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淸道 陳羅里遺蹟 發掘調査 청도 진라리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
성격 지석묘, 주거지
회수 9
개최일자 2002.11
조회수 1,881
영남문화재연구원 현장설명회 자료 31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건설공사구간내
淸道 陳羅里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 위치 : 경북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일원
2. 조사 기간 : 2002. 7. 29. ∼ 2003. 3. 3.(예정)
3. 조사 면적 : 19,122㎡
4. 조사 기관 : (財)嶺南文化財硏究院(원장:李白圭)
5. 조사의뢰기관 : 대구-부산간고속도로주식회사


Ⅱ. 遺蹟의 立地와 環境

유적이 위치한 淸道郡은 慶尙北道 최남단에 해당하며,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는 좁은 형상이다. 청도군은 龍角山(해발 692.5m)과 龍塘山(해발 843.7m)에 의해 형성된 곰티재에 의해 동쪽의 山東地域과 서쪽의 山西地域으로 나뉘어진다. 산동지역은 1,000m가 넘는 운문산, 가지산 등의 험준한 지형을 이루는 산악지대이고, 산서지역은 대체로 1,000m 이하의 산지로 둘러싸인 평탄한 盆地로서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河川은 산서지역을 흐르는 淸道川과 산동지역을 흐르는 東倉川으로 크게 이분된다. 청도천은 비슬산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풍각천, 현리천, 오산천, 부곡천, 대곡천, 다로천 등의 지류를 이루고 있다. 이 하천의 주변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낮은 구릉지대에는 청동기시대 지석묘나 삼국시대 분묘군이 분포하고 있다.
조사대상지역이 위치한 곳은 산동과 산서지역을 가르는 북쪽의 용각산(해발 692.5m)에서 남쪽으로 청도천을 향해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해당된다. 남서쪽에는 청도천의 지류인 다로천이 흐르고, 동쪽에는 용각산에서 흘러나오는 다로천의 지류들이 합류되는 협곡평야의 중앙부이다. 조사대상지역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구릉에서 흘러 내려온 퇴적물과 하천의 범람성퇴적물이 교차적으로 쌓이면서 형성되었다.
조사대상지역은 최근까지 과수원, 논밭 및 가축축사 등으로 이용되면서 부분적으로 교란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조사대상지역의 주변유적으로는 청동기시대의 무등리지석묘군, 원정리지석묘군, 범곡리지석묘군과 취락유적인 송읍리유적이 위치하며, 동남쪽 구릉지대에는 송읍리·원정리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Ⅲ. 調査內容

1. 調査經過
대구-부산간고속도로주식회사에서 추진하는 대구-부산간고속도로 건설사업과 관련하여 지표조사 결과(영남대학교박물관, 1993)에 따라 2001년 9월 24일부터 12월 2일까지 본 연구원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지석묘, 석관묘, 추정농경지(논)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는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본 연구원에서 2002년 7월 29일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2. 調査方法
조사대상지역을 조사의 편의상 진라리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기준으로 남쪽을 A구역, 북쪽을 B구역으로 나누고 도북방향을 중심으로 기존에 시굴조사시 설치한 기준점을 참고로 하여 20×20m 단위의 Grid를 구획하고 구획된 Grid에 번호를 부여하였다. 유구의 전면노출을 위하여 조사구역범위내 가장자리에 설정한 Trench와 시굴조사 Trench를 정리하여 전체 지형상에서의 유구형성층위 및 전체 토층양상을 파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상부 퇴적토는 전면적으로 제토하였고.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유구확인을 위해 각 Grid 마다 소규모 Trench를 설치하여 유구확인조사를 실시하였다. 지석묘 상석에 대해서는 사진촬영과 실측조사 완료후 조사구역내에 이전 조치하고, 하부구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유구 내부조사는 토층관찰을 토대로 층위별로 파내려가는 수평층위 제토를 원칙으로 하였다. 내부조사가 완료되면 사진촬영 및 유구실측, 유물수습을 하였고 유물수습시에는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수습작업을 진행한 후 유물목록을 작성하였다. 개별유구의 조사가 완료된 이후에는 유구종합기록지와 유구배치도를 작성하였다.

3. 調査內容
유적의 동쪽부분은 하천의 유수에 의하여 유구의 일부가 유실된 것으로 보이며, 서쪽부분은 유구들이 조사구역 밖으로까지 계속 연장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으로 보아 취락의 중심지는 현재 마을이 조성되어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 확인된 유구는 수혈주거지 64동, 고상식건물지 2동, 지석묘 3기, 지석묘 상석으로 추정되는 거석이 4기, 석관묘 2기, 수혈 8기, 노지 9기, 구상유구 2기를 비롯하여 유적의 북쪽 경계부분에 추정 농경지(논)가 확인되었다.

가. 遺構
1) 住居址
주거지는 암갈색사질점토층이 확인되는 층과 하천의 범람에 의한 기반층의 훼손이 적은 부분에 산재하고 있어 당시에는 지금보다 많은 수의 주거지가 분포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명확하지 않으나 현재까지의 자료로만 보았을 때, 본 유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평면형태를 보면 세장방형계통·(장)방형계통·원형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주거지의 규모는 대체로 세장방형주거지가 대형이고 (장)방형과 원형주거지는 중소형이다. 배치형태에서 보이는 특징은 대형주거지(세장방형주거지)를 중심에 두고 주변에 (장)방형의 수혈건물지가 배치되어 있다. 본 유적에서는 이러한 group 현상이 뚜렷이 관찰된다. 주거지간 중복관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장)방형계통의 주거지는 서로 중복되어 있거나, 후대에 원형주거지들에 의해 중복되고 있어 두 형태간의 선후를 대변해 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원형주거지인 A5호와 A6호에서는 주혈과 수혈의 중복이 확인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원형주거지에 있어서 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세장방형주거지인 B1호와 A8호는 위석식노지를 갖추고 있고, 원형계통의 주거지는 소위 송국리형주거지로서 가운데 하나의 타원형수혈과 외부의 양주공형태를 하고 있다. 폐기양상은 화재에 의한 폐기가 A3호와 B10호, 홍수에 의한 폐기가 B1호에서 나타난다. 원형계통의 주거지는 화재에 의한 폐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형주거지에서는 유물이 거의 출토되지 않는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원형주거지는 주로 인위적으로 폐기된 것으로 해석된다.
주거지는 모두 64동이 확인되었는데, A구역의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① A-1호 주거지
B11Grid 북서편에 위치하는 평면 원형의 수혈주거지이다. 남동쪽으로 약 3m 정도 떨어져 2호·9호 주거지가 위치하고, 동쪽으로 4m 떨어진 지점에 4호 장방형 주거지가 위치한다. 또한, 북쪽으로 1.5m 떨어진 지점에 8호 대형주거지가 위치하고, 북동쪽으로 14m 지점에 5호 원형주거지가 위치한다. 규모는 490×455㎝, 잔존깊이 25㎝이다. 주거지 내부 퇴적토는 크게 3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층의 퇴적은 수평퇴적양상을 보이고 있고, 바닥에는 회백색점토가 얇게 깔려 있다.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주거지의 바닥 중앙에 장축 87㎝, 단축 40㎝, 깊이 22㎝의 말각장방형에 가까운 竪穴이 있고, 좌우에 주혈이 위치한다. 수혈의 장축방향은 북서-남동이며, 내부 바닥에서는 목탄이 소량 검출되었다. 북서쪽 주혈은 폭 19㎝, 깊이 30㎝, 남동쪽 주혈은 폭 23㎝, 깊이 33㎝이다. 주거지 바닥과 매몰토에서 목탄이 극소량이 확인되었는데, 매몰토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서쪽 벽면 아래 바닥에서 지석 1점이 출토되었고, 북쪽 벽면 앞에서 바닥에서 뜬 상태로 석촉 1점과 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의 노출양상과 유물을 통해 볼 때, 주거지의 폐기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퇴적토에 의해 자연적으로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② A-5호 주거지
B10Grid 북서편에 위치하는 평면 원형의 수혈주거지이다. 남서쪽으로 약 14m 정도 떨어져 1호 원형주거지가 위치하고, 북동쪽으로 10m 떨어져 6호 원형주거지가 조성되어 있다. 규모는 597×488㎝, 잔존깊이 25㎝이다. 주거지 내부 퇴적토는 크게 3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바닥면 직상층에 블록상의 황갈색사질점토가 다량 포함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의도적인 자연폐기로 추정된다. 바닥에는 회백색점토가 얇게 깔려 있는데, 벽면 앞쪽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벽제토에 의해 바닥면이 가려지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주거지의 바닥 중앙에 장축 122㎝ 단축 52㎝ 깊이 17㎝의 타원형 竪穴이 있고, 좌우에 주혈이 위치한다. 수혈의 장축방향은 북서-남동이며, 내부 바닥에서는 목탄이 극소량 검출되었다. 북서쪽 주혈은 폭 42㎝, 깊이 15㎝, 남동쪽 주혈은 폭 37㎝, 깊이 193㎝이다. 북서쪽과 남쪽 벽면에는 크기가 다양한 여러 형태의 주혈이 확인되는데 그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벽제토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 바닥과 매몰토에서 목탄이 극소량이 확인되었는데, 매몰토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바닥 중앙부 동쪽에서 지석 1점이 출토되었고, 매몰토에서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주거지의 노출양상과 유물을 통해 볼 때, 주거지의 폐기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퇴적토에 의해 자연적으로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2) 高床式建物址
고상식건물지는 현재 2동이 확인된 상태이다. A5호 원형주거지 부근에 서로 근접하여 조성되었다. 주위에 연결이 안되는 주혈들이 흩어져 있어 또 다른 고상건물지가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고상건물지는 규모 및 주축방향에 있어서 서로 차이를 보이며, 특히 2호는 원형주거지와 중복되어있고, 면적이 31.6㎡인 대형건축물로 수혈주거지와의 관계 및 용도가 무엇인지가 해결과제라고 할 것이다.


3) 支石墓와 石棺墓
지석묘 3기, 지석묘 상석으로 추정되는 거석이 4기(1기는 하천범람으로 문화층이 유실되면서 하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3기는 경작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주민들에 의해 구덩이에 매몰됨.), 석관묘 2기가 확인되었는데 유적내에서 당시 하천쪽으로 집중되어 배치되었다.
지석묘 1호는 지석묘 2호와 2m정도 떨어져 있다. 1호는 대소의 할석을 이용해 조성된 부석위에 상석을 조성하였고, 상석의 윗면과 옆면이 다소 표면탈락되었다. 2호는 개석위에 자갈과 큰 할석을 이용하여 부석을 조성한 다음, 그 위에 상석을 조성하였다. 상석의 윗면은 많이 결실된 상태이다. 지석묘 1호의 상석크기는 240×132×110㎝, 무게는 8t이며, 지석묘 2호 상석은 크기 205×114×50㎝, 무게는 3t이다.
1호와 2호 지석묘 상석 주변에 부석이 조성되어 있으나, 근대 경작에 의해 대부분 유실되고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부석은 20∼40㎝ 정도되는 대소 할석을 사용하여 조성하였다. 지석묘 하부에서는 각각 1기의 석관묘가 확인되었고, 1호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지점에서 석관 1기(3호)가 확인되었다.

① 1호
석관의 주축방향은 N-71°-W이고, 규모는 278×190×60㎝이다. 개석은 판석을 2겹으로 놓아서 조성하였다. 개석위에는 부석이 덮여 있으며 상석의 무게로 인해 개석 일부가 석관 내부로 함몰되어 있었다. 벽석은 천석을 이용하여 세로쌓기하였고, 바닥은 5∼15㎝정도의 평평한 천석을 깔고 그위에 1∼2㎝ 정도되는 잔자갈을 깔았다. 유물은 중앙부 북장벽에 접하여 병부가 서쪽을 향한 채 마제석검 1점이 출토되었는데, 재질이 약하여 표면이 심하게 박리된 상태이다.

② 2호
1호 석관묘 남서쪽으로 170㎝ 떨어져 위치한다. 석관의 주축방향은 N-55°-W이고, 규모는 275×158×42㎝이다. 개석은 3겹으로 쌓아서 조성되었고, 개석위에 자갈을 이용하여 부석으로 덮었다. 근대경작과 상석의 무게로 인해 개석 일부가 석관 내부로 함몰되어 있다. 벽석은 천석을 이용하여 세로쌓기하였고, 바닥은 판석을 이용하였으며, 중간중간에 5∼10㎝의 자갈을 놓았다. 유물은 동단벽에서 홍도 1점이 출토되었고, 남장벽 동쪽에서 식옥1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동단벽 앞쪽 바닥에서 뼈가 일부 남아 있다.

③ 3호
석관의 주축방향은 N- 63°-W이며, 규모는 300×64×25㎝이다. 1호와는 동서방향으로 30cm정도 떨어져 위치한다. 벽석은 천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세로쌓기하였으나, 근대경작으로 인해 다소 함몰된 상태로 2단정도 남아있다. 남단벽은 1단정도만 남아있고, 벽석과 묘광사이에 5㎝정도의 자갈을 채웠다. 바닥은 판석을 이용해 조성하였는데 판석과 판석사이에는 작은 할석을 채워넣어 조성하였다. 유물은 중앙부 북장벽에 접하여 병부가 서쪽을 향한 채 마제석검 1점과 남장벽에서 석촉 11점이 출토되었다. 석촉 1점은 표면박리가 심해 수습이 불가능하였다.

4) 추정 농경지(논)
유적의 북쪽 A0·B0Grid의 남북Tr토층에서 추정 농경지(논) 1개층(?)이 확인되었다. 현재 토층조사중으로 아직 평면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추정 농경지(논)의 판정 근거로는 현재 산화철·망간의 분리집적 등은 보이지 않으나 토층단면에서 논의 경계를 보여주는 계단상의 논둑단면, 자연습지 퇴적물이 아닌 이질토가 혼입된 인위층 등을 확인하였다. 향후 정밀한 검토 및 각종의 분석을 통하여 검증자료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추정 농경지(논)층의 연대는 토층단면에서 세장방형주거지인 B1호가 논 유구층을 파괴하고 조성된 것으로 볼 때, 위석식노지를 갖추고 있는 주거지보다 앞선 시기에 해당된다.

나. 出土遺物
수혈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 석기가 주류를 이루며, 전체조사가 진행되지 못한 관계로 정확한 양상은 알 수 없다. 토기는 A3호 장방형주거지에서 발형토기와 호형토기가 출토되었고, 문양은 구순각목이 시문되어 있다. A8호 세장방형주거지에서는 구순각목단사선문이 시문된 토기편이, A6호 원형주거지에서는 파수부발형토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B10호 세장방형주거지, B13·14호 장방형주거지에서 발형토기가 한 쪽 모서리에 거꾸로 놓여져 출토되었다. 석기는 석촉, 석도, 석부, 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지석묘에서는 홍도 2점, 석검 2점, 석촉 10점, 식옥 1점이 출토되었다.
지석묘 1호에서 출토된 석검은 二段柄式의 석검으로 명황갈색의 점판암제이다. 검신 중앙에는 稜을 세우려는 의도가 보이나 명확하게 세워져 있지는 않다. 검신 단면은 菱形이고, 병부 단면도 菱形이다.  部는 양쪽으로 길게 突出되었고, 병부는 심부에서 거의 직각으로 내려오다 上段과 下端을 구분하는 오목면을 두고 있다. 全長 40㎝, 檢身長 30㎝, 柄部長 9.5㎝, 檢身最大幅 4.5㎝,  部幅 추정10㎝, 基部幅 추정 13㎝이다.
지석묘 3호에서 출토된 석검은 이단병식의 석검으로 회백색이다. 검신의 단면은 능형이고, 병부는 볼록렌즈형이다. 병부는 심부에서 좁아들어 弧線을 그리며 내려오다 상단과 하단을 구분하는 오목면을 두고 하단에서 다시 호선을 그리며 넓어져 基部에서 最大幅을 가진다. 全長 66.5㎝, 檢身長 48.5㎝, 柄部長 17㎝, 檢身最大幅 7㎝,  部幅 추정14㎝, 基部幅 24㎝이다.
석촉은 지석묘 3호에서 10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4점은 완형이고, 6점은 파손된 상태이다. 모두 一段莖式이며, 경부의 단면은 육각형이 7점, 장방형이 3점이다. 길이는 8.3㎝에서 14.1㎝이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1. 청도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무문토기시대 대규모 취락유적으로서 대구·경산의 영남내륙지역과 영남남부지역과의 문화상의 연관성이나 연속성을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진라리유적은 수혈주거지, 고상식건물지, 지석묘, 농경지(논) 등 다양한 청동기시대 유구들이 확인되어 취락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조사되었다. 취락구성에 있어 주목되는 점은 매장시설로서의 지석묘와 석관묘가 유적내에서 하천쪽으로 집중되어 배치된 양상은 취락공간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3. 청도천 주변에 분포하는 지석묘가 처음으로 조사되어 그 구조를 개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홍도·마제석검·석촉·식옥 등 부장유물이 풍부하여 당시 이 지역 지석묘 조성집단의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규모의 지석묘군인 진라리유적에서 대형급의 마제석검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이 지역은 인접해 있는 대규모 지석묘군인 범곡리지석묘군을 중심으로 보다 발달된 청동기시대의 문화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주거지 조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명확하지 않으나 현재까지의 자료로만 보았을 때, 세장방형 계통, (장)방형계통, 원형계통의 주거지로 구분되고 특히, 원형주거지들은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로서 동일한 주거지가 조사된 북쪽의 대구지역과 남쪽의 밀양지역과의 중간지점으로서 연관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A구역 전경
B구역 주거지밀집군
주거지 5호 전경
지석묘 전경
지석묘 개석 제거후 전경
지석묘 3호 노출전경
지석묘 3호 출토 마제석검
주거지출토 무문토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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