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永川 淸亭里遺蹟 發掘調査 영천 청정리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삼국,조선
성격 취락,고분,분묘,생활유적
회수 15
개최일자 1998.09
조회수 1,713
영천 향군묘지 조성사업지구내 永川 淸亭里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遺蹟位置 : 慶尙北道 永川市 古鏡面 淸亭里 山 3番地 一帶

2. 調査期間 : 1998. 4. 15.~1998. 10. 12

3. 調査範圍 : 약 2,000평

4. 調査機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院長 : 李白圭)

5. 調査依賴機關 : 大韓民國 在鄕軍人會


Ⅱ. 調査經過

영천을 중심으로 한 고고학적인 발굴조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지극히 부진한 편으로 이번 조사가 영천에서 실시되는 최초의 정식 발굴조사이다. 이번에 조사하게 된 청정리 유적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청정리 유적이 위치한 능선의 일부를 향군묘지로 선정하여 개발하게 됨에 따라 유적의 정확한 분포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의뢰하여 왔다. 이에 우리 연구원에서는 1997년 5월에 지표조사를, 1997. 7. 28 ~ 9. 10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번 조사는 당시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1998년 4월 15일부터 현재까지 發掘調査를 하고 있다.
발굴조사지역은 능선 사면과 정상부의 약 2,000평으로 이제까지 확인된 유구는 靑銅器時代 竪穴住居址, 三國時代 木槨墓․石槨墓․石室墓, 朝鮮時代 竪穴遺構․石烈遺構 등이다.


Ⅲ. 調査內容

1. 遺蹟의 基本層位
․제1층 : 암회갈색 부식토층(표토층)
소나무, 전나무, 칡 등이 자라던 층으로 두께가 5~15㎝정도이다.
․제2층 : (적)갈색 사질점토층
유구가 확인되는 층이다.
․제3층 : 암적색사질점토층, 풍화암반층
기반층으로 유구가 형성된 층이다.

2. 調査內容
이번 조사에서는 현재까지 靑銅器時代 住居址 5棟, 三國時代 木槨墓 46기․石槨墓 15기․石室 4기․甕棺墓 5기, 朝鮮時代 木槨墓 1기․竪穴遺構 4기․溝狀遺構 5기․기둥구멍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가. 遺構

1) 靑銅器時代 住居址
본 유적에서는 총 5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으며, 평면형태는 장병형, 세장방형이며, 구릉의 사면에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남쪽 경계구역 부근의 사면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이 N-76˚-W인 세장방형 주거지로 해발고도 163.2m 지점에 입지한다. 규모는 길이 870㎝, 너비 358㎝, 깊이 29㎝정도이며, 남쪽과 북쪽의 일부는 후대 기둥구멍이 확인되고 있다. 내부바닥은 암적색사질점토와
석비례층의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불다짐한 흔적이 확인된다. 내부의 가장자리로는 ‘∩’상의 벽구가 돌아가고 있다. 기둥구멍은 북장벽쪽에 3개, 서단벽쪽에 1개, 북서쪽부분에 2개가 확인되며, 크기는 직경 15~20㎝ 정도이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편, 석촉편, 석부이며, 많은 양의 목탄 등이 나왔다.

나) 3호 주거지
유적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하며 이 주거지의 남서쪽에 주거지 2호가, 북서쪽에 목관묘 1호와 조선시대 수혈유구 2호가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길이 415㎝, 너비 275㎝, 깊이 28㎝의 장방형 수혈주거지로서 남서쪽 일부분이 유실되었다. 내부토는 2개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층은 적갈색 고운사질점토로 암반부스러기가 소량 포함되어 있다. 하층은 암갈색 고운사질점토로 채워져 있는데 상층보다
점성이 약간 강하고 다량의 숯이 함유되어 있다. 이층에서는 석제방추차, 석촉, 공열문토기편과 다량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출입구 시설은 서쪽편으로 보이며, 평면형태는 ‘ ’자형으로 추정된다. 입구부 시설로 추정되는 범위는 길이가 132㎝, 잔존너비 85㎝이며 이 공간은 남쪽면의 유실로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벽구는 남쪽을 제외하고 3면에 형성되어 있는데 ‘∩’모양으로 추정되나 서쪽벽구의 남쪽면이 유실되어 정확하지는 않다. 바닥은 특별한 시설이나 점토다짐, 불다짐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 같으며, 노지는 확인되지 않고 내부공간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진 곳에 지름 40㎝정도되는 원형상의 붉은색을 띠는 부분이 있으나 노지로 단정키는 어렵다.
기둥구멍은 동단벽과 남장벽에서 확인되었으며 북서쪽 모서리 부분에 지름 30㎝, 최대깊이 32㎝의 부정형의 구덩이가 확인되는데 내부토는 갈색사질점토로 숯이 소량 함유되며 점성이 비교적 약하다.
유물은 공열토기를 비롯한 무문토기 다수가 유구 중앙에서 동편으로 치우친 곳에 집중적으로 출토되며, 무경식 석촉, 유경식 석촉편, 석제방추차편 등이 출토되었다.

다) 4호 주거지
유적의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발굴구역 밖으로 확대되어 있는 상태로 해발고도 168.8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장축방향은 N-46˚-W이며,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다. 규모는 1,126×355㎝이며, 최대 깊이는 40㎝정도이다. 내부토는 크게 2개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층은 황갈색 사질점토로 하층은 회황갈색사질점토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은
전면을 불다짐 하였으며, 부분적으로 암적색으로 변색된 곳은 더욱 단단하게 처리되어 있다. 내부에서는 다량의 소토와 목탄이 확인되었으며, 노지, 기둥구명, 벽구시설 등은 현재조사중이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저부, 석부, 석착, 석촉, 석제 방추차, 지석 등이다.

2) 三國時代 木槨墓
본 유적에서 확인되는 목곽묘는 현재까지 46기로서 이중 30기는 조사가 완료되었고, 16기는 조사중이다. 목곽묘는 구릉의 경사면에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대부분 조성되어 있으며, 해발고도 168~169m지점에 집중분포하고 있다. 목곽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장․단축비가 2.4~3 : 1인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세장방형에 가까운 것도 확인되고 있다. 보강토는 대부분 기반층인 풍화암반토를 이용하였다.
유구의 배치상태는 대부분 등고선방향과 일치하고,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경우(10․11․12․13호, 20․21․24․25호)와 두 개의 유구가 장축방향을 같이 하며 근접해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경우(4․5호, 6․7호, 14․15호, 26․27호, 29․30호, 25․43호), 그리고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형성된 경우(31호, 42호)등이 있다.
유물의 부장양상을 보면 토기류는 한쪽 단벽 또는 양단벽에 부장하고, 철기류는 피장자의 좌우측 또는 머리쪽에 주로 부장되어 있다. 유물의 종류는 장경호, 단경호, 고배, 대부완, 광구소호, 기대 등의 토기류와 대도, 주조철부, 단조철부, 철촉, 재갈, 살포, 철겸, 도자 등의 무구류와 농구류가 출토되고 있다. 장신구류는 곡옥과 유리제 환옥, 금제세환이식, 은제이식 등이 출토되었다.

가) 6호 목곽묘
구릉의 서쪽사면에 위치하는 동혈주부곽식의 장방형 목곽묘이다. 장축방향 N-22˚-W이다. 7호와 150㎝정도 거리를 두고 위치하며 장축방향이 나란하다. 굴광내부에는 암갈색부식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교란․도굴의 흔적은 없다. 목곽내부에는 2개의 함몰층이 확인되며, 상부 I층에서 ‘U자상의 함몰이 확인된다.
양쪽 보강토에 접해서 입자가 고운 부식토가 확인되는데, 목곽의 부식흔으로 추정된다.
보강토는 묘광 굴착시 채취된 암반층을 이용하였다. 바닥은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보강토 제거후 목곽흔이 확인되었다. 목곽이 위치했던 북단벽 목재 안쪽면에 장벽 목재가 접해 있고 남단벽에서는 양장벽 목재와 교차되게 확인되었다. 피장자의 침향은 북서향이다.

나) 26호 목곽묘
유구는 구릉의 북서쪽 경사면에 위치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고,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조성되어 있다. 27호 목곽묘와 20~30㎝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그
동편에 25호와 46호가 위치한다. 유구는 석비례층을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여 묘광을 조성하였고,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굴착시 채취된 흙을 이용하여 보강하였다. 목곽내부에는 5개의 함몰층이 확인되며, 내부토는 전체적으로 암갈색과 갈색계통의 사질점토로 되어 있다. 목곽은 복동쪽 모서리부분과 남서쪽 모서리부분이 장벽쪽으로 치우치게 설치되어서 묘광 길이방향과 일치하지 않고 약간 틀어져 있다. 바닥은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피장자의 침향은 장신구의 출토위치로 보아 북서향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양단벽과 피장자의 좌우측에서 출토되었다. 남동단벽에서는 단경호 2점, 대부완
2점, 파수부완 2점이 출토되었으며, 파수부완의 상면에 철겸 1점, 주조철부 2점이 부장되어 있다. 철부 북편에는 철촉 10여점이 포개어져 출토되었다. 목곽중앙에서는 피장자의 좌측편에 대도 1점, 소도 1점, 도자 3점이 출토되었고, 우측에서는 재갈 1점과 도자 1점, 철기 2점이 출토되었다. 북서편에서는 곡옥과 유리제 환옥, 유리제 다면옥으로 된 경식이 나왔고, 세환이식 2개를 연결한 금제이식 1쌍이 출토되었다.
피장자의 머리좌측에는 소형 단조철부 1점, 우측에는 단조철부 1점, 철모 1점, 유견철부 1점이 출토되었다. 단조철부 서편에서는 소형철정 1점이 출토되었다.

다) 27호 목곽묘
유적의 북서편 구릉에 위치하며, 26호와 나란하게 등고선 방향으로 조성되어 있다.
유구의 서편에는 29․30호가 근접해서 위치하고 있다. 기반층인 석비례층을 동장벽은 완만하게 서장벽은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였다.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묘광 굴착시 채취된 기반토를 이용하여 보강하였다. 목곽은 묘광의 길이방향과 약간 틀어지게 설치되었는데, 북동모서리와 남서모서리 부분이 장벽쪽으로 치우쳐서 위치한다. 목곽내에서는 4개의 함몰층이 확인되며, 내부토는 암갈색과 갈색의 사질점토이다. Ⅲ층에서 부터 ‘U’자상의 함몰이
확인되고 있어 최하층인 Ⅳ층이 목곽상부층으로 보인다.
바닥은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바닥에서는 폭 7㎝의 목곽흔이 확인되었다.
유물의 부장양상은 양단벽과 남서쪽에서 확인되는데, 남동단벽에서는 고배 1점, 단경호 1점, 완 1점, 유견철부 1점, 철겸 1점, 철촉 2점이 나왔고, 목곽의 남서편에서는 도자 2점,
철모 1점이, 북서단벽에서는 장경호 2점이 출토되었다.

3) 三國時代 石槨墓
총 15기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13기는 조사되었고, 나머지 2기는 조사중인 상태이다. 유구는 유적의 북서쪽 경사면에 집중분포하며, 주축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평형하게 축조되어 있다. 석곽은 후대의 경작과 유실로 인하여 상부는 거의 파괴되고 하부 일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유물은 파손상태가 심한 편이다.
석곽의 배치상태를 보면, 2․3․4호, 5․6호, 8․9․10호, 11․12호, 13․14호가 각각 20~30㎝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축조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가) 8호 석곽묘
유구는 유적의 북서쪽 경사면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약 2m 떨어진 지점에 주축방향을 같이 하는 6호 석곽묘가 위치하고 있다. 장축방향은 N-S이며, 규모는 길이 233㎝, 너비 64㎝, 깊이 50㎝이며, 유구의 동쪽에는 반원형의 주구가 배치되어 있다. 석곽의 동장벽은 자연경사에 의한 토압으로 인하여 석곽내부로 밀려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석곽의 벽면 축조상태를 보면 동장벽은 최하단석에 큰 할석을 눕혀쌓기 하고, 조금 작은 할석으로 세로쌓기를 하였으며, 그 위로는 세로쌓기, 가로쌓기를 혼용하였다. 서장벽은 최하단석에 규모가 큰 할석을 눕혀쌓기 하고, 그 상단부터는 가로쌓기를 주로 하였으나 일부 세로쌓기도 병행하였다. 남단벽은 판상의 할석으로 1매는 눕혀쌓기, 다른 1매로는 세워쌓기하고 할석으로는 세로쌓기를 하였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남단벽쪽에서 단경호
2점, 파수부완 1점, 북단벽에서 파수부완 1점, 유개고배 5점, 대부장경호 1점, 장경호 1점,
대부완 1점, 고배 1점, 개 1점, 연질발 1점, 유대파수부완 1점이 출토되었다.

4) 三國時代 石室墓
본 유적에서는 횡구식석실묘 2기 그리고 석실묘 2기등 총 4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 1․4호는 횡구부가 확인되며, 2․3호는 삭평과 교란으로 인하여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가) 4호 횡구식석실묘
유적의 최북단에 있는 봉토분으로 구릉의 정상부에서 북동편으로 약간 치우쳐서 위치하고 있다. 조사 당시 유구 상면에는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었으며 봉분의 상면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개석과 벽석의 일부가 이미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조사결과 4호에는 3기의 유구가 축조되어 있었다. 중앙에 위치하는 횡구식 석실을 4-1호라 하고, 그 북쪽에 축조되어 있는 2기의 석곽묘를 각각 4-2․3호로 명명하였다.
4-1호는 장방형의 횡구식 석실로서 주축방향이 E-W이며, 규모는 길이 450㎝, 폭 130~180㎝, 높이 130㎝ 정도이고, 4호의 잔존봉토 규모는 8~13m정도이다. 횡구부는 동쪽단벽으로 판단된다. 동단벽은 최하단에 4매의 할석을 이용하여 양장벽과 함께 쌓았고, 그 위에 몇매의 할석을 약간 엉성하게 쌓은 후 최종적으로 그 상면에 평평한 자연괴석 1매를 쌓아서 막음을 하였다. 횡구부는 동단벽 전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동단벽의 최하단석과 양장벽에 접하는 벽석은 이용하지 않고 그 중앙에 엉성하게 쌓인 부분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양단벽은 동단벽보다 서단벽의 폭이 약간 넓은 편으로 바닥의 평면형태는 길다란 사다리꼴 형태이다. 남장벽은 벽석이 석곽 내부로 많이 밀려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양장벽은 안으로 약간씩 내경하면서 쌓은 것으로 보이며, 석곽의 중앙상면에서 1매의 개석이 횡가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단각고배, 파수부배, 대부완, 대부장경호, 단경호, 연질옹, 병 등의 토기류와 철촉, 철겸 등의 철기류가 나왔다. 4-2호는 4-1호에서 북쪽으로 약 1.5m 떨어져서 위치하는 길이 200, 폭 80㎝, 깊이 50㎝ 규모의 장방형 석곽묘이다. 주축방향은 N-30˚-E이다. 벽석은 1․2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단은 비교적 큰 할석으로 눕혀쌓기 하였고, 그 위로는 조금 작은 할석으로 가로․세로쌓기를 하였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출토유물은 없다. 4-3호는 4-2호에서 북쪽으로 약 1m정도 떨어져서 위치하고 있는 장방형의 소형 수혈식 석곽묘이다. 석곽의 주축방향은 N-15˚-E이다. 규모는 장축 60㎝, 잔존단축 30㎝, 깊이 15㎝이다. 북장벽은 유실되고 없다. 바닥에는 평평한 소형할석을 깔았으며, 유물은 적색연질완 1점, 대부완 1점이 출토되었다.

5) 朝鮮時代 遺構
조선시대 유구는 목관묘 1기, 수혈유구 3기, 구상유구 5기, 석열유구 2기, 적석유구 1기, 기둥구멍 51개가 조사되었다.

나. 出土遺物

1) 住居址
토기는 대부분 파손과 유실이 심한 상태로 출토되었기 때문에 복원하여도 그 기종의 원상을 알기는 다소 어렵다. 출토되는 대부분의 편은 동체편이며, 일부 구연부와 저부편이 출토되고 있다. 토기의 문양은 공예문이 확인되는데, 토기의 내면에서 바깥으로 찔러 시문하였는데, 완전히 구멍을 뚫은 것은 아니다.
석기는 비교적 양이 적은 편으로 무경식석촉, 유경식석촉, 석부, 석착, 석제방추차와 같이 상태가 양호한 것도 일부 출토되고 있다.

2) 木槨墓
목곽묘에서는 무개고배, 유개고배, 발형기대, 대부파수부완, 컵형토기, 단경호 등과 같은 토기류가 주류를 이루고, 철기류로는 주조․단조철부, 철모, 철촉, 대도, 철도자, 철겸,
재갈 등이며, 장신구류로는 금동제 세환이식세트, 은제이식, 곡옥, 경식 등이 출토되었다.

3) 石槨墓
석곽묘에서는 2단투창고배, 대부장경호, 단경호, 대부완, 적색연질옹 등과 같은 토기류와 철촉, 도자, 철겸과 같은 철기류가 출토되며, 1호 석곽에서는 곡옥과 경식 같은 장신구류가 출토되었다.

4) 石室墓
4호를 제외한 다른 유구는 파괴상태가 심한 편으로 단각고배, 대부발, 대부병, 장경호, 파수부배 등과 같은 토기류와 철겸, 철촉, 도자와 같은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1. 淸亭里遺蹟 發掘調査는 영천지역에서 실시된 정식의 첫 發掘調査로서 考古學史的으로 意義가 크다고 하겠으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영천지역의 매장문화재에 대한 調査硏究
및 保存保護활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이 지역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유구들이 중복되어 나타나고, 또한 유물도 다량 출토되고 있어 당시 이 지역의 墓制 變化樣相 및 土器의 變化發展하는 過程을 硏究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아니라 이를 통해서 이 地域의 古代史 硏究 및 新羅史硏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3. 유구의 배치상태에서 목곽묘는 대부분 등고선방향과 일치하며, 2개의 유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다수 보이며, 또한 남-북의 주축방향은 같이 하나 등고선을 달리하면서 동-서로 나란히 열을 이루면서 배치되어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석곽묘도 대부분 등고선 방향과 장축이 일치하며, 2~3기의 유구가 연접해서 나란히 배치되어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유적 전경
3호 주거지
4호 주거지
6호 목곽
26,27호 목곽
8호 석곽
8호 석곽 유물 세부
4호 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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