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州 芳內里 가마遺蹟 發掘調査 경주 방내리 가마유적 발굴조사

시대 통일신라말-고려
성격 기와가마
회수 13
개최일자 2004.12.03
조회수 1,631
경부고속철도 경주구간내
慶州 芳內里 가마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 위치: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932-1, 943-3번지 및 19-1번지 일원
2. 조사 기간 : 2004년 5월 10일~2005년 5월 9일
3. 조사 면적 : 18,604㎡(Ⅰ구간:8,313㎡, Ⅱ구간:4,995㎡, Ⅲ구간:5,296㎡)
4. 조사 기관 : (財)嶺南文化財硏究院(원장:李白圭)
5. 조사의뢰기관 : 한국철도시설공단


Ⅱ. 調査經過

경주 방내리생활유적은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추진하는 경부고속철도 경주구간 내에 포함되어 철도공사와 관련한 형질변경에 앞서 우리연구원에서 2002년 5월 6일부터 2002년 8월 18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결과 청동기시대주거지와 삼국시대 고분군, 통일신라시대 기와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의 추진은 방내리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 기와가마에 대하여 우선 조사를 실시하기로 하고, 고분군은 상기 조사완료 후 연속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방내리생활유적에 대한 조사계획서(영문연 86705-59. 2004. 1. 20)를 제출하여 문화재청의 허가(제2004-144호. 2004. 3. 6)를 받았다. 발굴조사의 착수는 2004년 5월 10일부터이며 조사를 착수하여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발굴조사는 현장여건 및 유적성격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추어서 Ⅱ구간, Ⅲ구간, Ⅰ구간의 순으로 실시하였다. Ⅱ구간에 대한 조사는 2004년 5월 10일부터 2004년 7월 3일까지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조선시대의 수혈유구 3기와 구상유구 3기, 주혈 등이 조사되었다. Ⅱ구간에 대해서는 지도위원회(영문연 86705-719)를 개최하여 조사결과를 보고하고, 보존방안을 검토하였다.
Ⅲ구간은 2004년 6월 29일부터 조사를 실시하여 기와가마 9기, 수혈 6기가 확인되었다. 기와가마 9기 중 6기가 조사 완료되었고, 기와가마 3기와 수혈유구 6기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Ⅰ구역에 대해서는 10월 11일부터 조사를 착수하여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금번의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는 Ⅲ구간 전체와 Ⅰ구간의 일부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다.


Ⅲ. 遺蹟의 立地 및 考古學的環境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장천지 남서쪽 일원과 상리마을 북서편 구릉 말단부에 해당한다. 유적은 해발 120m정도의 완만한 사면과 사면의 북쪽에 형성된 곡부부분으로 대부분 전답으로 이용되고 있다. Ⅰ구간은 단석산(해발827m)의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남쪽 사면으로 상리마을 북서편 해발 456m의 장군봉 끝자락에 위치한다. Ⅰ구간 북편에는 방내리고분군(시굴조사지역)이 위치하고 있다. Ⅱ구간은 마산(해발 215m)의 서편에 위치한 구릉의 북쪽 곡부에 위치하며, 계단상경작과 복토로 인해 대부분지역이 교란된 상태였다. Ⅲ구간은 단석산(해발827m)의 북쪽 가지능선 중의 하나인 마산(해발 215m)의 북쪽 능선 말단부에 위치하는데, 북동쪽에 장천지가 위치한다. Ⅲ구간의 북동쪽으로는 넓은 들판(일명 황새들)이 펼쳐져 있다. 조사대상지는 계단상경작에 의해 사면의 하단부가 심하게 삭평되었다. 주변유적으로는 북서쪽으로 약1.5㎞에 방내리고분군이, 북동쪽으로 약2㎞ 정도 떨어진
곳에 금척리고분군이 위치한다. 유적의 북동쪽에는 방내리유물산포지와 장천사지(방내리사지), 모량리사지 등이 위치하고 있다.


Ⅳ. 調査內容

1. Ⅰ구간
Ⅰ구간은 방내리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의 동쪽사면 일부와 단석산이 동남방향으로 뻗어내리 동쪽사면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조사대상지는 최근까지 과수원과 밭으로 이용되었으며, 몇 채의 가옥이 위치했었다. Ⅰ구간은 단석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경작을 위한 배수구에 의해 2개로 나뉘어 진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6동이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주거지는 등산로의 북편, 방내리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의 사면에 4동이 확인되며, 남쪽에서 2동이 확인된다. 주거지의 입지는 등고방향과 나란하게 조성되었으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조사구역의 남동쪽에서는 남서에서 북동방향의 구하천 범위가 확인되고 있다.

2. Ⅱ구간
Ⅱ구간은 단석산의 동쪽말단부와 단석산의 가지능선인 마산(해발215m)의 동쪽 사면일부에 해당한다. Ⅱ구간은 계단식경작과 경작과 관련된 배수구의 조성에 의해 지형이 심하게 삭평․교란된 상태였다. 조사된 유구는 구상유구 3기와 수혈 3기, 주혈군이다. 이 중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된 유구는 1호 수혈과 3호 구상유구로 자기편과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조사된 유구의 정확한 성격이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확인된 유물로 보아 조선시대에 조성된 수리시설과 관련된 유구로 추정된다.

3. Ⅲ구간
Ⅲ구간에서는 기와가마와 가마 관련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는데, 계단식경작과 농로에 의해 부분적으로 유실되어 가마 부속시설까지 완전히 남아있는 유구는 없었다. 기와가마는 주체부가 남아있는 유구 6기, 연소실만 남아 있는 유구 2기, 연도부만 남아 있는 유구 1기 등 모두 9기가 확인․조사되었다.

가. 遺構

1) 기와가마(瓦窯)
조사된 기와가마는 기반층인 황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등고선방향과 직교되게 조성한 반지하식의 기와가마로 소성실과 연소실이 단이지는 유계무단식의 등요이다. 가마의 평면형태는 연소실은 평면 타원형이며, 소성실은 상단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선주형이다. 요상의 경사는 아궁이에서 연소실까지는 거의 편평하며, 소성실에서 단이져 경사지게 올라가 자
연스럽게 연도로 이어지는데, 소성실의 경사도는 13°~20° 정도이다. 천정부는 대부분 함몰되어 가마의 내부에 퇴적되었는데, 1호가마는 일부 남아있어 원상을 파악할 수 있다. 연도는 일반적으로 지상에 설치된 구조물이므로, 조사된 가마에서 그 구조가 남아있는 것은 없었지만, 가마의 내부에서 연도의 흔적은 확인된다. 아궁이는 연소실에서 요전부로 빠져 나오는 곳의 좌우벽에 할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화구적석식’이다. 4․6․7․9호가마의 아궁이 벽석의 상단에는 상인방석이 남아있다.
방내리 기와가마 중 비교적 원상이 잘 남아있는 7호가마를 중심으로 가마의 세부구조에 대해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아궁이(焚口)
연소실과 요전부의 가운데에 위치하며 평면 원형의 연소실에서 목이 좁혀들다가 요전부에 이르러 다시 벌어지는 형태에서 목이 좁혀든 부분의 좌우측에 할석을 세워 아궁이로 사용한 소위 ‘화구적석식’의 형태이다. 현재 벽의 좌우측에는 각각 40~60㎝정도의 할석이 일열로 2매가 세워져 있으며, 그 상단에 상인방석이 놓여져 있다. 아궁이의 바닥은 단면이 완만한 ‘U’자상의 형태로, 아궁이에서 연소실로 이어지는 부분은 불을 맞아 소토화 되었지만, 요전부쪽으로는 회갈색사질점토를 얇게 깔아놓았다. 아궁이 축조시 사용된 할석은 내부조사시 2개의 층에서 확인되었다. 일열로 세워진 벽석 중 연소실쪽의 벽석은 아궁이 바닥과 붙어있지만, 요전부쪽의 벽석은 아궁이 바닥에서 5㎝정도 떠 있으며, 그 사이에 소토와 재층이 섞인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이러한 양상으로 보아 아궁이 역시 최소 2차례 이상의 보수가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인방석 상단에는 점토와 함께 4~5겹의 기와를 층층이 쌓아 놓았다.
방내리 가마의 아궁이는 평면 원형의 연소실에서 목이 좁혀들다가 요전부에 이르러 다시 벌어지는 형태에서 목이 좁혀든 부분의 좌우측에 할석을 세워 아궁이로 사용한 소위 ‘화구적석식’의 형태이다. 아궁이벽석의 상단에 상인방석을 올려놓은 창구조의 아궁이로 추정되며 현재 상인방석이 남아있는 가마는 4․6․7․9호이다. 인방석의 상단에서 천정부를 구축하는 방법은 점토만을 사용하여 구축한 형태(4호․9호)와 점토와 기와를 혼용한 형태(6호․7호)로 구분된다. 아궁이 벽석은 바닥면인 생토층 위에 퇴적된 흑색재층 위에 놓여져 있는 상태로 확인되는데, 이는 현재 확인되는 벽석이 최초 가마조성시 구축하여 장기간 사용한 것이기 보다는 매 조업시 아궁이를 허물고 새로이 구축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7호가마의 아궁이 벽석이 요전부로 연장되는 현상에서도 파악된다.

․ 연소실(燃燒室)
연소실은 아궁이와 소성실 사이에 위치하는 공간으로 조업시 가마 내부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연료를 연소시키는 곳이다. 7호가마의 연소실은 소성실과 높이 60㎝정도로 단이져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192㎝, 너비 140㎝,
잔존깊이 100㎝정도이다. 아궁이와 연결되는 부분에는 천정부가 일부 확인되는데, 10~15㎝정도 크기의 점토덩어리를 사용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연소실의 벽체는 매우 단단하게 환원소결되어 회청색조를 띠며, 최소 2회 이상의 보수흔적이 확인된다. 환원소결된 벽체의 두께는 5~10㎝정도이며, 보수시 두께는 8~10㎝로 확인되었다. 바닥은 편평하게 정지한 후 흑갈색사질점토를 깔았는데, 그 상층은 조업과 관련된 재층이 2층으로 구분되어 확인되었다.
방내리가마는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된 반지하식이나, 7호가마는 예외적으로 연소실과 소성실일부가 지하에 축조되었다. 아궁이와 연소실이 수평으로 연결되는 수평연소식의 구조이며, 연소실과 소성실이 일정한 높이의 단벽에 의해 구분되는 유계무단식의 구조이다. 단벽의 경우 대부분의 가마는 암반면을 굴착한 높이차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나, 4호가마는 기와를 8~9단 정도 평적하여 단벽을 축조한 와적단의 형태이다. 연소실의 평면은 대부분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며, 바닥은 암반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바닥의 상면에는 조업시 발생한 재층이 얇게 깔려져 있다. 벽체는 점토를 발라 조성하였으며, 조업시 발생한 고온에 의해 아주 단단한 회청색으로 환원소결되어 있다. 1․6․7․9호의 벽체에서 점토보수흔과 물손질흔이 확인된다.

․ 소성실(燒成室)
소성실은 기와가 소성되는 곳으로, 평면형태는 연도부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선주형이다. 7호가마의 소성실은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되었고, 바닥은 대체로 편평하나 가운데가 오목한 형태이다. 소성실에서 연도부에 이르는 바닥의 경사는 16°이다. 내부 퇴적토를 제거하자 바로 가마의 바닥면이 확인되었는데, 바닥에는 소성시 기와를 받쳤던 것으로 생각되는 와편이 전면에서 확인된다. 소성실의 규모는 길이 290㎝, 폭 60~140㎝, 잔존최대깊이 90㎝정도이다. 요벽은 고온에 의해 단단한 회청색으로 환원소결되었으며, 환원두께는 4~6㎝정도이며, 산화된 피열범위는 12~18㎝정도이다. 가마의 구축과 관련된 뚜렷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으나,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혈흔 3개가 확인되었다.
방내리가마는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된 반지하식이다. 소성실의 내부에는 함몰된 천정과 벽체편이 퇴적되어 있었다. 바닥면은 연소실에서 단이져 올라와 편평하게 이어지다가 연도부에 이르러 비교적 급경사를 이룬다. 바닥에는 소성시 기와를 받쳤던 것으로 보이는 와편을 전면에 깔았다. 바닥과 벽면은 점토를 발라 구축하였는데, 바닥에는 사질점토를 얇게 깔았다. 전반적으로 조업시 발생한 고온에 의해 바닥과 벽체는 단단한 회청색으로 환원소결되었으나, 일부 가마의 상단부는 상대적으로 약한 열에 의해 붉게 소결되었다. 4․6․7호가마의 바닥면 일부는 보수시 점토를 덧바른 흔적이 확인된다.

․ 연도(煙道)
연도는 가마 내부에서 발생한 연기가 빠져나가는 부분으로, 소성실의 후벽에 설치되었다. 연도는 일반적으로 지상에 드러나는 구조물이므로 남아있는 예는 드물다. 7호가마의 연도는
타원형의 소성실이 상단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자연스럽게 연도로 이어지는 형태이다. 규모는 길이 112㎝, 너비 36㎝, 깊이 20㎝정도로 평면형태는 세장한 타원형이다. 연도의 바닥은 불을 맞아 소토화 되었으나 상단부 바닥은 타원형의 범위로 생토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이 부분에 배연시설이 놓여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바닥에는 배연시설과 관련된 지름 3㎝정도의 목주가 확인되며, 연도부가 끝나는 지점에는 1매의 할석이 놓여져 있다.
방내리 가마에서 연도부의 일단이 가장 잘 확인되는 것은 7호와 9호가마이다. 7호가마의 연도는 타원형 소성실의 끝단에서 좁아져 세장한 형태로 길게 뻗어져 있는데, 내부에는 별다른 시설없이 불맞은 흔적만 확인되며, 연도가 끝나는 곳에 1매의 할석이 놓여져 있다. 9호가마의 연도는 소성실 상단의 바닥에서 약20㎝ 상단에 1매의 할석을 끼워 넣어 바닥과 할석사이에 공간을 마련한 후 그 상단부에 할석과 기와를 쌓아 배연시설을 만들어 놓았다.

․ 요전부(窯前部)
요전부는 아궁이의 하단부에 위치하며, 아궁이를 통해 연료를 공급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7호가마의 요전부는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평면 타원형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규모는 길이 190㎝, 너비 86㎝, 깊이 106㎝정도로, 아궁이에서 단이져 내려오다가 회구부 시작부에 이르러 다시 올라오는 단면 ‘U’자상의 형태이다. 내부퇴적층은 크게 4개층으로 구분된다. 최상층인 1층은 황갈색사질점토에 재와 소토덩어리가 다량포함된 층으로 요전부의 바깥에서 내부로의 함몰양상 등으로 보아 아궁이폐기층으로 보인다. 2층은 가마의 조업과 관련된 재층이며, 3층은 갈색사질점토로 소토덩어리와 재층이 섞인 층이며, 최하층인 4층은 재층으로 이루어졌다. 퇴적양상으로 보아 2․4층은 재층으로 가마의 직접조업과 관련된 층이며, 3층은 2층과 4층의 간층으로 보인다. 7호가마는 아궁이퇴적양상으로 보아 최소 2차례 이상의 조업이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점성이 강한 회갈색의 사질점토가 깔려져 있었다. 요전부 내부조사시 다량의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 회구부(灰丘部)
가마에서 소성작업이 완료된 후 배출된 재, 벽체편, 불량 소성된 기와편 등이 확인된다. 회구부는 지형의 삭평에 의해 대부분 유실되고 일부만 남아있다. 7호가마의 회구부는 기반층이 황갈색사질점토층을 단면 ‘U’자상으로 굴착하여 조성된 것으로 요전부와 연결되는 일부만이 남아있다. 형태는 아궁이에서부터 선상으로 벌어지는 형태로 가마의 좌우측에 조성된 회구부와 연결된다. 회구부의 퇴적범위는 장축 360㎝, 단축 170㎝, 잔존깊이 106㎝ 정도이며, 내부에는 목탄, 재, 소토덩어리, 가마벽체편과 다량의 기와편이 혼재해 있다.
8호가마의 회구부는 요전부에서 배수구의 형태로 확인되는데, 내부에는 와편과 재, 벽체 등이 퇴적되었고, 바닥에는 기와를 일렬로 깔아놓아 배수효과를 높였다.

․ 배수구(排水口)
배수구는 우수로부터 가마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가마의 상단부 주위에 호상의 형태로 조성되어 회구부로 연결된다. 7호가마의 배수구는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점토를 굴착하여 조성된 것으로, 경사면을 따라 내려오다가 하단부에서 선상으로 벌어져 회구부와 연결된다. 규모는 너비 100~450㎝, 깊이 26~120㎝정도이다. 배수구는 동쪽에 조성된 6호가마의 서쪽배수구와 중복상태를 보이는데, 평․단면에서 선후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6호배수구가 조성된 이후에 7호가마의 배수구가 확장하여 조성되었거나, 6․7호가마가 동시에 조성되어 배수구를 함께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7호가마의 배수구는 6호가마의 배수구와 동시에 만들어 졌거나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배수구의 내부에는 다량의 기와편과 함께 소토와 재층이 퇴적되어 있는데, 이는 최초 배수를 위한 시설물로 사용된 것이 가마의 폐기와 함께 회구의 기능으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1․5․6․7․8․9호 가마에서 배수구가 확인는데, 8호가마는 연도부 상단과 배수구의 하단 굴광면에 할석을 사용하여 호상으로 돌려놓았다.

2) 수혈유구
수혈유구는 모두 6기가 확인되었는데, 1~5호 수혈은 2․9호가마의 동쪽하단부에 6호수혈은 6호가마의 남동쪽 하단에 각각 조성되어 있다. 수혈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의 형태이며, 기반층인 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된 것으로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나. 遺物
가마에서 출토된 기와는 다량의 암․수키와를 비롯하여 막새기와 3점이 출토되었다. 암․수키와의 고판문양은 무문, 선문, 어골문, 복합문 등이 시문되어 있다. 출토량에 비해 문양종류는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암키와와 수키와에 시문된 타날판의 크기는 장판타날판이 대부분이다. 수키와는 기왕의 한쪽지름이 다른 쪽보다 약간 크거나 작은 梯形의 무단식이 주류를 이루며,
9호가마에서는 기와의 한쪽 끝에 낮은 언강이 있는 유단식의 형태(미구기와)도 2점이 출토되었다. 무단식의 토수기와는 12세기 이후에는 출토되지 않으므로, 방내리 가마의 주생산시기는 1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기와의 이면에는 포목흔적, 천을 이었던 흔적 그리고 점토판의 재단흔적이나 연접흔적 등이 남아있는데, 특히 실이나 철사줄로 자를 때 생기는 재단흔적(사절흔)도 확인된다. 이러한 사절흔은 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분할도흔은 기와의 내측에서 와도 처리하였으며, 대부분 와도한 후 분리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얕게 와도한 후, 완전히 건조하여 분리하는 방향으로 바뀌는데, 방내리 가마에서 보이는 분할도흔도 통일신라시대이후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막새는 연화문 수막새 1점, 당초문 암막새 2점이 출토되었다. 수막새는 막새부분만 남아있고, 외측에 둥근 周緣이 있고, 周緣에는 珠文이 있고, 내측에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제작된 수막새의 주연부는 무늬가 장식되지 않는 素文帶가 위주였으나, 통일신라이후에 제작된 수막새의 주연부는 주문이나 꽃무늬가 새겨져 시기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암막새는 2점 모두 막새만이 남아있고, 턱면이 형성되어 있는 有顎式이다. 외측에 네모난 주연부가 있는데, 珠文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내측에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암막새는 통일신라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어 사용되었는데, 막새표면에는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덩굴과 같이 의장된 당초무늬가 중심이 되고 있다.
방내리 가마에서 출토된 기와의 제작양상 등을 살펴보았을 때 무단식의 토수기와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사절흔, 분할도흔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후기~고려시대전반(12세기이전)이 기와의 주제작시기로 추정된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이번 발굴조사 구간에서는 청동시시대 주거지, 통일신라시대 기와가마, 조선시대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어 한 지역내에 시기를 달리하는 다양한 성격의 유구가 유존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 Ⅲ구간에서 확인된 통일신라말~고려초 시기의 기와가마는 경주 중심지를 비롯한 일원에서 정식 조사된 예로서는 최대규모로, 가마의 구조와 출토된 기와유물을 통해 조영집단의 성격과 유물의 수급관계를 밝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3. 가마의 조성시기로 추정되는 통일신라말~고려초(9~12C)에 해당하는 기와의 편년이 현재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가마 내부에 공반되어 출토된 기와들의 분석을 통해 이 시기 기와 편년연구에 많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 전경
Ⅲ구간 전경
1호가마 전경
7호가마 전경
9호가마 전경
아궁이(7호가마)
소성실(1호가마)
단벽(1호가마)
연도(9호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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