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鳳舞洞古墳群 發掘調査 대구 봉무동고분군 발굴조사

시대 삼국, 고려
성격 봉토분, 석곽묘, 토광묘
회수 11
개최일자 2004.02.18
조회수 1,990
대구 영신초.중.고등학교 이전예정부지내
大邱 鳳舞洞古墳群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544-1번지 일원
2. 조사기간 : 2003. 11. 17 ~ 2004. 3. 3
3. 조사면적 : 1,860㎡
4.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李白圭)
5. 조사의뢰기관 : 학교법인영신교육재단


Ⅱ. 調査對象地域의 立地와 環境

조사대상지역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동구 봉무동 544-1번지 일원으로서, 불로동 방면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가로질러 팔공산방면으로 500m 정도 가면 도로의 우측편에 봉무동사격장 진입로가 나오는데 조사대상지는 이 사격장내에 위치한다.
조사대상지가 위치한 주변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살펴보면, 유적은 문암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오다가 다시 서쪽을 향해 소구릉을 이루며 남북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는 능선의 말단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봉무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는 금호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다가 다시 동에서 서로 굽이쳐 흐르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일제시대 축조된 丹山池와 인접해 있다.
조사대상지역은 과거 봉무동고분군으로 명명된 곳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조사대상지와 접해있는 남쪽 구릉일대는 봉무동고분군의 중심고분으로 보이는 봉토분들이 군집을 이루며 분포하고 있는 것이 지표상에서 쉽게 확인된다. 다만 현재 조성되어 있는 봉무사격장 건설시 대규모 절토, 삭평작업으로 인해 지형이 훼손되면서 상당수의 고분들이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원래는 대규모의 고분군으로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사대상지의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유적을 살펴보면, 봉무동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일대의 남쪽인 경부고속도로 건너편 일대에는 이 지역의 삼국시대 중심고분군인 不老洞古墳群(사적 262호)이 위치하고 있으며, 조사대상지의 북쪽 단산마을 일대의 나즈막한 구릉상에는 丹山古墳群이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조사대상지의 서쪽과 금호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봉무들에 들어설 패션어패럴단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 확인되었으며(영남문화재연구원, 2002, 「대구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문화재 발굴조사」), 조사를 진행중에 있다. 이 밖에도 조사대상지 주변으로는 봉무동토성, 봉무동원삼국유물산포지, 공산동고분군, 도동고분군 등 많은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조사대상지가 위치한 봉무동고분군과 이 주변으로 분포하고 있는 불로동고분군에 대한 기존의 조사성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봉무동고분군은 경부고속도로 금호-동대구간 8차로 확장공사 구간에 분포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서 고분군의 남쪽 가장자리 일부분이 조사되어 삼국시대 석곽묘, 석실묘 등이 확인(慶尙北道文化財硏究院,『琴湖-東大邱間 京釜高速道路 擴張區間內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2001)된 바 있어, 본 조사는 이 고분군에 대해서는 두번째 조도면 2. 유적위치도(上: 1985년 이전, 下: 2004년 현재)
사에 해당한다. 그리고 불로동고분군에 대한 조사로는 1938년에 解顔面古墳이란 이름으로 2기가 조사되었고(齊藤 忠, 「大邱附近に於ける古墳の調査」『昭和十三年度 古蹟調査報告』, 1940, 朝鮮古蹟硏究會), 1963년에 경북대학교에서 不老洞 甲․乙號墳을 조사한 바 있다(金英夏․尹容鎭, 『仁洞․不老洞 高靈古衙古墳發掘調査報告』, 1966, 慶北大學校博物館). 그리고 최근에는 불로동고분군 91․93호분 및 주변 석곽묘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대구불로동고분군-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자료집-」, 2002).


Ⅲ. 調査內容

1. 조사경과
조사대상지역은 학교법인 영신교육재단이 영신초․중․고등학교를 이전하기 위해 우리 연구원에 사전 지표조사를 의뢰하였고, 이에 2003년 1월 2일부터 16일까지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조사지역 남서쪽 능선에 중소형의 봉토분이 다수 확인되며, 이 일대에는 원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으므로, 봉무사격장 건설시 복토지역 일부와 원지형이 남아있는 지역에 유적이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표조사결과에 따른 문화재청의 문화재 보존대책 통보에 따라 봉토분 분포지역은 원형보존하고 사업대상부지내에 위치한 고분군은 시굴조사를 실시토록 하였다.
시굴조사는 2003년 6월 16일부터 8월 2일까지로, 원형보존지역을 제외한 학교이전부지 전체에 대하여 실시하였으며, 조사결과 삼국시대 석곽(실)묘 4기, 시대불명 토광묘 1기 등 모두 5기의 분묘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발굴조사는 시굴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조사대상지내에 분포하는 유구의 명확한 성격 및 범위 그리고 그에 따른 유적의 보존․보호 방안을 수립하고 나아가 고고학적인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03년 11월 17일부터 발굴조사를 착수하여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조사구역은 시굴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크게 3개구역으로 나누어서 실시하였는데, 조사대상지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남동쪽 사면에 위치한 곳을 Ⅰ구역, 북동쪽사면에 위치하는 것을 Ⅱ구역, 그리고 중앙부에서 북서쪽 평지에 위치한 곳을 Ⅲ구역으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2. 조사방법

가. 퇴적토 제거 : 현장조사 착수시 우선적으로 조사대상지역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동시에 조사대상지역의 조사전 상태를 기록 및 촬영하고, 유구가 확인된 시굴트렌치를 정리하여 확인된 유구의 상면까지 제토함을 원칙으로 하였고, 퇴적토의 제거 및 이송에 효율적인 면을 고려하여 진행하였다. Ⅱ구역 제토시에는 시굴조사시 확인된 석실묘를 중심으로 퇴적토를 제거하였고, 조사구역 측량결과의 변동으로 인해 봉토분 4기를 추가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유구확인 및 내부조사: Ⅰ구역과 Ⅲ구역에서는 석곽묘 및 토광묘가 확인되었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고 유구내부조사를 실시하여 일정한 두께 단위로 내부토를 제거함을 반복하여 바닥까지 노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리고 주구 등과 같은 관련유구도 함께 확인․조사하였다. Ⅱ구역에서는 봉토분이 확인된 관계로 지표의 수목 및 잡풀들이 제거된 상태에서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고 전체에 대한 등고측량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4기의 봉토분에 대해 각각 4분법을 이용하여 봉토를 제거함을 원칙으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개별 설치된 둑은 인접한 유구와의 원활한 조사진행을 위해 연결되도록 하였다. 각 단계별로 기구 및 무인항공을 이용한 직상방촬영 및 다양한 각도에서의 촬영을 실시하였다. 봉토조사는 수평제토를 원칙으로 하였으나 실제 조사시 봉토는 대부분 삭평되어 10㎝ 내외로 남아있었으며 봉토를 조사하면서 봉토기저부, 연도와 묘도 및 주구의 조사도 동시에 실시하였다. 봉토조사후 둑을 제거하고 단계별로 매장주체부에 대한 내부조사를 진행하였다.

다. 유구의 기록 및 사진촬영 : 조사내용, 주변현황 및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기록지 및 조사일지를 기록하고, 사진촬영은 칼라, 슬라이드를 찍고, 도면을 작성하였다.
유적전경(직상방촬영)

3. 조사내용
가. 층위
유적의 전체적인 층위는 Ⅰ구역과 Ⅱ구역에서는 표토층(지표에서 20~30㎝), 그 아래에는 황갈색사질점토층 및 (풍화)암반층이 확인되었고, Ⅲ층에서는 표토층(잔디밭으로 지표에서 10㎝ 내외)과 그 아래에는 사격장 건설시 구릉 사면을 절토하면서 생긴 암반덩어리 및 부식토를 이용한 복토층이 50~200㎝ 정도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 아래에 황갈색사질점토층 및 (풍화)암반층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표토층과 복토층 아래의 황갈색사질점토층 또는 (풍화)암반층에서 확인되었다.

나. 조사내용
이번 조사에서는 삼국시대 봉토분 5기(석곽묘 3기, 석실묘 4기), 석곽묘 7기, 고려시대 석곽묘 4기, 토광묘 1기 및 기타 토광묘 2기 등 모두 19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1) 유구

가) Ⅰ구역

(1) 삼국시대 석곽묘

Ⅰ구역에서는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석곽묘 1기만이 조사되었고 더 이상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구는 Ⅰ구역의 중앙부에서 북동쪽으로 치우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N-28°-E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다. 최초유구는 황갈색사질점토로 덮혀져 있었고 상부에는 석곽의 벽석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장벽의 일부는 대부분 훼손되었다. 유구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묘광의 벽면을 따라 장벽의 경우는 최하단에는 길이 50㎝ 내외, 높이 20~30㎝ 내외 정도의 장방형할석 4매를 이용해 수적하고 단벽의 경우는 북단벽은 할석을 평적하고 남단벽은 길이 30㎝ 내외, 높이 20㎝ 정도의 할석을 이용해 수적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소형할석을 평적하였는데 현재 1-2단정도 남아있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212㎝, 너비 70㎝, 높이 (현)31㎝ 정도이다. 바닥 전면에는 편평한 할석을 1-2단정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으며 유물은 북단벽에 치우쳐 동경편 1점과 관정 3점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로보아 석곽내부에는 목관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나) Ⅱ구역

Ⅱ구역에서는 삼국시대 봉토분 5기 및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곽묘 3기와 토광묘 1기 및 시대불명의 토광묘 1기 등 10기가 확인되었으며 현재 조사진행중이다.


(1) 삼국시대 봉토분

봉토분은 모두 5기가 확인되었으며 조사를 시작하면서 둑을 남기고 봉토를 제거하였는데 정상부를 10~20㎝ 정도 제토하였을 때 바로 매장주체부의 벽석이 확인되어 이를 통해 유구의 봉토는 거의 삭평․훼손된 것임을 알 수 있었고 부분적으로 석재들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현재의 조사내용을 통해 볼 때 봉토분은 기반층인 황갈색풍화암반층을 정지하고 그 과정에서 경사면의 상단부를 일부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벽석축조와 동시에 성토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호석은 확인되지 않으며, 주구는 봉토분의 사면 위쪽에서 반원상으로 5기 모두 확인되었다. 1호분의 경우는 봉토내에 3기의 석곽시설이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석실구조이다. 5기의 봉토분은 잔존규모가 대체로 장축 700~760㎝, 단축 670~705㎝ 정도이고 2~3m정도 등간격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분축조에 있어서의 시간성 및 기획성이 엿보이고, 인접한 봉토분끼리는 주구를 공유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1호분을 제외한 2호분, 3호분, 4호분, 5호분은 매장주체부가 석실구조로,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으로 현실의 규모는 대체로 길이 212~260㎝, 너비 160~200㎝ 정도이다. 석실의 축조방법에 있어 현실의 경우 좌벽,전벽,후벽을 거대한 판상할석 1-2매를 이용해 수적(2호분) 또는 2-3매의 판상할석을 이용해 수적하고(3호분) 그위에 편평할석을 평적하였으며, 입구부와 연결되는 우벽의 경우는 판상할석을 수적하거나 부분적으로 장방형할석을 평적하였다(2,3호분). 4호분은 2,3호분과 현실 구축용 석재에 있어 규모와 재질면에서 다소 차이가 보이고, 현실의 최하단은 규모가 큰 장방형할석을 수적 또는 평적하였으며 그 위에는 편평할석을 평적하였다. 입구부는 전벽의 중앙부에서 우측으로 치우쳐 우벽과 연결되는 구조(2,4호분)로 그 방향이 남동쪽이고 특히 4호분은 우측으로 굽은 형태이다. 이에 반해 3호분은 전벽의 중앙부에서 좌측으로 치우쳐 좌벽과 연결되는 구조로 그 방향이 남향으로 차이를 보인다. 시상은 봉토분 4기 모두에서 확인되는데 1호분의 경우는 석곽의 바닥에 소형의 할석을 깔았고, 나머지는 편평할석을 이용해 마련하였는데 1차(3호분), 2차(4호분), 3차이상(2호분) 마련된 것으로 구분된다. 유물은 1호분의 경우 석곽의 북서단벽쪽에 치우쳐 토기류가 부장되었고, 2호분은 전벽과 좌벽이 만나는 부분에, 3호분은 좌벽과 후벽이 만나는 부분, 4호분은 전벽의 중앙부에서 좌벽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토기류가 부장되었다. 3호분의 경우 입구부의 위치만이 2,4호분과 차이를 보일 뿐 평면형태, 시상의 위치, 유물부장위치 등이 대체로 유사하다. 2호과 4호분에서는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유물이 확인되었는데 2호분에는 제사관련 구조물(제사곽?)이 2기, 제사관련 토기(호) 1점이 확인되었고, 4호분에서는 제사관련 토기(호, 파수부호) 2점이 소형할석으로 둘러진 채 일정간격을 두고 확인되었다.


① 1호분
1호분은 2호분과 5호분 사이의 구릉 사면에 위치한다. 봉토는 대부분 삭평되었고 10㎝정도 남아있었으며 풍화암반알갱이가 다량 포함된 황갈색사질토로 덮혀져있었다. 잔존 분구의 규모는 길이 760㎝, 너비 670㎝ 이다. 호석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분구의 가장자리에는 주구가 일부 확인되었다. 2호분, 3호분, 4호분이 매장주체부가 석실구조인데 반해 1호분은 봉토내에 3기의 석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개의 석곽은 전반적으로 등고선방향과 나란하게 위치한다. 평면조사시에는 유구의 축조순서를 알 수 있는 묘광선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봉토 및 개별 석곽 구축시 사용된 구축토의 층위를 통해 구릉사면 아래쪽에 위치한 1-1호에서부터 위쪽으로 가면서 1-2호, 1-3호가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개석은 3기에서 모두 확인되었는데, 그 중에서 1-2호와 1-3호는 전면적으로 개석이 덮혀져 있었고, 특히 1-2호에서는 개석상면에 밀봉토(정제된 흑갈색사질점토)가 일부 확인되었다. 3기의 석곽은 축조방법에 있어 대체로 비슷한데, 먼저 석곽의 벽석 최상단에서 묘광선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지과정에서 경사면 상단 일부만 굴착하여 묘광을 만든후 벽석을 쌓으면서 동시에 성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벽석의 축조는 대체로 양장벽은 최하단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판상할석을 4-5매 수적하고 그 위에 편평할석을 평적하였으며 단벽은 판상할석 1매를 수적하고 그 위에 소형의 편평할석을 평적하거나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였다. 석곽의 규모는 1호는 길이 218㎝, 너비 60㎝, (현)높이 50㎝, 2호는 길이 230㎝, 너비 60㎝, 높이 60㎝, 3호는 길이 210㎝, 너비 60㎝, 높이 74㎝ 정도이다. 바닥에는 소형의 할석을 1-2단 정도(1호, 2호) 깔거나 풍화암반덩어리(3호)를 사질토와 함께 전면적으로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으며, 유물은 1-2호와 1-3호의 북서단벽쪽에 치우쳐 부가구연대부장경호, 소형장경호, 파수부호, 단각고배 등이 출토되었다.

② 2호분
유구는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게 위치하는 횡구식석실묘이다. 북서쪽으로 약 2m 떨어져 1호분이 위치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 3m 정도 떨어져 3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조사전 유구는 봉토가 거의 삭평되었고, 나무가 한가운데 심어져 있으며 여기저기서 교란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분구는 원형에 가까우며 중앙에 석실이 설치되어있다. 잔존분구의 규모는 장축 710㎝, 단축 690㎝ 정도이다. 분구의 북서쪽 가장자리에서 제사유물로 추정되는 토기 호 1점이 노출되었고 그 부근에서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할석조구조물(제사곽?)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석실의 남동쪽 가장자리에서 석조구조물이 확인되었는데 조사중이다. 현실은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규모는 장축 260㎝, 단축200㎝, 최대높이 82㎝ 이며 주축방향은 N-59°-E이다. 현실은 길이 160~80㎝정도 되는 판상할석을 이용하여 최하단은 수적하고 그 위는 평적하였는데 평적된 벽석은 2단정도 남아 있었다. 시상은 바닥에 전면적으로 깔려있는데 시상의 방향과 너비, 높이, 사용된 석재 등을 통해 볼 때 3차례정도 마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시상은 후벽쪽에 붙혀 가장 아래에서 확인되는데 너비는 약 80㎝이며 방향은 후벽과 나란하다. 2차로 추정되는 시상은 1차 시상면과 나란하게 붙혀 마련되었고, 너비가 약 70㎝정도로 좁다. 3차시상은 전벽쪽에서 확인된다. 3차시상은 2차 시상 위에서 확인되는데 1,2차 시상보다 정연하지 않으며 시상석의 크기도 작으며 편평하지 않다. 너비는 약 80㎝이며 전벽쪽에 붙혀 전벽방향과 나란하다. 입구부는 전벽과 우벽이 연결되는 부분에 위치하는데 규모는 길이 약 65㎝, 너비 65㎝, 높이 40㎝ 이고 최하단에는 판상할석을 수적하고 그 위에는 소형할석을 평적하였는데 현재 2단 정도 남아있다. 내부에는 길이 40~50㎝, 높이 20~30㎝ 내외의 할석과 상대적으로 소형 할석을 이용해 폐쇄시켰다. 유물은 전벽과 좌벽이 만나는 부분에 소형(대부)장경호 5점, 단각고배 1점, 파수부호 1점, 부가구연대부장경호 1점 그리고 시상에서 도자, 철촉 등 철기류 8점이 출토되었다.

③ 3호분
유구는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게 위치하는 횡구식석실묘이다. 북서쪽으로 3m 정도 떨어져 2호분이 위치하고 있고 남동쪽으로 2m 정도 떨어져 4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조사전 유구는 봉토가 거의 삭평되었고 교란구덩이가 여러군데서 확인되었으며 남서쪽 가장자리는 후대에 절토되어 훼손되었다. 분구는 원형에 가까우며 중앙에 석실이 설치되어있다. 잔존분구의 규모는 장축 720㎝, 단축 705㎝ 정도이다. 현실은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규모는 장축 212㎝, 단축160㎝, 최대높이 82㎝ 이며 주축방향은 N-65°-E이다. 전벽, 후벽, 좌벽은 최하단에 길이 100㎝~80㎝, 너비 50㎝~40㎝의 판상할석을 2~3매 수적한 뒤 평적을 하였고, 우벽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할석을 최하단부터 평적하였다. 벽석은 최대 4단정도 남아 있었고, 벽석축조방식은 우벽과 전벽이 만나는 부분에서 최하단 수적한 판상할석위에 대체로 2-3단정도 평적하고는 그 위에서부터 모서리의 각을 좁히면서 벽석이 놓여 있는 것을 통해 볼 때 현실은 일정높이까지 수직으로 쌓아올리다가 천정부로 갈수록 좁혀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2호분의 경우 최초 노출상태에서 최상부에 개석의 석재로 추정되는 대형판석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좁혀진 천장을 마지막 단계에서는 개석을 덮어 마무리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상은 소형의 편평할석을 1-2단정도 깔아 마련하였는데, 너비는 70㎝정도이며 우벽과 나란하게 놓여있다. 2,4호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1차례의 시상시설만이 확인된다. 입구부는 좌벽과 전벽이 연결되는 부분에 위치하는데 규모는 길이 약 100㎝, 너비 90㎝, 높이 현60㎝ 이고 최하단에는 판상할석을 평적․수적하고 그 위에는 소형할석을 평적하였는데 현재 2단 정도 남아있다. 내부에는 길이 40~50㎝, 높이 20~30㎝ 내외의 할석 등을 이용해 폐쇄시켰다. 유물은 후벽과 좌벽이 만나는 부분에서 부가구연대부장경호 1점, 소형(대부)장경호 1점, 개 1점, 발 1점 등이 출토되었다.

④ 5호분
5호분은 시굴조사시 확인된 유구로 Ⅱ구역에서 가장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주축방향은 N-82°-E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다. 최초유구는 부식된 황갈색사질점토로 덮혀져 있었고 상부에는 석실의 벽석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평면형태가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의 석실묘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정지하고 경사면 상단부 일부를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벽석을 쌓으면서 성토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실의 벽석은 최하단에는 판상할석 3매 정도를 수적하고 그 위에 편평할석을 평적하였는데 현재 2-3단정도 남아있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10㎝, 너비 167㎝, 높이 현56㎝ 정도이다. 시상은 현실의 후벽에 붙혀 나란하게 길이 20㎝ 내외의 편평할석을 1-2단정도 깔아 마련하였는데 그 규모는 길이 210㎝, 너비 60㎝ 정도이고 전벽쪽의 시상가장자리에는 할석을 수적 또는 평적한 벽단시설이 현길이 110㎝, 높이 20㎝정도 남아있다. 입구부는 훼손되어 남아있지 않았다. 유물은 전벽과 좌벽이 만나는 곳에 부장되었는데 개 4점, 단각고배 2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시상의 중앙부에서 인골이 편으로 일부 출토되었다.


(2) 고려시대

(가) 석곽묘

Ⅱ구역에서 조사된 고려시대 석곽묘는 삼국시대 석곽묘와 달리 주축방향이 등고선방향과 직교하고 삼국시대 봉토분의 주구를 일부 파괴하면서 분포하며, 모두 3기가 조사되었다. 2기의 석곽묘에서는 개석이 전면적으로 덮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① 1호 석곽묘
삼국시대 봉토분인 1호분과 2호분 사이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N-71°-E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직교한다. 최초유구는 개석으로 추정되는 판상할석으로 전면적으로 덮혀져 있었고 이를 제거하자 장방형의 판상할석 5매가 유구의 장축방향과 직교되게 덮혀져 있었다. 개석 사이에는 풍화암반토로 채워져 있었으며 유구내부에는 부식된 황갈색사질점토로 채워져 있었다. 유구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단벽을 판상할석 1매로 수적하거나 편평할석을 이용하여 평적하고, 양장벽은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였는데 최대 8단정도 확인된다. 그리고 북장벽의 중앙 최상부에는 벽석면을 바닥면으로 이용하고 벽면은 편평할석을 수적하거나 벽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길이 26㎝, 너비 25㎝, 높이 18㎝의 감실을 마련하고 위는 편평할석으로 덮었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200㎝, 너비 50㎝, 높이 70㎝ 정도이다. 바닥은 풍화암반면을 정지해 그대로 사용하였다. 유물은 감실에서 청자사발1점과 청자접시 2점이 바르게 포개어져 출토되었고, 이 밖에 청동숟가락 1점이 중앙부에서 남장벽쪽에 치우쳐 20㎝ 정도 바닥에서 이격되어 출토되었으며, 관정이 바닥의 가장자리에서 출토되었다. 이로보아 내부에는 목관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 토광묘

현재 1기가 확인되었는데 1호 토광묘는 삼국시대 봉토분인 3호분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조사구역 밖으로 연결되고 있다. 등고선방향과 직교한다.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로 묘의 규모는 길이 237㎝, 너비 68㎝이다. 내부에서 청동완과 병이 출토되었다.

(3) 기타 토광묘

유구는 삼국시대 봉토분인 4호분의 동쪽에 위치하고 등고선방향과 직교한다.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로 묘의 규모는 길이 175㎝, 너비 50㎝, (현)높이 40㎝이다. 내부에는 흑갈색부식토로 채워져 있었으며 고려시대 토광묘 내부토와는 구분된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다) Ⅲ구역

Ⅲ구역에서는 삼국시대 석곽묘 6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 및 기타 토광묘 1기 등 8기가 조사되었다.

(1) 삼국시대 석곽묘

삼국시대 석곽묘는 6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등고선방향과 나란하게 위치하며 사격장 건설공사로 인해 훼손되어 상부구조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3,4,5,6호의 경우는 상부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거의 바닥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유구는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축조한 수혈식석곽묘로 규모는 길이 309~353㎝, 너비 60~80㎝ 정도이다. 축조방법에 있어 나타나는 공통점은 먼저, 단벽과 장벽은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고 북서단벽쪽과 연결되는 장벽부분 또는 유물(토기류)이 부장된 공간부터는 판상할석 또는 장방형할석을 이용하여 수적하였고 이와 연결되는 북서단벽 역시 장방형 또는 판상할석을 이용해 수적하고 그 위에 소형할석을 이용해 평적한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바닥에는 대체로 소형할석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고 유물(토기류) 부장은 북서단벽쪽에 치우쳐 한쪽에만 부장하였으며 유물이 부장된 곳에는 할석을 깔지 않았다. 또한 시상과 유물부장공간사이에는 편평할석을 이용해 막음(격벽)시설을 하였다(1호, 5호). 셋째로 시상과 유물이 부장된 공간 사이에서 세환이식이 출토되어(1호, 2호, 6호) 피장자의 침향은 북서단벽쪽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차이점으로는 먼저, 석곽의 벽석축조에 있어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한 것과 떼어낸 암반덩어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6호)이 있고, 시상처리에 있어 길이 10-20㎝ 정도의 편평할석을 1-2단정도 깐 것(2호, 3호, 5호)과 상대적으로 소형의 할석을 깐 것(1호, 6호)이 있다. 그리고 5호와 6호묘에서는 주구가 확인되었다.

① 2호 석곽묘

Ⅲ구역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N-56°-E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다. 최초유구는 부식된 황갈색사질점토로 덮혀져 있었고 상부에는 석곽의 벽석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남동쪽 단벽과 양장벽은 길이 30~70㎝, 높이 10㎝ 정도의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고, 북서쪽 단벽과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갑자기 너비 30㎝ 내외, 높이 50㎝ 정도의 판상할석을 수적하였다. 그리고 북서쪽단벽 역시 너비 50㎝, 높이 75㎝ 정도의 판상할석 2매를 이용해 수적하였으며 그 위는 소형의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였는데 현재 평적한 벽석은 8단정도 남아있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309㎝, 너비 60㎝, 높이 87㎝ 정도이다. 바닥에는 편평한 할석을 1-2단정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으며 유물이 부장된 바닥에는 깔지 않았다. 유물은 북서단벽에 치우쳐 유개고배 1점, 고배 2점, 개 3점, 대부장경호 1점, 이부호 1점, 삼뉴부옹 1점 등이 출토되었고, 중앙부에서 유물이 부장된 쪽으로 치우쳐 시상에서 세환이식 1쌍이 출토되었다. 이로보아 피장자의 침향은 북서단벽쪽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② 5호 석곽묘

Ⅲ구역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N-52°-E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다. 최초유구는 부식된 황갈색사질점토로 덮혀져 있었고 상부에는 교란된 것처럼 석재들이 무질서하게 확인되었으며 사격장 건설공사시 이루어진 포크레인의 작업으로 인해 유구의 대부분은 훼손된 상태였다. 유구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남동쪽 단벽은 길이 25㎝, 높이 10㎝ 정도의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고 남동단벽에서 연결되어지는 양장벽은 길이 25~50㎝, 높이 8~12㎝ 정도의 벽석과 비교적 작은 벽석을 사이사이 채워서 평적하였다. 북서단벽쪽은 확인되지 않는다. 벽석은 현재 1-2단만이 확인된다. 석곽의 규모는 (현)길이 346㎝, 너비 79㎝, (현)높이 12.5㎝ 정도이다. 바닥 전면에는 편평한 할석을 1-2단정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고 유물이 부장 된 바닥에는 깔지 않았으며 시상과 유물부장공간을 구분하기 위하여 편평한 할석으로 막음(격벽)시설을 하였다. 유물은 북서단벽에 치우쳐 개 7점, 고배 5점, 유개고배 6점, 대부장경호 3점, 호 1점 등의 토기류와 철촉 등의 철기류 3점 등이 출토되었다.

③ 6호 석곽묘

5호묘에서 남서쪽으로 약 1m 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주축방향은 N-48°-E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나란하다. 최초유구는 부식된 황갈색사질점토로 덮혀져 있었고 상부에는 석곽의 벽석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로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묘광을 마련한 다음, 동남쪽 단벽은 길이 25㎝, 높이 8㎝ 정도의 편평할석을 이용해 평적하고 남동단벽에서 연결되어지는 양장벽은 길이 25~50㎝, 높이 8~12㎝ 정도의 할석과 비교적 작은 할석을 사이사이 채워서 평적하였다. 북서쪽 단벽은 훼손되어 확인되지 않는다. 벽석은 떼어낸 석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다. 벽석은 현재 1단만이 확인된다. 석곽의 규모는 (현)길이 337㎝, 너비72 ㎝, (현)높이 24㎝ 정도이다. 바닥에는 소형의 할석을 1-2단정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으며 유물이 부장된 바닥에는 깔지 않았다. 유물은 북서쪽 단벽에 치우쳐 개 1점, 고배 7점, 유개고배 3점, 연질호 1점, 호 2점, 대부호 2점 등이 출토되었고, 시상에는 철촉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시상의 중앙부에서 유물이 부장된 쪽으로 치우쳐 세환이식 1쌍이 출토되었다. 이로보아 피장자의 침향은 북서단벽쪽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 고려시대 석곽묘

Ⅲ구역에서는 고려시대 석곽묘1기가 조사되었는데 시굴조사시에 이미 확인된 유구이다. 삼국시대 석곽묘가 등고선방향과 나란하게 위치하는데 반해 고려시대 1호 석곽묘는 삼국시대 석곽묘의 주구를 일부 파괴하면서 등고선방향과 대체로 직교되게 위치한다. 최초 유구는 유구확인시 석곽의 벽석재로 보이는 할석들이 노출 되어 있었다. 유구는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고 조성되었고, 장벽에는 소형할석을 평적하고 단벽에는 판상할석을 수적하였는데 현재 부분적으로만 확인되었다. 묘의 규모는 길이 234㎝, 너비 72㎝, 높이 39㎝ 이다. 내부에는 관정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목관시설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청자병, 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3) 기타 유구

유구는 토광묘로 고려시대 1호 석곽묘의 북동쪽 사면말단부에 위치하는데 내부에는 벽석시설은 확인되지 않고, 관정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내부에는 목관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묘의 규모는 길이 189㎝, 너비 77㎝, (현)높이 31㎝ 정도이다. 시대는 미상이다.
2) 유물

삼국시대 석곽묘에서는 개, 고배, 유개고배, 대부장경호, 삼뉴부옹, 이부호 등 토기류 97점과 환두도, 철촉 등의 철기류, 세환이식 및 동경1점 등 금속기류 27점이 출토되었고, 봉토분에서는 부가구연대부장경호, 소형대부장경호, 단각고배, 개, 파수부호, 완 등의 토기류 29점, 철촉, 도자, 착형철기 등의 철기류 10점 등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석곽묘, 토광묘에서는 청자병, 청자사발, 청자접시, 병 등의 도․자기류 7점과 청동숟가락, 청동완, 관정 등의 금속기류 9점, 기타유구 및 상부에서 토기류 1점, 금속류 4점이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토도류 134점, 금속류 50점 등 모두 184점이 출토되었다.

Ⅳ. 調査結果 및 意義

1. 조사결과 삼국시대 봉토분 5기, 석곽묘 7기와 고려시대 석곽묘 4기, 토광묘 1기 및 기타 토광묘 2기 등 모두 19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Ⅰ구역과 Ⅲ구역에서는 삼국시대 석곽묘가 주로 조사되었고 Ⅱ구역에서는 석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봉토분이 조사됨으로써 구역에 따른 묘제의 차이가 있음이 확인하였다. 이번 조사로 불로동고분군에 인접해 있는 봉무동고분군에 대한 성격의 일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대구지역의 삼국시대 고분문화 연구에 일조 할 것으로 판단된다.

2. Ⅱ구역에서 조사된 2,3,4,5호분은 석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봉토분으로 횡구식석실구조이고, 현실의 축조에 있어 최하단에 대형의 판상할석을 2-3매 정도 이용해 수적하고 그 위에 편평할석을 평적하였으며 짧은 입구부는 가장자리에 판상할석을 수적하고 그 내부에는 편평할석을 이용해 패쇄하였다. 이러한 석실 축조기법은 대구 및 대구 주변지역에서 조사된 석실분에는 확인되지 않은 구조로 동일고분군(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1)내에서도 구조적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것이 시기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리고 봉토분은 일정간격을 유지하면서 조성된 점으로 보아 시간성 및 기획성이 어느정도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3. Ⅲ구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석곽묘는 할석을 평적하여 구축한 수혈식구조로, 바닥은 시상이 마련된 공간과 유물(토기류)이 부장된 공간 사이에 소형편평할석을 이용해 막음(격벽)시설을 하여 구분하였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최근에 조사된 불로동 91․93호분과 일제시대에 조사된 해안면1,2호분 등의 구조와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관련성이 주목된다.

4. 이번조사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석곽묘 및 봉토분은 그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중심연대는 대략 5세기후반-6세기후반대로 볼 수 있고, 인근에 위치한 이 지역의 중심고분군인 불로동고분군의 주변부에 위치한 하위집단의 고분군으로 추정되며, 봉무동고분군 조영집단의 취락은 최근에 조사된 어패럴단지 진입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생활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2003) 등을 통해 볼 때 고분군이 위치한 구릉 사면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서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평지일대로 추정된다.

5. 유적은 봉무동고분군의 중심고분이 위치하는 구릉에서 북서쪽 사면일대에 위치하는데, 좁은 면적이지만 위치를 달리하는 Ⅰ,Ⅱ,Ⅲ구역에서 모두 고분이 확인되었고, Ⅱ구역 북동쪽 조사경계 밖으로도 유구가 확인되며, 최근에 조사된 경부고속도로 확장구간에서 확인된 유적(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1)을 통해 볼 때 봉무동고분군은 아주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볼 때, 현재 봉무동사격장이 들어선 이 곳은 사격장 건설공사시 상당수의 고분군이 훼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6. Ⅰ구역 1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동경은 삼국시대 석곽묘에서는 출토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유물로 향후 그 성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




 

유적 전경
유적 전경
Ⅰ구역 1호 석곽묘 및 출토동경
Ⅰ구역 1호 석곽묘(삼국) 출토 동경(앞면)
Ⅱ구역 전경
Ⅱ구역 1호분 전경
Ⅱ구역 2호분 전경
Ⅲ구역 전경
Ⅲ구역 2호분 석곽묘
Ⅱ, Ⅲ구역 석곽묘(고려) 출토 유물
Ⅲ구역 석곽묘 출토 토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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