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西邊洞古墳群 發掘調査 대구 서변동고분군 발굴조사

시대 삼국,고려,조선
성격 고분,주거지,분묘
회수 17
개최일자 1998.11
조회수 1,953
大邱 西邊洞古墳群 發掘調査
- 서변동~북대구 IC 간 도로개설 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

I. 調査槪要

가. 遺 蹟 位 置 : 大邱廣域市 北區 西邊洞 山 38번지 一帶

나. 調 査 期 間 : 1998년 6월 20 - 1999년 2월 9일(예정)

다. 調 査 範 圍 : 약 8,000평

라. 調 査 機 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院長: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大邱廣域市 綜合建設本部


II. 調査經過

본 조사는 서변동과 북대구 I.C.를 연결하는 도로를 개설함에 앞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를 대구시 종합건설본부에서 의뢰해옴에 따라 실시된 사전발굴이다. 발굴조사에 앞서 本
硏究院에서는 1995년에 실시된 지표조사의 결과에 따라 1997년에 매장문화재의 분포 및 유구의 성격을 확인하기 위하여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그 결과 다수의 분묘 유구와 생활유적이 확인되어 1998년 6월부터 발굴조사를 착수하게 되었다.
서변동에 위치한 고분군은 耕作地의 조성과 도굴 등으로 인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파괴되어 왔으며,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조사에서 알려진 바 있다(尹容鎭 外, 大邱의 文化遺蹟-先史, 古代, 1990). 당시 지표조사에서는 삼국시대 석곽묘 약 10여기를 확인하였으며 대부장경호를 비롯한 여러 점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그 외에도 서변동 주변에서 청동부의 수습례가 보고되어 있다(尹武炳,大邱發見의 靑銅斧,考古美術 5-6․7 合集, 1964). 현재 조사중인 II지구에서 두형토기와 원형점토대토기편 등이 삼국시대 분묘의 상부에서 확인되고 있어 수습된 청동부와의 관련성이 제기된다.
또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이번 조사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주변구역에 대해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구역의 남쪽 능선에서는 석실분으로 추정되는 대형봉토분(?)
1기 및 다수의 석곽묘가 확인되었다. 석곽묘는 최근의 분묘와 경작지의 확장 등으로 인하여 상당수가 파괴되고 있었으며, 파괴된 석곽의 근처에서는 고배와 장경호를 수습한 바 있다.


Ⅲ. 遺蹟의 立地와 考古學的 環境

대구지역에서는 아직까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적은 조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대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신천변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삼국시대의 달성고분군․불로동고분군․대명동고분군 등은 일제시대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해방후에는 燕岩山과 砧山에서 청동기시대 末期에 해당되는 다수의 무문토기와 석기 등이 채집되었고, 삼국시대에 해당되는 복현동고분군(경북대학교, 1989)․구암동고분군(영남대학교, 1975) 중 일부가 조사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서변동 고분군은 낙동강의 지류에서 뻗어나오는 금호강의 북쪽, 함지산의 남동쪽 능선 말단부에 위치한다. 금호강의 줄기에는 팔계천․동화천․신천 등이 합류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금호강변을 따라서는 주로 삼국시대 고분군이 위치하고 금호강과 합류하는 하천변에는 선사시대 유적의 조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그 예로서는 칠곡 3지구 유적과 동화천에 위치한 서변동 청동기시대 주거유적(현재 조사중) 등을 들 수 있다(도면 1 참조).
그러나 이와 같은 유적의 분포가 다수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변동고분군에 해당되는 시기와 관련해서는 체계적인 발굴조사례가 부족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 중 목곽묘유적은 팔달동에서 1992년과 1996년에 경북대 박물관과 本 硏究院이 각각 조사한 바 있고, 1998년에는 경북대 박물관에서 비산동 목곽묘를 긴급발굴하여 자료의 공백을 점차 메꾸어 가고 있는 실정이나 발굴조사가 좁은 범위에 그치는 것이었다. 석곽묘와 관련해서도
복현동고분군과 금호동고분군 등의 몇몇 사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서변동 고분군의 발굴이 주는 고고학적 의의는 자못 크다 할 것이다.


Ⅳ. 調査內容

이번 조사 구역은 폭이 약 70m, 길이 약 540m로 동서 방향으로 긴 형태를 띠는데, 유적의
성격과 지형을 고려하여 I, II, III지구로 구분하였다(도면 2 참조). I지구는 유적의 중앙 능선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하며 주로 목곽묘와 조선, 고려시대 목관묘가 분포한다. 이 외에 횡구식석곽묘 1기와 수혈식석곽묘 3기가 조사되었다. II지구는 중앙능선에서 동쪽에 위치하며 삼국시대 석곽묘 및 목곽묘가 주로 분포하는데, 현재 조사 중에 있다. III지구는 유적의 동쪽 溪谷上에 위치하며 굴립주 건물로 추정되는 주혈 및 지상식 주거지가 조사되었다.
I지구에서 조사된 목곽묘는 총 92기인데, 그 중 묘광의 크기가 확인되는 것은 43기에 불과해 조선․고려시대 목관묘와의 중복이나 토사의 유실 등으로 인한 파괴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묘광의 형태는 묘광의 크기가 확인되는 43기 중 묘광의 장단비율이 3:1 이상되는 것이 27기로 63%를 차지하여 서변동 목곽묘가 전체적으로 세장함을 알 수 있다. 목곽의 구조와 관련해서는 65호․102호 등에서 동일 묘광내에 분리된 부곽시설의 존재가 확인된 점에서 볼 때, 서변동 목곽묘 중 세장방형은 대체적으로 동혈주부곽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물은 토기, 철기, 옥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우선 토기를 통해 보면 크게 와질출토 목곽묘, 와질과 도질 공반출토 목곽묘, 그리고 도질출토 목곽묘로 구분되어 질 수 있다. 출토되는 토기의 종류는 와질(도질) 노형토기, 와질양이부장동호, 와질 양이부첨저호, 와질(도질) 단경호, 와질고배, 연질발 등이다. 철기의 매납에 있어서도 철모, 철부, 철촉 등이 출토되는 것이 보편적이나 유구에 따라 환두대도가 출토되는 묘, 유자이기가 공반되는 묘
등의 특징이 존재한다. 옥이 출토된 유구는 모두 8기로 대부분이 소형 유리구슬이다.
I지구의 석곽묘는 모두 4기가 조사되었는데, 그 중 6․7호는 동일 봉토분내에 조성된 대형봉토분이며 13․19호는 대형분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6m 가량 떨어져 있는 소형석곽묘이다. 유물은 6․7호에서 고배와 대부장경호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서변동 고분군의 축조연대를 토기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중심연대가 대략 4세기대를 전후한 시기이며, I지구에서 조사된 석곽묘는 대략 6세기대로 상정된다. I지구에서 조사된 목곽묘에서 시기 차이를 반영한다고 생각되는 유구 중 특히 노형토기가 공반되는 유구와 유자이기 및 단경호가 공반되는 유구를 중심으로 선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Ⅰ지구
1) 목곽묘
① 5호묘
I지구 서쪽 능선 해발 약 63.4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동북-서남향(N-27°-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7호 석곽의 시상석 아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어 중복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묘광은 풍화암반토를 길이 372㎝, 너비 92Cm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335×58㎝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에는 묘광의 굴착시 나온 암반덩어리가 포함된
자갈색 사질점토로 채웠다.
유물은 묘광의 양단벽쪽에 치우쳐 토기와 철기를 매납하였다. 동단벽쪽에는 와질옹편 및 철모가 3점 매납되어 있었는데, 와질옹편의 나머지는 7호분의 봉토내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채 발견되었다. 서단벽쪽에는 토기 2점과 철기 4점이 부장되어 있었다. 토기는 서단벽에 붙어서 瓦質兩耳附圓底壺가 남장벽에 붙어 瓦質兩耳附尖底甕이 매납되어 있었고, 철기는 북장벽에 붙어 철촉 3점과 철부 1점이 출토되었다.

② 27호묘
I지구 서쪽 계곡성 지대 해발 약 58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북동-남서향(N­66°­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묘광은 적갈색 사질점토를 길이 343㎝, 너비 89㎝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287㎝×59㎝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의 사이에는 암갈색 사질점토로 채웠으며, 내부에는 황갈색과 갈색의 사질점토가 함몰되어 있다. 유물은 북동단벽에서 三耳附壺 1점, 와질노형토기 1점, 와질단경호 2점, 와질대부호 1점이 출토되었다.

③ 21호묘
I지구 서쪽 해발 약 62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북동-남서향(N-55°-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묘광은 적갈색사질점토를 길이 512cm, 너비 89cm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487×60㎝ 크기의 목곽을 설치했다. 목곽과 묘광사이에는 흑갈색 사질점토를 채웠으며, 내부에는 황갈색과 암갈색의 사질점토가 함몰되어 있었다. 목곽의 구조와 관련하여 유구 내부의
평면과 단면상에서 부곽의 유무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부곽이 확인된 102호와 107호 등을 통해 유추하면 동혈주부곽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물은 양단부장하였다. 부곽으로 추정되는 남서단벽쪽에서 대부호 1점, 단경호 1점, 노형토기1점, 양이부호 1점이 출토되었고, 북동단벽쪽에서는 노형토기 2점, 연질발 1점이 출토되었다. 중앙부에서는 철모 4점, 따비 1점, 착형철부 1점, 철겸 1점이 출토되었다.

④ 39호
I지구 서쪽 계곡성 지대 해발 약 55.2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이 북동-남서향(N-29°-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유구의 남서쪽 단벽의 일부는 근대 민묘에 의해 파괴되었다.
묘광은 황적갈색토를 굴착하였으며, 充塡土의 범위로 보아 내부에는 길이 (현)180㎝, 너비 73㎝의 목곽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充塡土가 남장벽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목곽을 남장벽에 붙여서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대체로 흑갈색토를 채웠는데, 북장벽은 암황갈색토와 흑갈색토를 교대로 충전하였다.
유물은 동단벽쪽에서 도질단경호 2점, 와질단경호 2점, 와질노형토기 1점이, 토기 상부에서 철부 1점, 소도 1점이, 유구 중앙부의 북장벽에서 환두대도 1점, 와질완 1점, 수정제 다면옥이 출토되었다.

⑤ 22호묘
I지구 서쪽 능선 해발 약 61.1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북동-남서향(N-27°-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유구는 산의 경사로 인한 삭평으로 서단벽과 남장벽 일부가 유실되었다.
묘광은 황적갈색토층을 길이 193㎝, 너비 77㎝ 크기로 굴착하였다. 묘광의 내부에 목곽흔이나 充塡土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기타 유구와 비교할 때 목곽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벽면은 정연하게 굴착하였다.
유물은 동단벽쪽에서 와질고배 1점, 도질단경호 2점, 연질발 1질, 와질대부완 1점이 출토되었다.

⑥34호묘
I지구 서쪽 계곡성 지대 해발 약 56.5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북동-남서향(N-40°-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북동단벽쪽은 나무로 인하여 일부 파괴․교란되었다.
묘광은 풍화암반이 포함된 황갈색 사질점토를 길이 378㎝, 너비 109㎝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길이 342×65㎝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사이에는 적갈색 사질점토로 채웠으며, 내부에는 황갈색과 암갈색 사질점토가 함몰되어 있었다.
유물은 북동단벽쪽에서 연질단경호 1점, 도질단경호 3점, 도질노형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인한 교란으로 일부 유물의 위치가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⑦ 10호묘
I지구 서쪽 능선 해발 약 62.7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북동-남서향(N-15°-E)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묘광은 암황갈색토층를 길이 395㎝, 너비 73㎝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바닥에는 적갈색 점질토를 깔아 고르지 못한 면을 정지하였다. 묘광의 내부에는 길이 342㎝, 너비 47㎝의 목곽을 설치하고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점성이 있는 암적황갈색토로 채웠다. 유물은 북단벽에서 노형토기 1점, 단경호 1점, 철부 1점이 매납되어 있었고, 남단벽에서는 단경호 3점이
출토되었다.

⑧ 69호
I지구 동쪽 능선 해발 약 63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이 동남-서북향(N-64°-W)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산의 경사로 인하여 유구의 남서 장벽이 일부 유실되었다.
묘광은 암반을 길이 426, 너비 87㎝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397×65㎝ 크기의 목곽을 설치했다.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암반편이 혼입된 암자갈색사질토로 채웠으며, 목곽의
내부에는 암반편이 다량 혼입된 암갈색사질토가 함몰되어 있었다.
유물은 남동단벽에 노형토기와 도질단경호가 매납되었으며, 북동장벽쪽에는 와질호, 연질발편, 양이부첨저호, 도자가 출토되었다.

⑨ 71호묘
I지구 동쪽 정상부 해발 약 70.4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동남-서북향(N-67°-W)으로 정상부의 능선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어 있다.
묘광은 풍화암반층을 길이 355㎝, 너비 106㎝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307×75cm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암갈색사질토로 채웠으며, 목곽 내부에는 암반편이 다량 혼입된 암자갈색사질토가 함몰되어 있었다. 목곽내부에는 피장자의 발치쪽에 할석 3매가 일렬로 놓인 채 확인되어 유물부장칸의 의미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피장자의 두향은 두개골의 위치로 보아 남동향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목곽의 남동단벽쪽에 도질단경호, 와질단경호, 유자이기, 곡도자, 인골(두개골)이
출토되었으며, 유물부장칸에서는 와질단경호 4점이 출토되었으나 대부분이 파괴되어 동체 일부와 저부만이 확인되었다.

⑩ 95호묘
I지구 동쪽 능선 해발 약 69m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이 동남-서북향(N-78°-W)으로 등고선과 일치한다. 묘광은 풍화암반토를 길이 303㎝, 너비 103㎝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259×61㎝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에는 묘광의 굴착시 나온 암반덩어리가 포함된 갈색 마사토로 채웠다.
유물은 묘광의 양단벽쪽에 치우쳐 토기와 철기를 매납하였다. 동단벽쪽에는 와질단경호와 유자이기가 출토되었고, 서단벽에는 와질승석문단경호와 도질양이부단경호가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상태는 경사로 인한 토사의 유실로 유자이기를 제외한 토기는 결실이 심한 편이다.

⑪ 70호묘
I지구 동쪽 능선 해발 약 59.5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이 동남-서북향(N-56°-W)으로 등고선과 평행하다. 유구의 북동 장벽 일부가 121호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남서장벽은 경사로 인하여 유실되었다.
묘광은 풍화암반층을 말각장방형으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목곽을 설치하였다. 남서장벽의 유실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묘광의 크기는 길이 271㎝, 너비 95㎝ 정도로 추정되고 목곽은 237×80㎝ 정도의 규모로 판단된다.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입자가 작은 풍화암반편이 다량 혼입된 암갈색 사질토로 채워져 있었으며, 목곽의 내부에는 풍화암반편이 혼입된 갈색사질토가 함몰되어 있었다.
유물은 남동단벽쪽에서 노형토기, 도질단경호, 도질호편, 유자이기, 철모가 출토되었으며, 북서단벽쪽에는 도자가 부장되었다. 도질단경호는 노형토기 위에 놓인 채로 출토되었다.

⑫ 80호묘
I지구 동쪽 능선 정상부 해발 약 70.8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동남-서북향(N-72°-W)으로 능선 정상부의 방향과 평행하다.
묘광은 암반을 길이 386㎝, 너비 105㎝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바닥면에는 점성이 있는 암적갈색토를 2~3㎝ 가량 깔아 整地한 뒤 332×72㎝ 크기의 목곽을 설치했다. 묘광과 목곽사이에는 암반편이 다량 혼입된 암갈색토로 채웠다.
유물은 동단벽쪽에서 도질단경호 3점이, 서단벽 쪽에서 와질단경호 2점, 도질단경호 2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남장벽쪽에 유자이기 1점, 철부 1점, 용도불명 철기 1점이, 북장벽쪽에 철모 8점, 철겸 1점, 철도자 1점이 출토되었다.

2) 석곽묘 6․7호
I지구 해발 약 63.1~63.8m 지점에 위치한 석곽묘로 7호는 5호 목곽묘 상부에 설치되었고
6호는 경사진 아랫면에 설치되었다. 6, 7호는 석곽의 배치나 현재 남아있는 봉토의 흔적 등을 통해서 볼 때 하나의 봉토속에 축조되었으며, 봉토의 축조는 토층을 통해 볼 때 거의
수평적인 版築 양상을 나타낸다.
봉토내부에는 봉토의 가장자리를 따라 모두 4군데에서 토기편들이 수습되었는데, 이는 무덤의 축조와 관련되는 의례행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의도적 행위로 판단된다.
6호는 풍화암반토를 길이 260㎝, 너비 56㎝, 깊이 37㎝ 크기로 굴착한 뒤, 북장벽은 생토면 그대로 두고 묘광선 위를 일부 굴착하여 1~2단 쌓았다. 남장벽은 넓은 판석을 세워 벽을 막은 뒤 묘광선 위를 2~3단 눕혀 쌓았다. 동단벽은 북장벽과 마찬가지로 생토면 그대로 두고 묘광선 위에만 1단으로 돌을 놓았으며 단벽은 남장벽과 마찬가지로 2매의 판석을
세운 뒤 묘광선 상부를 2~3단 눕혀 쌓았다. 그리고 석곽 의 상부를 4매의 판석으로 덮었다.
유물은 양단벽의 바닥위에 부장되어 있었는데, 동단벽에 연질완 그리고 서단벽에 대부장경호 2점과 연질완 2점이 출토되었다.

7호는 자연 경사면을 일부 굴착하여 整地한 뒤 석곽을 축조하였다. 북장벽은 암반면을 일정하게 굴착하지는 않았으며, 일부만 깍아내어 돌을 쌓은 뒤흙을 채워 나가는 방법으로 벽을 축조했다. 남장벽은 북장벽과는 달리 자연경사가 없이 편평한 편이므로, 흙을 다져 성토한 뒤 다시 그 흙을 파내 돌을 쌓았다. 동단벽은 남장벽과 마찬가지로 성토한 흙을 다시
파내 1매의 돌로 막았다. 서단벽은 돌을 쌓은 뒤 바로 흙을 채웠는데, 이는 7호 석곽묘가 횡구식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석곽의 규모는 바닥면의 넓이를 기준으로 길이 365㎝, 너비 72㎝ 정도이며 높이는 현재 최고 높은 곳이 67㎝가량이나 일부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석곽의 바닥면은 약1~7㎝가량 주변의 흙을 채워 편평하게 하고 그 위에 강자갈을 1~2겹 가량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다. 강자갈은 서쪽의 유물부장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만 깔려 있었다.
유물은 양단벽에 부장하였는데, 동단벽에는 대부장경호 2점과 단경호 2점이 서단벽에는 유개고배와 고배, 개, 연질발, 연질옹, 연질호, 광구소호, 방추차 등 총 30여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서단벽 가까운 지점에 도굴의 흔적이 있고 그 속에 철촉과 토기편 일부가 수습되어 부장 유물 중 일부가 도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3) 고려․조선시대 목관묘
① 23호
I지구 서쪽 능선 해발 약 58.5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남-북향으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묘광은 황갈색 사질점토층을 길이 232㎝, 너비 57㎝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175×33㎝크기의 목관을 안치하였다. 목관과 묘광 사이에는 판석재 할석이나 흙을 이용하여 보강하였다. 특히 남단벽의 경우에는 우선 흙으로 일부를 채운 뒤 할석 4매를 쌓았다. 유구의 상면에는 판석재 할석 5~6매로 개석을 만들었으며, 개석 사이의 빈 공간은 소형의 할석을 채웠다.
유물은 북단벽쪽에 병 1점, 대접 2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목관과 묘광사이에 매납되었다.

② 114호
I지구 동쪽 능선 해발 약 60m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북서-동남향(N-17°-W)으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묘광은 암자갈색사질토를 길이 206㎝, 너비 58㎝ 크기로 굴착하였으며, 내부에 185×39㎝
크기의 목관을 안치하였다. 목관의 내부에는 암갈색, 암자갈색, 갈색의 사질점토가 함몰되어 있었다.
유물은 남동장벽에 근접하여 바닥에서 약 3~5㎝ 높이에서 엎어진 채로 대접 1점, 접시 2점, 종지 1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목관과 묘광사이에 매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 Ⅲ지구 굴립주 건물지

유적의 동쪽 끝지점에 위치하는 계곡지대로 해발은 약 29.7m이다. 수 차례에 걸친 자연 퇴적층 상부에 건물지가 조성되었는데, 현재에는 주혈로 추정되는 원형 수혈과 소토만 확인되었다.
소토는 불규칙한 형태로 덮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불로 구워 단단해진 건물의 바닥이 확인되었다. 바닥은 일부만 남아있었으며 나머지는 토사의 유실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판단된다. 소토속에는 여기저기에서 토기편들이 흩어진 채로 출토되었다.
주혈로 추정되는 것은 모두 23개로 크게 소토와 관련되는 것과 그 이외의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소토와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나머지에 비해 크기가 큰데, 직경이 약 20~25㎝ 정도이고 나머지는 20㎝ 미만들이다. 소토유구와 관련되는 주혈들의 깊이는
현재 10~15㎝ 정도 남아있다. 그 중 3개는 정형성이 있어 건물의 기둥 배치와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에 대해서는 어떤 기능의 주혈인지 알 수 없다. 특히 발굴 범위의 한계와 남쪽 부분에 현재의 건축폐기물로 인한 교란 등으로 인하여 주혈들의 정확한 평면형태 및 건물지의 규모를 밝혀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유적의 동서로 이어지다 소토 부분에 이르러 남방향으로 꺽이는 溝는 추측컨대 물길의 조정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구 내부의 토층 양상이 복잡하지 않고 단일토층으로 형성된 것은 일시적인 퇴적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소토의 내부 또는 주변에서 도질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완형품으로 출토된 것은 없으나 그 종류를 보면 대옹편과 격자타날문편 등이다. 토기편을 통해 볼 때 대략적인 시기는 4C代로 판단된다.


V. 調査成果 및 意義

가. 대구지역의 목곽묘는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사례가 적을 뿐만아니라 좁은 범위의 발굴에만 그쳤다는 점에서 그 계보를 구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어왔지만 이번 서변동 목곽묘의 조사로 목곽묘의 계보 뿐만아니라 주변지역과의 관계 및 지역상을 규명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 대구지역에서도 소위 “경주형목곽묘”라 불리는 세장방형 목곽묘가 발굴되어 주변지역과의 관련성 즉 공간성 문제의 해결에 큰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 Ⅱ지구의 목곽묘(석곽묘?)는 조사 중에 있어 아직 그 성격을 알 수 없지만, 대구지역에서 새로운 석곽묘 자료를 확보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적 전경
27호 목곽
27호 목곽 출토유물
22호 목곽 출토유물
80호 목곽
6,7호 석곽
114호 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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