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蘆邊洞遺蹟 發掘調査 대구 노변동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삼국,조선
성격 요지,생활유적,고분,사직단
회수 21
개최일자 1999.08
조회수 1,731
삼덕동-시지택지간 도로건설 사업구간내 大邱 蘆邊洞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가. 遺 蹟 位 置 : 大邱廣域市 壽城區 蘆邊洞 山3番地 일대

나. 調 査 期 間 : 1998. 10. 7 ~ 1999. 9. 5(예정)

다. 調 査 範 圍 : 약 6,000평

라. 調 査 機 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院長: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 大邱廣域市 綜合建設本部


Ⅱ. 調査經過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에서는 대구광역시 종합건설본부의 의뢰로 지난 1998년 10월 7일부터 현재까지 삼덕동-시지택지간 도로구간내 문화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구간에서는 총 4곳의 유적(연호동유적, 중산동유적, 욱수동유적, 노변동유적) 이 확인되었는데, 그중 3곳의 유적은 조사가 완료되었고, 나머지 1곳인 노변동유적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중이다. 이번에 발표하게 되는 유적은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인 노변동유적에 대한 것이다.
노변동유적 조사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三國時代 木槨墓 100기, 石槨墓 485기 · 甕棺墓 10기, 岩壙墓 5기, 朝鮮時代 社稷壇址 1기등 총 600여기이다.


Ⅲ. 調査內容

1. 遺構

이제까지 노변동유적에서 발굴조사된 유구는 三國時代 木槨墓 46기, 石槨墓 144기, 岩壙墓 5기, 甕棺墓 5기, 朝鮮時代 社稷壇址 1기등 200여기이다.

가. 삼국시대 고분
1) 30호묘(석곽)
유적의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위치하고, 서쪽으로 1m 정도 떨어진 지점에 31호묘가 있으며, 두 유구 모두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360㎝, 너비 75㎝, 깊이 53㎝이고,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석곽의 축조방법은 양장벽에 50~70㎝정도의 편평한 할석을 4매 이용하여 수적한 후 그 위에 20㎝정도의 할석을 2단으로 평적하였다. 남단벽은 1매의 판석형 할석을 수적한 후 그 위에 20㎝정도의 할석을 2단으로 평적하였다. 북단벽은 유실되어 확인이 되지 않는다. 내부토는 황색암반부스러기가 섞여있는 갈색사질점토이나 바닥면과 시상석위에는 5㎝정도의 두께로 회갈색점토가 퇴적되어있다. 바닥시설은 유구의 가운데 부분에 지름 5㎝내외의 잔자갈을 200㎝×60㎝의 크기로 깔아서 시상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양단벽의 유물부장공간에는 시상을 설치하지 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유물은 고배 14점, 개 6점, 대부장경호 2점, 단경호 1점, 철촉, 철부 등이다.

2) 37호묘(석곽)
유적의 정상부에 있는 사직단의 북동쪽모서리 부분에 위치하며, 남쪽에 근접하여 나란하게 36호묘가 배치되어 있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368㎝, 너비 60㎝, 깊이 52㎝이고, 주축방향은 N-40°-W이다. 유구의 개석은 확인되지 않고 주변에 사직단과 관련되는 돌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다. 묘의 축조방법은 먼저 암반층을 파서 묘광을 만들고 그 내부에 장벽은 5매의 판석형 할석으로 수적하고 그 위에 할석을 1~5단 정도로 평적하였다. 양단벽은 1매의 판석형 할석을 세우고 그 위에 1~2단 정도로 할석을 평적하였다. 유구의 가운데 벽석부분이 안으로 밀려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석곽내부의 서단벽쪽에 1매의 편평한
할석을 세워서 주검칸과 부장칸을 구별한 것이 다른 유구에 비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출토유물은 주검칸에서 유개고배 8점, 대부완 2점, 대부장경호 3점, 부장칸에서 고배 4점,
호류 7점 등이 나왔다.

3) 40호묘(목곽)
유적의 정상부에서 남동쪽으로 치우친 경사면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나란한 N-72°-W이다. 묘광은 암반층을 406㎝×140㎝ 크기로 파고 그 내부에 부장칸과 주검칸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부장칸은 주검칸보다 13㎝ 정도 높으며, 주검칸에는 약 30㎝ 정도되는 판석을 깔아서 시상을 마련하였다. 목곽과 묘광사이에는 흙과 천석으로 채워져 있는데, 북장벽은 석곽의 벽석처럼 비교적 짜임새 있게 3~4단 정도로 채워져 있는 것이 확인된다. 남장벽은 깊이가 얼마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드문드문 돌이 채워진 상태이다. 동단벽은 북장벽과 마찬가지로 돌이 짜임새 있게 채워져 있으나 서단벽은 돌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주검칸에서 고배 7점, 대부장경호 1점, 장경호 1점, 철촉 5점, 철부 1점, 철착 1점, 철겸 1점 등이고, 부장칸에서는 단경호류 5점이 출토되었다.

4) 46호묘(목곽)
40호묘에서 서쪽으로 약 5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나란한 N-74°-W이다. 묘광은 암반층을 475㎝×140㎝ 정도의 크기로 파고, 그 내부에 주곽과
부곽을 설치하였다. 주곽과 부곽사이에는 약 37㎝ 크기의 간벽을 두었으며, 간벽은 할석과 암반부스러기로 채워져 있었다. 충전토의 범위로 볼 때 주곽의 규모는 276㎝×105㎝ 정도이고, 부곽은 89㎝×105㎝ 정도이다. 피장자의 침향은 부곽을 서쪽에 둔 것으로 보아 동향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주곽에서 고배개 4점, 철모 1점, 철겸 1점, 철도자 1점 등이 나왔고, 부곽에서는 호류 6점, 배류 2점 등이 출토되었다.

5) 58호묘(목곽)
유적의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경계면 부근에 위치하며,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유구는 430×165×42㎝ 크기의 청석암반층을 파서 묘광으로 이용하고 그 내부에 330×88×28㎝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묘광과 목곽사이에 할석과 풍화암반부스러기를 채워 넣어 충전토로 사용하였다. 바닥은 청석암반의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유물은 양단부장형태이다. 출토되는 유물은 고배, 대부호, 파수부완, 연질발 등이다.

6) 174-1호묘(옹관)
유적의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치우친 경사면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인접해서는 174호묘가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유구는 최초 상면에 큰 호편들로 덮혀있는 것이 확인되어, 이 호편들을 실측하고 제거하자 그 아래에서 적색연질옹 2점을 결구한 합구식 옹관이 확인되었다. 옹관의 장축방향은 남-북향이며, 북쪽의 옹관 구연부가 남쪽 옹관의 구연부 속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옹관옆에서는 연질옹 2점이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방형의 토광을 먼저 파고 그 가운데 부분에 옹관을 설치하기 위한 토광을 다시 팠다. 그리고 가운데 부분에 옹관을 설치하고 그 옆에 유물을 부장한 후 그 위에 다시 대호편들을 덮고 주위에 몇 개의 할석을 놓은 형태이다.

7) 184·185호묘(석곽)
유구는 유적의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치우친 동쪽 경계지점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구의 주축방향은 등고선방향과 나란하다. 185호의 남쪽에는 배묘로 보이는 184호가
위치하며, 그 남쪽에 호상의 주구가 설치되어 있다. 주구의 남쪽 내부에서는 대호를 비롯한 기대, 고배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대호는 주구의 일부분을 파괴하고 후에
설치된 것으로 판단되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185호의 축조방법은 청석암반층을 2단으로 굴착한 뒤 바닥에 벽을 세우기 위한 홈을 파고 그 홈에 판석형 점판암을 세워서 네벽을
설치한 후, 그 위에 천석과 할석을 평적하였다. 유물은 양단부장으로 동단벽에 고배 6점, 개 4점, 대부장경호 2점, 완 1점이, 서단벽에 고배 6점, 장경호 4점, 단경호 2점 등이 출토되었다.
184호는 황갈색사질점토층과 암반층을 파서 굴광을 만들었으며, 네벽은 판석형 점판암을 세워서 축조하였다.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출토유물은 남단벽쪽에서 대부장경호 1점만이 출토되었다.

8) 279호묘(석곽)
유적의 북동쪽 경계면 부근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에 위치하며, 개석이 잔존하는 수혈식석곽묘이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320㎝, 너비 78㎝, 깊이 86㎝ 정도이며, 주축방향이 N-68°-E로서 등고선과 직교한다. 주변에 280·281·282·283·284호묘가 위치하고 있어, 하나의 소군을 이룬다. 석곽의 상면은 6매의 개석을 이용하여 덮었는데, 개석사이사이의 빈공간에는 조그마한 할석들을 이용하여 틈을 막음하였다.
벽석의 축조방법은 바닥에 홈을 판 후 그곳에 판석형 할석 또는 청석을 수적하고, 그 위에 할석으로 평적하였다. 남쪽부분의 벽석은 할석을 이용하였으나, 북쪽부분은 청석을 벽석으로 이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남쪽모서리는 약간의 둔각을 이루나, 북쪽모서리는 직각으로 처리되어 있다.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부장양상을 보면 양단벽에 토기류와 철기류를 부장하였는데 토기류는 대부분 장경호, 단경호, 대부완, 유개삼이호, 유개고배, 연질옹, 각배받침대등 37점을, 철기류는 철탁, 철도자, 철촉등 13점을 부장하였다. 또 남장벽에 치우쳐서 환두대도 1점이 출토되었다.

9) 280호묘(석곽)
279호묘에서 동쪽으로 2m지점에 위치하는 주구가 있는 석곽묘이다. 주축 N-7°-W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규모는 길이 305㎝, 너비 70㎝, 깊이 67㎝ 정도이다. 노출 당시 자연경사면에 의해 서장벽 벽석들은 유구 동장벽쪽으로 많이 밀려있었고, 개석 3매가 서장벽쪽으로 함몰되어 있었다. 개석은 두꺼운 판석형 할석을 사용하였다. 벽석축조방법은
바닥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홈을 파고 그 곳에 판석형 할석을 세운 후, 그 위에 할석을
평적하였다. 평적한 가장 윗단은 얇고 판판한 할석들을 쌓았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없이 암반면을 그대로 사용했다.
유물부장양상을 보면 남단벽에는 대부장경호 2점, 유개고배 4점, 고배 4점, 소옹 1점, 파수부배 1점 등이 부장되어 있고, 북단벽쪽에는 철촉 2점, 교구 1점 등이 부장되어 있다. 그외 단경호편들이 중앙부에 흩어져 있었다. 피장자의 침향은 이식 1쌍이 남단벽쪽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남향으로 추정된다. 주구는 유구의 남쪽부분에 호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규모는 너비 70㎝, 깊이 20㎝정도이다. 내부에서는 고배 2점이 출토되었다.

10) 282호묘(석곽)
279호묘의 북쪽에 인접해서 위치하는 3기의 유구 중에 가장 위쪽에 있는 석곽묘이다. 주축 N-10°-W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380㎝, 너비 90㎝, 깊이 80㎝ 정도이다. 노출 당시 내부에는 개석 1매가 동에서 서로 함몰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벽석축조방법은 바닥에 홈을 파고 그 안에 판석형 할석을 수적하고, 그 위에 할석 내지 천석을 이용하여 평적하였다.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이 유구는 규모가 다소 큰 편이며,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출토유물 중에서 철제집게, 정등과 같은 단야구가 출토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나. 朝鮮時代 社稷壇址

社稷壇은 구릉의 정상부에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장방형의 기초단위에 축조되어있다. 기초단은 청석암반과 점토, 할석과 천석을 이용하여 장방형으로 축조하였는데, 그 규모를 보면 하단은 장축 24m, 단축 16m 정도이고,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천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축조하여 상단의 규모는 장축 18m, 단축 12m, 높이 130~180㎝ 정도의 규모이다. 이러한 기초단 위에 壝가 만들어져 있으며, 그 내부에 社稷壇이 축조되어 있다. 壝의 규모는 장축 18m, 단축 12m, 높이 20~50㎝ 정도이고, 社稷壇의 크기는 남북길이 550㎝, 동서길이 520㎝ 정도로 거의 방형에 가깝다. 이 사직단은 다른 지역이나 문헌에서 확인되는 것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단과 유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과 외곽담장이 없다는 것이다. 외곽 담장을 대신하는 시설로는 사직단 외곽의 자연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2개의 築臺시설로 추정된다. 첫번째 築臺는 유에서 서쪽으로 40m, 북쪽으로 16m 정도 떨어져서 높이 40~130㎝ 정도되게 축조되어 있으며, 두번째 築臺는 유에서 서쪽으로 52m, 북쪽으로 34m정도 떨어져서 높이 50~130㎝ 정도되게 축조되어 있다. 이러한 축대는 북쪽과 서쪽에서는 사직단의 주위를 돌아가면서 확인되는데, 동쪽과 남쪽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동쪽은 이미 절토되었고, 남쪽은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나, 아마 전체적으로 돌아가면서 축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築臺에서 出入門址는 확인되지 않으나 유에서는 확인되고 있다. 유에서 확인된 출입문지는 동·서·북에만 있고 남쪽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데, 이는 후대의 교란이나 민묘의 조성과정에서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社稷壇址에 관한 기록은 1871년(고종 8년)에 간행된 <慶山縣邑誌>에 “在縣西七里”라는 기록이 남아있을뿐 규모나 구조에 대한 기록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2. 出土遺物

유물은 목곽묘에서 고배, 단경호, 직구호, 유자이기, 철겸 등이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석곽묘에서는 고배, 장경호, 단경호, 대부장경호, 대부완, 파수부완, 도자, 철촉, 철탁, 등자 등이 출토된다. 특별한 유물로는 279호묘에서 각배받침대 1점, 환두대도 1점 출토된 것과 282호묘에서 단야구인 철제집게와 정이 출토된 것을 들 수 있다. 그외 이식, 곡옥, 경식 등과 같은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사직단지에서는 기와편이 다량 출토되었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1. 이번 조사의 삼국시대 고분군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유구들이 중복되어 나타나고, 또한 유물도 다량 출토되고 있어 당시 이 지역의 墓制 變化樣相과 土器의 變化發展하는 過程을 硏究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2. 본 유적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600여기와 이미 조사된 1,000여기, 그리고 인접해서 분포하고 있는 잔존유구수를 합하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고분이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고분유적의 규모와 인접한 지역에서 이미 발굴 조사된 당시의 聚落遺蹟들(시지지구 생활유적)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면 당시 이 地域 集團의 規模와 性格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 文獻으로만 확인되었던 朝鮮時代 社稷壇址가 양호한 상태로 發掘調査되어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됨에 따라 조선시대 지방 사직단의 구조와 규모 등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당시의 祭禮儀式을 硏究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을 생각된다.


 

유적 전경
30호 석곽
37호 석곽
40호 목곽
174-1호 옹관
184,185호 석곽
279호 석곽
279호 석곽 유물 세부
279호 출토 환두대도
282 ~ 285호 석곽
사직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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