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州 奉吉里遺蹟 發掘調査 경주 봉길리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 삼국
성격 취락, 경작, 생활유적
회수 10
개최일자 2003.04
조회수 1,719
신월성 원전부지내(Ⅰ,Ⅱ지구)
慶州 奉吉里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 槪要

1. 유적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봉길리 산 182번지 일원
2. 조사 기간 : 2002년 3월 6일 ∼ 2003년 5월 27일(예정)
3. 조사 면적 : 17,094㎡(Ⅰ지구-9,320㎡, Ⅱ지구-7,774㎡)
4. 조사 기관 : (財)嶺南文化財硏究院(원장:李白圭)
5. 조사의뢰기관 :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월성원자력본부




Ⅱ. 調査 經過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월성원자력본부에서 추진하는 월성원전 신규원전사업과 관련하여 지표조사시 확인된 유물산포지 및 고분군에 대한 문화재 시굴조사를 2001년 7월 18일부터 12월 28일까지 본 연구원에서 실시한 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삼국시대 분묘 및 경작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는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취락유적과 삼국시대 논 유적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삼국시대 분묘군(봉길리고분군2)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분담하여 추진하고 있다. 조사대상지역에 대한 구역 구분은 청동기시대 취락유적을 Ⅰ지구(시굴조사 결과의 F지구), 삼국시대 경작관련유구를 Ⅱ지구(시굴조사 결과의 E지구)로 명명하여 조사내용의 설명에 기준이 되도록 하였다. 조사대상지역은 후대의 경지정리과정과 임야의 조림관계로 구지형이 대부분 훼손되어 주거지의 잔존상태는 양호하지 못하다. Ⅰ지구에서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4동, 삼국시대 분묘 3기, 수혈유구 3기, 조선시대 분묘 15기이다. Ⅱ지구는 삼국시대의 경작관련 석축열과 논, 청동기시대의 논과 관련한 구상유구와 주혈 등이 확인되어 조사중에 있다.


Ⅲ. 遺蹟의 立地 및 考古學的 環境

조사대상지역은 서쪽으로 험준한 산지인 토함산과 조항산 및 우산과 연결되고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있다. 동해안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평지는 대부분 해안가 또는 산지와 산지사이에 형성된 곡간에 일부 형성되어 있으며, 조사대상지역에서도 이러한 지형적 특성이 잘 관찰된다. 조사대상지 중 Ⅰ지구에는 해안으로부터 200여m 떨어진 완만한 구릉지대로 청동기시대의 취락유적이 위치하고, Ⅱ지구에는 구릉에서 흘러 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충적지로써 곡간평지로 이루어져 삼국시대의 경작유구와 청동기시대의 구상유구가 형성되어 있다. 조사대상지역의 주변유적으로는 남쪽 나아천 하구에 신석기시대 유적인 하서리 즐문토기산포지와 청동기시대 취락유적인 하서리유적이 위치한다. 한편, 조사대상지역 북쪽 대종천 하구 부분에는 삼국·통일신라시대 유적이 다수 분포하는데, 대표적인 유적은 감은사와 이견대가 있으며, 대종천 남쪽 구릉에는 삼국시대 고분군인 봉길리고분군1이 위치한다. 그리고 그 앞의 동해바다에는 대왕암이 위치한다. (도면1 참조)
이상과 같이 조사대상지역이 위치한 이 지역은 선사시대에는 동해안가의 해안 평지와 곡간 평지를 중심으로 다수의 유적이 분포하며, 삼국·통일신라시대는 문무왕릉에서 알 수 있듯이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는 군사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여, 봉길리고분군1, 봉길리고분군2 에서처럼 대규모의 분묘군이 조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Ⅳ. 調査 內容

1. Ⅰ지구
가. 遺構
1) 靑銅器時代 住居址
본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14동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구릉의 정선부로부터 사면을 따라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주거지는 표토층 아래의 기반층인 황갈색 풍화암반층에서 확인되며, 사면 아래쪽은 대부분 후대에 유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평면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등고선과 평행하게 배치되어있는 벽면의 길이가 620∼710cm사이의 주거지는 장방형으로, 벽면의 길이가 374∼460cm사이의 것은 방형으로 추정되지만 사면아래쪽의 유실이 심하여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확인된 주거지중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주거지는 9호주거지와 10호주거지 2동 뿐이다. 이 들 주거지의 규모는 10호의 경우 장벽이 710cm, 단벽이 476cm이며, 9호주거지의 경우 장벽이 480cm, 단벽이 340cm이다.
구조는 주혈의 배치형식에 따라 4주식과 6주식으로 확인되며, 방형주거지는 4주식을, 장방형 주거지는 6주식을 기본으로 한다. 내부시설로는 4호주거지를 제외한 모든 주거지에서 벽구가 확인되기는 하나 사면 아래쪽이 후대에 대부분 유실되어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상태를 보면 내부의 벽면을 따라 ㄱ, ㄷ, ㅁ자상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단면형태는 U자형이다. 벽구의 규모는 폭 10∼25cm내외, 깊이 6∼10cm내외이며, 일부 벽구내 주혈이 확인되는 주거지도 있다. 10호주거지의 벽구 주변에는 벽체토로 이용되었던 점토가 소토화되어 노출되었고, 두께 1∼2cm내외의 판재목탄이 등간격으로 노출되었다 노지는 모두 토광형의 얕은 수혈식의 노지로 주거지 내부에 1개의 노지가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장방형주거지로 분류되는 6호주거지에서는 2개의 노지가 확인된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없이 생토면을 평탄하게 사용한 예가 일반적이나 1호·2호·8호·9호·10호 주거지의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불다짐 처리하여 상면을 사용하였다.
중복은 4호·5호·14호 주거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후대의 유실 때문에 4호와 14호 주거지의 선후관계만을 파악할 수 있다. 8호주거지의 경우 주거지의 증개축의 흔적인 벽구의 중복현상이 확인되었는데 3회 정도의 증개축이 행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화재로 인해 폐기된 경우는 5호·9호·10호 주거지뿐이며, 대부분 마을의 이동 등으로 인해 폐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릉상에 위치한 주거지는 대부분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도록 설치되어있으며, 장벽이 바다를 향하게 축조되어있다. 취락이 입지한 구릉의 공간활용을 볼 때 10호와 9호주거지가 위치한 곳이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구릉의 경사가 완만할 뿐 아니라 주변에 비교적 넓은 공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아울러 다른 주거지의 점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이 들 주거지가 취락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9호와 10호주거지에서 구릉정상부로 향하여 약 40m떨어져 14호주거지를 중심으로 주거군이 형성되어있으며, 이들 주거군과 다시 구릉정상부로 향해 30m떨어져 4동의 주거지가 모여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주거지의 분포를 통해 볼 때 봉길리 취락은 크게 3개의 주거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심주거군에는 중형의 10호주거지를 포함한 2동의 개별주거지로, 나머지는 중소형주거지 4-5동의 주거지로 이루어진 3개의 주거군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들 주거군과는 별도로 동편사면아래에는 8호주거지 1동이 축조되어있는데, 내부조사결과 주거지의 증개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른 주거군과는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있어 취락내의 특수한 목적을 담당한 개별주거지일 가능성이 높다. 출토 유물중 토제어망추는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확인되고 있어 봉길리취락의 생업과 관련한 한 면을 엿 볼 수 있다.

2) 三國時代
조사대상지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유구는 목곽묘 3기와 수혈유구 3기이다. 목곽묘는 조사대상지역의 중앙 동편의 구릉 정선부의 비교적 평탄한 부분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다. 목곽묘의 규모는 길이 200cm내외, 폭 50cm 내외의 소형이며, 유물도 연질토기나 고배같은 토기 1점과 도자 1점 정도로 매우 빈약하게 부장되어 있다. 유구의 규모나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인접한 봉길리고분군 2와 구별되는 당시의 하층민의 분묘일 가능성이 높다. 수혈은 목곽묘 주변에서 확인되었으며, 수혈 1호 내부에는 호가 매납되어 출토되었다.

3) 朝鮮時代
조사대상지역에서 조사된 조선시대 유구는 토광묘 13기, 옹관묘 2기이다. 대부분 구릉의 북동쪽 사면에 밀집되어 분포하나 일부 남서쪽 사면에서도 확인된다. 토광묘의 봉토부는 남아있지 않고 상부는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여 축조되어 있다.
묘광은 기반층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설치되어 있으며, 규모는 길이 100∼190cm, 폭 38∼52cm, 깊이 18∼75cm 정도이다. 내부에는 암반부스러기가 혼입된 황갈색 사질토가 채워져 있을 뿐 별다른 시설이나 목관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유물은 1호에서 구슬 1점이 출토되었을 뿐이다.
옹관묘는 모두 2기가 조사되었는데 크기가 비슷한 파수부옹 2점을 구연부를 서로 잇대어 만든 합구식 옹관이다. 묘광의 규모는 주변에 밀집하여 분포하는 토광묘와 비슷하며, 주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출토유물은 옹관으로 사용된 파수부옹 뿐이다.

나. 出土遺物

1) 靑銅器時代
조사대상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청동기시대의 유물로서 토기·석기가 주류를 이루며 현재 총 53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토기는 무문토기 발과 호가 있으며, 횡사선문·공열문이 확인되며, 파수가 달려있는 무문토기호도 확이된다. 석기는 석창, 석촉, 반월형석도편,편 등이 있다. 본 유적의 출토유물은 다른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에 비해 빈약한 편인데, 이는 주거지의 폐기원인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본 유적의 주거지는 화재에 의해 폐기된 5호·9호·10호 주거지를 제외하고는 자연 폐기된 주거지이며 유물의 출토량은 화재로 폐기된 5호·10호 주거지가 가장 많다. 토제의 경우 가장 많이 출토된 유물은 어망추인데, 이는 본 유적의 입지에서 보이는 어로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2) 三國·朝鮮時代
삼국시대 유물은 대부호, 호, 도자 등이 출토되었고, 조선시대 유물로는 옹관묘에 옹관으로 사용된 파수부옹과 토광묘에서 출토된 구슬 1점이 있다. 그 중 파수부옹은 흔히 물독이나 젓독으로 사용된 기형이며 광명단 유약이 아니므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늦은 시기 유물로 판단된다.

2. Ⅱ지구
가. 層位
조사대상지의 상면은 최근의 경작과 함께 사토장으로 이용됨으로 교란이 심하다. 따라서 근세퇴적층(최근 논)의 경우 일부지역에서만 확인된다. 삼국시대문화층은 조사구역의 중앙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북서편으로 가면서는 삭평되어 9층이 표토아래에서 확인된다. 청동기시대의 문화층은 조사구역의 북서에서 남동으로 경사가 져 있으며, 관련유구는 북서편에서 확인된다. Ⅱ지구에서 조사된 층위들을 연결하여 해석해 본다면, 3기 응회암층(17,18층)이 조사구역 전반에 걸쳐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이후 자연퇴적층인 13층에서
16층이 지역을 달리하며 퇴적되어있고, 무문토기가 포함되며 관련유구가 확인되는 청동기시대문화층이 10층∼13층으로 형성되어있으며, 그 위로 비교적 두텁게 삼국시대층이 5층∼9층까지 형성되어있다. 삼국시대의 층에서는 구상유구, 경작관련석렬유구, 논 등이 확인되었다.

나. 遺構
1) 三國時代
(1) 石列遺構
조사구역의 남쪽에 위치하는 석열유구는 근세 경작층을 제거한 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석열은 남동에서 북서방향으로 길게 축조되었고, 북서편의 구상유구의 방향과 나란하다. 직경 20㎝이상의 할석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석열의 외곽은 부분적으로 장방형 할석을 이용하였다. 석열 중심부에 위치한 할석은 반듯한 면을 상면으로 이용하였고, 2∼3단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석열의 중앙에 배수구 2곳이 위치한다. 배수구는 석열방향과 직교되게 위치하며, 이중 남쪽에 위치한 것은 내부에 목조구조물이 설치되었고, 북쪽 배수구는 덮개돌이 얹혀져 있다. 석열은 남쪽에서 경사가 높은 북쪽으로 가면서 폭이 좁아지고 있으며, 삼국시대 구상유구가 확인되는 곳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석열의 길이는 32m이며, 폭은 평균 150㎝로 남쪽이 200㎝, 북쪽이 70㎝이다.
(2) 溝狀遺構
조사구역의 중앙에 위치하며, 구상유구 주변에 장방형의 할석들이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석열유구와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구상유구는 토층조사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포함된 5·6층에 위치하며, 구상유구 내부와 주변에서 다량의 도질토기편들이 확인되고 있다. 구상유구의 폭은 평균 20㎝이며, 깊이는 5㎝ 미만이다.
(3) 논(畓)유구
Ⅱ지구에서 확인되는 경작과 관련한 조
사는 진행중이어서 그 성격이 명확하지는 않다. 논면은 계단상을 이루며, 토층 조사에서는 단차이가 분명하지만, 평면조사에서는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 삼국시대의 논면은 8층과 9층이며, 이 중 9층면에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논의 경작범위가 확인되고 있다. 확인된 논둑의 폭은 50㎝이며, 논면의 폭은 170∼240㎝로 동서방향으로 확인된다
2) 靑銅器時代
Ⅱ지구에서 확인되는 청동기시대의 유구는 현재 조사중이며, 층위조사 결과 10층, 11층, 12층이 관계되는 층으로 확인되었다. 10층과 11층은 유물포함층으로 무무토기편과 토제어망추 등이 확인되고 있다. 경작과 관련된 12층에서는 구상유구가 확인되고 있다. 구상유구는 12층을 제거한 상태에서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확인된 구상유구는 ‘T’자상과 남서에서 북동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것이 확인되고 있다. 구상유구의 폭은 30∼70㎝이며, ‘T’자상 구상유구의 직교하는 부분에서 길이 160㎝, 폭 8㎝ 정도의 족적이 확인되고 있다. 구상유구간의 간격은 720㎝이다. 구상유구의 동쪽과 북쪽편에서 직경 20㎝의 주혈들이 확인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정형성은 보이지 않는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1. Ⅰ지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취락은 3개의 주거군으로 이루어진 해안의 구릉성 취락으로 평면형태 및 규모, 내부시설 등을 통해 볼 때, 포항, 경주, 울산으로 이어지는 경북동해안일대의 청동기시대의 취락들과 동일한 구조를 보이고 있어 경북동남지방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지역사 연구에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2. 봉길리 청동기시대의 취락은 중복관계를 고려한다면 10-12동으로 구성되어있고, 환호나 기타 방어시설이 보이지 않는 점, 취락내 특출한 대형주거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점 등을 통해 볼 때, 해안가의 구릉에 입지한 소규모의 취락으로 판단되며, 주거지마다 출토되는 어망추 등은 취락의 주된 생업활동을 이해하게 해준다.

3. Ⅱ지구에서는 삼국시대 문화층과 청동기시대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삼국시대의 경작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이 맞은편 구릉에 축조된 봉길리고분2와 동일하여 이들 고분군 조영집단의 생활유적임이 밝혀졌다. 청동기시대의 구상유구는 현재 일부분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나. 구상유구 주변에서 족적흔 등이 확인되고 있어 Ⅰ지구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경작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유적 전경
Ⅰ지구 전경
10호 주거지 전경
목곽묘 전경
석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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