거리는 200㎝ 내외인 것으로 판단되며, 그 중심부에서는 가축의 발자국흔으로 추정되는 직경 15㎝ 내외의 부정형 소혈이 일부 확인된다. 유물은 내부에서 호편․소형병․기와편 및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바퀴자국들은 진행방향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북동-남서 또는 남-북 방향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도로축조의 목적이 수레의 이동을 전제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나) 목탄요
목탄요는 현재 3Grid 북쪽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2기의 목탄요는 주축방향이 큰 차이를 보이지만 평면형태가 유사하며, 소성부와 이어지는 터널식 연도부, 소성부, 연소부의 구조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목탄요 2호는 측구를 기준으로 볼 때 왼쪽에는 연소부가, 오른쪽으로는 연도부가 위치하는데, 이를 목탄요 1호와 비교해 보면 1호 유구 역시 남동쪽에 측구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남동쪽이 후대 교란구덩이에 의해 대부분이 훼손되어 유구조사과정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① 3Grid 목탄요 1호
유구는 3Grid에서 북동쪽으로 치우쳐서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주축방향을 달리하는 목탄요 2호가 조성되어 있다. 유구는 기반층인 명황갈색사질점토층을 수직으로 굴착한 후 기반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성하였고, 천정부는 점토를 발라서 축조한 반지하식요로 추정된다. 목탄요는 남동쪽 부분이 후대 교란으로 인해 벽체의 상당부분이 유실되어 측구의 존재 유무는 알 수 없었고, 천정부 등의 상부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교란에 의해 뒤틀어져 바닥부의 1/2 정도가 침하하여 내려앉은 상태였다. 구조가 목탄요 2호와 거의 같은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해본다면 유실된 동쪽편에 측구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연소부는 왼쪽에, 연도부는 오른쪽에 위치한다. 주축방향은 N-33°-E이며, 전체길이는 490㎝이다.
연소부는 유구의 남쪽, 연도는 유구의 북동쪽에 위치하여 유구의 주축방향에서 약간 동쪽으로 벗어나게 축조하였다. 이는 구릉의 등고선 방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소부는 화구에서 소성부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소성부에서 연소부로 오면서 벽체의 폭이
약간 좁아지며 연소부의 천정시설을 위한 흔적으로 보이는 약 2~3㎝ 정도의 小穴들이 연소부 주위에서 확인되고 있다.
소성부는 평면형태 장방형이고, 폭은 연소부로 가면서 약간 좁아지며 규모는 너비 100㎝, 최대깊이는 50㎝ 정도이다. 내부에는 소토와 다량의 벽체편들이 함몰된 상태이고, 벽체는 5~10㎝ 정도의 두께로 붉은색으로 단단하게 변하였으며, 벽체 바깥으로는 10㎝ 내외 범위로 적갈
색의 피열흔이 확인된다. 보수흔적은 소성부의 서장벽쪽에서 확인되는데 점토를 얇게 덧바른 흔적이 일부 보인다.
연도부는 소성부의 북단벽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서 바닥면에서 시작된 터널형의 구멍이 북동쪽의 굴뚝부분과 연결되는 형태이다. 평면형태 방형으로 소성부와는 달리 벽체의 두께가 5㎝ 내외로 얇은 편이다. 내부에서 시설의 흔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② 3Grid 목탄요 2호
유구는 3Grid 북서쪽에 치우쳐서 위치하며, 동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주축방향을 달리하는 목탄요 1호가 조성되어 있다. 목탄요는 남서쪽 부분이 후대 퇴적토로 인해 벽체의 상당 부분이 유실되었으며, 남쪽에 위치한 습지의 지속적인 범람으로 인해 상면이 대부분 유실되어 현재 천정부 등의 상부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구조는 남쪽에 조성되어 있는 측구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연소부는 왼쪽에, 연도부는 오른쪽에 위치한다. 주축방향은 N-75°-W이며, 전체길이는 545㎝이다.
연소부는 화구에서 소성부로 연결되는 부분으로 소성부에서 연소부로 오면서 벽체의 폭이 약간 좁아지며 바닥에는 60㎝ 범위로 다량의 목탄이 포함된 재층이 5㎝ 내외의 두께로 확인된다. 단면상에서 확인된 재층으로 볼 때 목탄요는 최소 두 차례에 걸쳐서 사용한 흔적이 확인된다.
소성부는 평면형태 장방형이고 연소부로 가면서 폭이 약간 좁아진다. 규모는 너비 100㎝이며, 측구부까지를 포함한 너비 150㎝, 최대깊이 72㎝ 정도이다. 내부에는 소토와 다량의 벽체편들이 함몰된 상태였고, 벽체는 5~10㎝ 정도의 두께로 붉게 변하였다. 벽체 바깥으로는 10㎝내외 범위로 적갈색의 피열흔이 확인된다. 보수흔적은 소성부의 동단벽쪽 벽체에서 확인되는데 점토를 1㎝ 내외로 얇게 덧바른 흔적이 보인다. 바닥 깊이는 크게 차이는 없으나, 연소부에서 소성부로 오면서 약간 깊어진다. 소성부 중심바닥에서 남쪽의 측구쪽으로 가면서 바닥면이 약간 높아지는데, 이는 측구가 화구로서의 기능보다는 목재를 쌓기 위한 출입과, 탄화재를 꺼내기 위한 배출역할을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연도부와 가까운 동쪽으로는 벽체에 그을음과 재가 단단한 덩어리로 붙어 약 0.3㎝ 내외의 얇은 두께로 확인되며, 연도부 주위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소성부의 북쪽 바닥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5~10㎝의 너비로 흑갈색으로 변색되어 있는데, 이는 목탄요 내부의 온도차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측구는 소성부 중심부의 남쪽에서 2개가 확인된다. 현재까지 조사 보고된 목탄요와 비교했을 때 측구의 개수가 매우 적으나, 남아있는 벽체와 바닥면을 보았을 때 목탄요 조성당시부터 소성부의 중심부분에 2개의 측구만 조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측구의 단면은 ‘U’자형이며, 규모는 현재 길이와 폭이 50㎝ 정도이고, 측구 사이의 간격도 50㎝ 내외이다.
연도부는 소성부의 동단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바닥면에서 시작된 말각장방형의 터널이 동쪽의 굴뚝부분과 연결되는 터널식이다. 동쪽의 연도부는 평면형태 말각장방형으로 소성부와는 달리 벽체의 두께가 5㎝ 내외로 얇은 편이다. 남동쪽 모서리 부분은 상부 벽체가 확인되지 않고 뚫려 있는데, 이 부분으로는 연기가 배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 내부에는 붉게 피열된 납작한 할석이 소성부쪽을 향하여 여러 장이 무너져 있는데, 길이는 10~20㎝ 정도이고, 두께는 2㎝ 내외로 얇다. 이 할석들은 연도부 상부에 있던 일종의 시설로 추정된다. 연도부 남쪽 바닥면은 붉은색으로 단단하게 변해 있으나, 북쪽에서는 명황갈색의 기반층이 확인되고, 피열흔이 보이는 옹편이 비스듬히 세워져 출토되었다. 연도부 북쪽 바닥면에서 연기를 배출시키기 위한 배연시설을 설치하여 이를 굴뚝부분으로 향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내부토 상층에서 삼국시대 토기편 일부가 출토되었다.

다) 고상식건물지
고상식건물지는 현재 1Grid, 5~7Grid에서 확인되며, 1․6․7Grid의 건물지 7동은 조사가 완료된 상태이다. 유구확인작업이 완료된 5Grid에서는 3동 정도가 확인된다.
조사된 7Grid의 건물지는 모두 4주식으로 평면형태 방형인 건물지가 2동, 장방형인 고상식건물지가 2동이며, 동쪽에 조성된 건물지 3호를 제외하고는 남-북 방향으로 250㎝ 정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조성되어 있다. 4동 모두 규모와 주축방향이 유사하고, 방형인 건물지 1․4호는 主柱穴 4개와 보조 기능을 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주혈 2개가 더 확인되었다. 주혈의 평면형태는 원형․타원형․부정형이고, 단면형태는 ‘U’자형과 이단굴광형태를 혼용하였다. 주혈 일부는 토층상에서 목주흔이 확인되며, 내부토는 입자가 곱고 황색이질토를 포함하는 황갈색사질점토로 채워져 있었다. 단면형태가 이단굴광형으로 나타나는 주혈은 평면형태가 모두 긴 부정형인데, 이는 건물지 조성 당시 기반층을 굴착하고 목재를 세울 때, 조성의 용이를 위해 비스듬히 눕혀 세워서 남은 흔적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내부토와 함께 삼국시대 토기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라) 수혈유구
① 2Grid 수혈유구 1호
2Grid의 동북쪽둑 아래까지 걸쳐있는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남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2Grid 수혈유구 2호와 습지가 위치한다. 최초유구는 입자가 단단하고 밝으며, 모래성분이 포함된 황갈색 사질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유구의 서쪽부는 후대 경지정리에 의해 일부 삭평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내부토는 6개 층으로 나뉠수 있겠는데 하층부 4~6층에서 유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최하층인 6층은 회흑색 점토층이 퇴적되어 있었는데 이는 물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유구는 생토층인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었으며, 주축방향은 N-25°-E이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에 가까운 부정형으로, 규모는 길이 1732㎝, 너비 936㎝, 최대깊이 144㎝이다. 유구는 동쪽과 서쪽 부분에서 단이 지면서 깊어진다. 내부에는 10㎝ 내외
의 주혈들이 동쪽과 서쪽단 주위에서 확인되는데, 내부토가 같고 주혈의 배치상태가 어느 정도의 정형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구와 관련이 있는 시설의 흔적으로 판단된다. 바닥면은 완만한󰡐U󰡑자형으로 정지되어 있고 바닥 중앙부에는 70㎝ 정도의 내부수혈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완, 호,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고, 출토유물에서 삼국시대 관련 유구로 판단되고 유구의 규모와 내부토 중 최하층인 6층으로 보아 물을 저장하였던 장소로 추정된다.

② 7Grid 수혈유구 1호
7Grid내에서 남서쪽으로 치우쳐서 위치하며, 북동쪽으로 400㎝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수혈유구 2호가 있고, 남서쪽으로 310㎝ 정도 떨어져서는 수혈유구 4호가 조성되어 있다. 최초유구는 입자가 곱고 망간을 포함하는 황갈색사질점토가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는 양상을 보이며, 중앙부는 사질성분과 회색기가 강한 황갈색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유구는 명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었고, 주축방향은 N-S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규모는 길이 299㎝, 너비 244㎝, 깊이 280㎝이다. 상면에서 15~20㎝정도 아래에서 다량의 목탄이 확인되었는데, 토층에서 목탄은 띠상으로 완만한 ‘U’자형을 보이며, 그외 별다른 시설이나 피열흔이 보이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내부토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유구의 상층에서는 소량의 슬래그도 출토되었다. 기반층에서 180㎝ 정도 아래에서는 뻘층이 확인되며 뻘층과 함께 목재가 노출되었다. 수종은 참나무로 현존길이 100㎝ 정도이고, 직경은 10㎝ 내외이다. 출토목재는 유구의 바닥면에서 약간 뜬 상태이며, 인위적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유구의 단면형태는 ‘U’자형으로 비스듬하게 내려오다가 직각으로 굴착되어 있고, 바닥부근에서 약간 넓어지면서 플라스크 형태를 보인다. 바닥은 상면에서 280㎝ 아래에서 확인되는데, 목재는 뻘층과 함께 바닥부근까지 출토되고 있으며, 뻘층이 확인되는 곳은 지속적인 물의 영향으로 기반층이 회청색으로 변색되었다. 유구는 7Grid의 다른 수혈유구들과 비교했을 때, 그 폐기양상은 유사한 점을 보이나, 깊이나 내부양상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유물은 상면에서 150㎝ 정도 아래로 내려온 지점에서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용도는 확실하게 알 수 없으며, 매우 깊은 단면형태에서 함정과 같은 시설로 추정되지만 바닥이 깊고 내려갈수록 아래부분이 넓어지는 플라스크 형태로 보아 저장을 위한 시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 구상유구
구상유구는 현재까지 총 13기가 확인되었다. 8Grid의 구상유구 1호를 제외한 나머지 12기의 유구는 모두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① 6Grid 구상유구 2호
6Grid의 중앙에서 남쪽으로 치우쳐서 조성되었으며, 주변으로는 남쪽으로 근접한 지점에 바퀴자국이 위치한다. 유구는 기반층인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되었다. 평면형태는 약간󰡐ㄱ󰡑자형을 보이는 부정형이고, 규모는 길이 910㎝, 최대폭 190㎝, 깊이 30㎝ 내외이다. 내부에는 망간과 목탄을 일부 포함하는 황갈색 사질점토로 채워져 있었으며, 단면형태는 완만한 󰡐U󰡑자형을 보인다. 유물은 내부토 제거과정에서 개․호․시루편 등이 출토되었다.



Ⅳ. 調査結果 및 意義

1.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에서 생활유구는 수혈유구 22기, 고상식건물지 10동, 구상유구 13기, 도로유구와 바퀴자국 4개소가 확인․조사되었으며, 생산유구는 목탄요 2기가 조사되었다. 그리고 저습지 1개소와 석실묘 17기, 석곽묘 2기가 확인되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 도로유구는 유적의 서편에서 남서-북동 방향으로 진행하며, 5m 내외의 너비로 20㎝ 내외의 천석과 할석들이 깔린 상태로 조사되었고, 유구의 북동부에서는 5㎝ 내외의 밤자갈을 한층 더 깔아서 도로를 보강하였다. 바퀴자국은 도로유구의 바닥면과 내부, 상면에서 중첩되어 나타나며, 도로의 주변에서도 일정한 간격을 가진 바퀴자국이 확인된다. 또한 바퀴자국만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곳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도로면과 도로 내부의 바퀴자국에서는 호편, 병편, 기와편 등의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도로면을 보강한 고려시대 이후 층에서는 청자편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을 보았을 때, 도로유구는 삼국~고려시대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의 도로유구에 대한 조사결과, 도로유구의 방향은 북동-남서향으로 남서쪽으로는 금호강을 향하고 있고, 북동쪽으로는 봉무동고분군과 단산고분군 사이의 계곡부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운송수단인 수레의 이동을 전제로 도로를 축조하였기에 도로의 축조목적도 일부분이나마 알 수 있었다. 수레의 이용은 당시로서는 대규모의 물적 교류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금호강을 통해 타 지역에서 물자를 들여오거나, 반대로 고대인들의 생활터전이 되었던 불로․봉무동에서 생산된 물자를 금호강을 통해 내보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사대상지역내의 도로유구를 해석해 본다면 이동 및 운송의 용이성을 위한 편리한 포장도로의 기능 뿐 아니라 강안과 강밖을 이어주는 중요한 수송로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더불어 이들 도로유구의 존재를 통해 볼 때, 이 지역이 고대로부터 주변 지역과 활발한 교류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3. 목탄요는 유적의 남서쪽에서 2기가 확인되었는데, 기왕의 조사․보고된 목탄요와 비교하면 소규모이다. 유구의 장축은 경사면과 평행하게 조성되어 있다. 구조는 연소부와 장방형의 소성부, 터널식의 연도부로 조성되었으며, 점토를 덧발라 축조하지 않고 생토면을 굴착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목탄요 2호는 경사면 아래인 소성부의 남쪽 중심부에서 2개의 측구가 확인되었고, 측구를 기준으로 볼 때 왼쪽에는 연소부가 있고, 오른쪽에는 연도부가 위치하는 전형적인 목탄요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유물은 목탄요 1호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으나, 목탄요 2호의 연도부 내에서는 피열흔이 있는 옹편이 비스듬히 세워져 출토되었다.

4. 수혈유구와 고상식건물지, 주혈군, 구상유구와 같은 생활유구들은 유적내에서 고분과 도로의 가운데 부분에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며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수혈 등의 생활유구들은 유적 남서쪽에서 조사된 목탄요와의 연계성을 생각해 볼 때 생산을 위한 공방지 및 저장의 시설로 추정된다.


5. 석실묘는 유적의 남동쪽, 봉무동 고분군의 서쪽 능선사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현재 확인된 유구는 대부분 평면형태가 횡장방형이고, 우편도의 연도를 가지며, 벽석은 1~3단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구나 봉토의 흔적이 확인되거나, 한 봉분내에 배묘의 성격을 가지는 석곽묘가 축조된 경우도 확인되었다.

6. 조사된 유구들은 일정한 구역을 차지하면서 성격이 다른 유구들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유적의 동쪽 능선사면에는 봉무동 고분군과 연결되는 석실묘와 석곽묘가 축조되었고, 고분에서 약간의 간격을 둔 서쪽에는 수혈유구와 구상유구, 고상식건물지군, 목탄요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유적의 서편에는 북동-남서방향으로 천석․할석이 깔린 도로유구와 바퀴자국이 중첩되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유구들의 공간배치를 통해 볼 때, 봉무동지역은 삼국시대의 불로동고분군(사적 262호), 봉무동고분군의 축조이후부터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생활터전으로 크게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유적 내 유구의 배치상태는 고대인이 생활터전을 어떻게 구성․배치하였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유적 전경
유적 위치도
유적 지형도
유구배치도
도로유구 전경
11,14G 도로유구 전경
도로유구 전경 및 세부
토층
목탄요 1호
목탄요 1호 세부1
목탄요 세부2
목탄요 2호
목탄요 2호 세부1
목탄요 2호 세부2
목탄요 1,2호
7G 고상식건물지
6G 고상식건물지
7G 수혈유구 전경
7G 수혈 1호
7G 수혈 1호 세부
묘역과 생활, 생산역의 구분
2G 수혈 1호 출토유물
6G 수혈 2호 출토유물
7G 수혈 1호 출토유물
3G 목탄요 2호 출토유물
6G 구상유구 2호 출토유물
도로유구 전경
도로유구 1호 출토유물
도로유구 1-1호 출토유물
습지상층부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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