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山 林堂遺蹟發掘調査 -F. G. H. I 地區- 경산 임당유적발굴조사 -F,G,I지구-

시대 원삼국,삼국
성격 목책,주거지,고분
회수 7
개최일자 1996.09
조회수 2,359
慶山 林堂 遺蹟 發掘調査 - F. G. H. I 地區 -

1. 調査槪要

가. 遺蹟位置 : 慶尙北道 慶山市 林堂洞 201-6番地 一帶, 517-1番地 一帶

나. 調査期間 : 2차조사-1996년 1월 22일~1996년 10월 2일
                    3차조사-1996년 5월 15일 ~1996년 8월 31일

다. 調査面積 : 2차조사-14,600여평
                   3차조사- 5,900여평

라. 調査機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 林堂遺蹟發掘調査團(國長: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 韓國土地公社



2. 調査經過

임당동 유적이 정식으로 학계에 관심을 끌게된 동기는 1982년 이곳에서 도굴된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되는 과정에서 당국에 의해 적발되면서 부터이다. 그 이후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대형봉토분관 주변의 소형분묘들이 발굴조사 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도 대부분 택지개발지구내에 포함되기 때문에 개발에 앞서서 유적의 분포와 성격을 알기위해 시굴조사를 실시했다. 시굴조사에 의해서 임당동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기관으로 본 연구원이 참가하게 되었으며, 유적지의 서쪽부분인 F, G, H, I지구에 대한 조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1차조사는 지난 95년 7월부터 실시하여 96년 1월 하순에 종료했으며, 2차조사는 1차조사의 종료와 동시에 실시되었다.
3차조사는 2차조사가 한창인 96년 5월 중순에 실시하여 96년 8월 말에 조사를 완료했다.
현재는 F, G, H지구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으며, I지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3. 調査內容

1) F-Ⅱ 地區
사적 300호의 북동쪽 능선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11,000여평이다. 1차와 2차로 나누어서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번에 조사된 부분은 1차조사에 이은 약 4,000여평 정도이며, 전체적인 지형은 서고 동저이며, 남-북은 대체로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이번 조사의 주안점은 1차조사에서 확인된 2열의 주혈군과 토광유구의 성격을 밝히는데 있었다. 조사결과 확인된 유구는 조선시대 분묘와 근대분묘, 토광유구, 우물, 목책, 적석유구, 토기혈 등이 조사되었다. 이들 각각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가. 목책(木柵) : 1차 조사시 본지구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등고선의 방향과 일치되게 이어지는 2열의 주혈군이 확인되었다. 2차 조사결과 주혈군들은 계속해서 등고선의 방향에 일치되게 남서쪽으로 이어지며, 계속해서 연장될 경우 사적 300호로 지정된 대형의 고총고분군을 감싸고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다면 목책은 대형고총고분군을 포함한 주변의 삼국시대유적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식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확인된 주혈군들은 약 230여개이며, 길이는 180m정도이다. 주혈군이
확인되는 층위의 구지표면은 고식도질토기편들이 박혀 있으며, 이를 근거로 추정한다면
주혈군(목책)이 설치시기는 고식도질토기단계 또는 그 이후일 것이다.

나. 분묘 : 총 29기가 조사되었으며, 조선시대 분묘가 12기, 근대분묘가 17기이다.
① 조선시대분묘 : 목관묘이며 장축방향은 대체로 등고선과 직교되게 설치되었다. 회갈색 사질점토의 퇴적 층위에 설치된 분묘는 내부에 목관을 설치했으며, 목관상면에는 유물을 부장했다. 출토유물은 자기류, 청동합, 가위, 청동시 등이 출토되었다.
② 근대 분묘 : 구조나 장축방향은 조선시대 분묘와 동일하며, 출토유물은 없다. 다만 23호묘에서 곰방대 1점이 출토되었다.

다. 토광유구 :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유구이다. 조사가 진행된 현재까지 16개가 조사되었으며, 조사진행중인 것이 5개이다. 대부분의 토광유구는 평면상에서 굴광선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둥글게 돌아가는 흑갈색니질점토층이 나타난다. 단면상 확인결과 흑갈색점토층이 함몰의 양상을 나타내는 (A)류와 수평상으로 나타나는 (B)류로 구분이 되며, 바닥면 가까이에 자갈이 깔려 있는 (Ⅰ)류와 깔리지 않은 (Ⅱ)류로 구분이 가능하다.

라. 우물 : 모두 2기가 조사되었으며, 평면형태는 원형이다. 우물의 축조방법은 벽사용석재에 의해서 크게 A류(할석+청석+천석), B류(할석+천석), C류(청석)로 구분되며, 단면형태에 의해서 Ⅰ류(상광하협형), Ⅱ류(逆 字形)로 구분할 수 있다.

마. 적석유구 : F-Ⅱ지구에 1기가 조사되었다. 유구의 상면에서 10~40㎝정도 크기의 할석들이 가장자리에서 중앙부쪽을 향해서 약간의 함몰현상을 나타내며 출토되었다.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위에 형성된 유구는 단면확인결과 2~4단으로 적석되었으며, 내부에는 함몰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내부 최하층은 토광유구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흑갈색
니질점토로 이루워졌으며, 불탄 재층이 섞여 있었다. 바닥면 가까이서 깨어진 채로 출토된 토기편들은 대부분 고식단계의 토기편들인 파배, 어망추, 호편, 고배형기대편(?)등이
출토되었다.

바. 토기혈 : 지금까지의 조사에서 모두 6기가 조사되었다. 소형의 둥근 혈을 파고서 연질호 1점을 똑바로 세워놓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토기의 동체 상부쪽은 혈의 깊이가 깊지않은 관계로 대부분 파괴되었다.

사. 구(溝) : F-Ⅱ지구의 최남단 지역에서 조사되었다. 유구는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위에
남북방향으로 형성되었으며 내부에는 암갈색 사질점토가 덮여 있었다. 또한 토광 1호가
유구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F-Ⅱ지구에서 현재까지 조사된 토광유구들 보다는 선축된 유구로 추정된다.

2) G 지구
면적은 약 2,100여평이며, F지역에서 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능선의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F, H, I 지구가 대체로 삼국시대 생활유적임에 비하여 본 지구는 삼국시대 분묘가 주로 조영되어 있다.
시대적으로는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근대민묘(1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묘제별로는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이 조사되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분묘는 5,6호 묘와 58,59호묘로서 여기서는 5,6호묘와 58,59호묘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기술하고자한다.

가. 5․6호묘
G-5,6호는 남북으로 나란하게 배치된 대형목곽묘이다. 두 묘의 축조순서는 남쪽에 만들어진 6호묘가 선축이며 경사진 높은쪽에 반원형의 주구를 설치하였다. 후에 축조된 북쪽의 5호묘는 선축된 6호묘의 주구 일부를 파괴한 후 무덤을 축조했으며 경사진 높은쪽에 일부 6호묘의 주구와 중복되게 반원형으로 설치되었다.
현재까지 조사에서 밝혀진 조사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6호묘는 지금까지 임당지역에서 확인된 대형목곽묘 가운데서 가장 이른시기에 축조된 무덤으로 생각된다.
② 이른 시기의 대형목곽묘에서는 개석이 사용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이는 전 단계 목곽묘에 개석이채용되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
③ 경주의 일반적인 적석목곽분고의 차이점은 목개 상부에 적석이 행해지지 않는 점이다. 경주의 이른시기에 만들어진 무덤들 가운데 적석목곽분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들 가운데에는 상부에 적석이 덮히지 않고 본 유구와 동일한 구조를 가진 유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④ 주곽과 부곽의 폭이 동일하며 부곽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점, 창자형을 나타내지
않는 점 등이 주목된다. 이후에 나타나는 임당지역의 대형목곽묘들은 창자형에서 명자형으로 변화해 나간다.
⑤ 동혈묘광 주부곽식 목곽묘에서 이혈묘광 주부곽식 목곽묘로 교체된 시기이며 대형목곽묘의 경우에는 발생초기부터 주구 또는 호석을 무덤 주변으로 배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 58․59호묘
명자형의 주부곽식 목곽묘이다. 묘는 근대의 과수구덩이에 의하여 상부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내부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청석암반층을 파고서 만든 묘광내에서는 주곽에 밤나무를 잘라서 만든 목곽이 확인되었으며 묘광과 목곽 사이의 빈공간에 청석편과 점토를 채워서 목곽을 보강했다. 목곽의 구조는 상판, 측판, 바닥판으로 구성되며 꺽쇠나 관정이 출토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결구할때는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목곽의 바닥판은 폭 10㎝ 정도되게 나무를 잘라서 유물이 높이는 공간을 제외하고 시신이 눕히는 부분에 일정한 간격으로
깔았다. 그 후 시신을 안치하고서 “ㄴ”자형의 장축 측판을 바닥판의 바깥에 붙여서 설치했다. 다음으로는 장축판의 양쪽 가장자리에 홈이 파인 부분에 단측판을 위에서 아래로 끼워넣었다. 마지막으로 장축방향의 상판을 덮었다.
* 목곽 - 본 유구의 내부에서 피장자와 유물을 동시에 덮었던 나무상자가 출토되었으며,
그 안에서는 인골과 유물등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가진 무덤의 양식을 통상적으로 목곽묘라 부르고 있다. 즉 일정한 구조 내부에 시신과 유물을 같이 부장하는 형식이다. 목관이 시신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반면에, 목곽은 넓은 의미로서 시신과 부장유물을 함께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목곽묘의 경우 내부에 목관이 있는 경우도 존재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하고 있음이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3) H 지구
G지구에서 북서쪽으로 약 40M 정도 떨어진 장림사(長林寺)의 북쪽편에 위치하며, 주거시설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던 지역이다. 발굴 조사전에는 포도나무 등 밭작물이 경작되고 있었으며, 북쪽 중앙부에는 분묘의 둘레를 돌아가면서 향나무 숲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진체적인 지형은 남고 북저의 지형에 중앙으로 오목하게 경사진 지형을 이루고 있다. 조사결과 본 지역에서는 근대 분묘 4기와 삼국시대 우물 5기가 조사되었다.

가. 유구
① 근대분묘
본 지구의 중앙부에서 약간 서쪽편에 치우쳐서 확인되었다. 내부구조는 모두 목관이며,
장축방향은 북동-남서향이다.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게 설치되었으며, 청석암반층 위에서
확인되었다. 4기 모두 인골이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전혀 없다.
② 우물
모두 5기가 조사되었다. 평면형태는 모두 원형이며, 굴광선은 155~315㎝정도이며 벽석부는 55~85㎝정도이다. 깊이는 파괴로 인하여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현재 남아있는 상태는 33~225㎝정도이다. 우물의 축조방법은 벽사용석재에 의해서 크게 A류(할석+청석+천석), B류(할석+천석), C류(청석)로 구분되며, 단면형태에 의해서 Ⅰ류(상광하협형), Ⅱ류(逆 字形)으로 구분할 수 있다.

4) Ⅰ地區
Ⅰ지구는 임당지구 발굴조사 범위 중 능선의 정선부와 사면에 위치한 F,G지구와는 달리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적의 남쪽, 즉 사적 300호가 위치하는 능선이 북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내려오다 유적의 동쪽, 사적 331호가 위치한 구릉과 만나는 지점으로 이 일대는 지금도 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전체는 소토포함층이 두텁게 덮고 있으며 동쪽지역이 서쪽지역보다 높고 북쪽지역이 남쪽지역보다 높게 형성되어있다. 유적의 북서쪽은 암반면 상부까지 교란되어 노출된 암반면에 조선시대 및 근대민묘가 20여기 조성되어 있다.
현 소토포함층의 지표면에는 삼국시대 및 원삼국시대 토기편 등이 함께 출토되며 유적의
북쪽 중앙에 위치한 건물지 주변으로 통일양식 토기편과 고식기와들이 집중 분포한다.

가. 층위 : 토층탐색을 위한 남북 트렌치에서 확인되는 상황으로 볼 때 전반적인 양상은
기반층인 암반층 위로 명황갈색 점질토층, 암황갈색 점질토층, 소토포함층 순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부분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소토포함층은 두께 50~150㎝정도이며 세부적으로 2~3개의 층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소토포함층의 상층에는 삼국시대토기편이 하층에서는 원삼국시대 토기편이 출토된다. 암황갈색 점질토층에는 목탄은 일부
검출되나 소토의 분포는 거의 희박하며 토층상에서 부정형수혈과 주혈등이 확인된다. 명황갈색 점질토층은 암반층의 상면이며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Ⅰ지구의 토층상황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나. 유구
Ⅰ지구는 현재 조사진행중에 있다. 확인 및 조사된 유구는 남쪽지역에 위치한 건물지 유적과 소토포함층에서 확인된 수혈유구, 소토유구, 소토화된 바닥이 노출되는 주거지와 부속시설인 아궁이 유구, 그리고 주거지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대형의 우물등이다.
① 주거지 : 주거지는 현재 6기가 확인되며 평면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대부분 지상식이다. 상태가 양호한 12호의 경우 길이 10m, 너비 9m의 방형이며 가장자리에서 중앙을 향해 소토벽체가 무너져 있다. 바닥은 불로 다져 아주 단단하며 가장자리쪽에 치우쳐 아궁이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② 우물 : 주거지와 주거지 사이에 놓여있는 1호 우물은 내부벽석의 지름이 2m 가량 되며 깊이는 약 450㎝정도의 대형우물이다.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할석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벽을 축조했다.
③ 건물지 : 남쪽지역의 흑갈색 부식토층에 길이 25m의 석축과, 석축의 북쪽으로 적심석, 초석, 적석군등이 있다. 석축은 동서방향으로 축조되었으며 현재 3단정도 남아있다.
최하단은 길이 1m, 너비 50㎝의 장대석을 이용하였고 상단으로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주변지역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 및 기와편들이 깨어진 채로 출토되고 있고, 남쪽 건물지에 위치한 석축의 서쪽끝에서 1m정도 떨어져서 명문석의
고비가 출토되었는데, 명문이 있는 면이 위로 향하고 있었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며 조사결과에 따라 고비의 성격 추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인다.

다. 유물
① 현재까지 Ⅰ지구에서 출토된 유물은 통일양식 토기에서 원삼국시대 토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층서적으로 출토된다. 출토된 토기들의 기형으로는 단각고배, 개, 단경호, 적갈색 연질토기, 고식도질 단경호, 고배, 와질토기호, 노형토기호편, 장란형토기 등이다.
남쪽건물지에서는 인화문와당, 평와등 기와가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② 名文碑石(古碑)
임당동 Ⅰ지구에서 발견된 이 비는 길이 67㎝, 너비 17~33㎝, 두께 19㎝크기의 화강암계 자연석에 4행에 걸쳐서 글자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글자 자체는 예의를 머금은 해서체이며, 각 행당 14자 전후로 모두 60여자 가량이 된다.
제 ①행에는 年月日이 적혀 있었으나 지금은 ‘日’자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아래 부분과제 ②행의 앞부분에 걸쳐서 본 비의 건립 이유가 명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치 않다. 제 ③행의 「起任△△者」는 오작비의 「起數者」란 표현에 대비할 때, 이 비를
건립한 주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뒷부분은 이에 관여한 사람들을 나열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 비의 성격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며, 향후 주변 유구의 조사내용과 추가의 비문 해석을 통해 계속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도 불명확하지만 주변 유구의 출토자료와 서체 등을 통해 볼 때 대체로 7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이 비에 대한 많은 점들이 명확치 않지만 앞으로 정밀한 비문 해석이 이루어진다면 임당유적의 성격과 신라사 및 고대 금석문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4. 調査成果 및 意義

1) F지구의 북동사면에서 남서쪽으로 2열을 이루면서 나타나는 주혈군은 목책시설로 추정되며, 이는 파괴되기 이전의 지형을 복원해 보았을때, 현재 사적 300호로 지정된 임당동 고분군을 포함해서 능선을 에워싸게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목책시설의 용도와 성격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힐 수 없지만 수장층 고분군의 구역표시 또는 보호시설로 추정된다. 목책시설이 설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구지표면에서 고식토기들이 출토되는 층에서 주혈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서 이 지역의 고총고분들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 G지구의 고분 밀집지역의 경사면 윗부분에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구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 구는 고분지역의 전체적인 주구 겸 경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러한 양상은 삼국시대 집단고분군의 입지와 축조방법의 연구에 좋은 자료로
생각된다.

3) G-5호, 6호분은 임당유적에서 지금까지 조사된 대형목곽묘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하여 볼 때 경주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적석목곽분의 시원적 성격을 나타낸다. 즉 전자의 목곽상부에 적석을 덮으면 후자와 동일한 구조를 보이기 때문에 적석목곽분의 구조와 계통을 밝히는데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4) Ⅰ지구는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며 현재까지 나타난 양상은 원삼국시대 주거지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광범한 생활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임당지역에서의 분묘군과 생활유적의 배치공간상의 관계 등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생각된다. 특히 석축렬과 대형우물, 건물지의 규모, 고비의 존재 등을 고려할 때 이 지역이 대규모의 주거유적으로서
앞으로의 조사가 기대된다.

5) Ⅰ지구에서 출토된 명문석은 그 내용이 명확치 않지만 발굴유구에서 확인된 자료이기 때문에 임당유적의 성격과 당시의 사회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명문석의 서체와 내용, 출토지역의 유구 등을 검토한 결과 신라의 고비로서 앞으로 신라사 및 금석문 연구에 있어서 커다란 공헌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5. 문제점과 향후과제

1) F지구에서 나타나는 2열의 주혈군(목책)과 생활유적, 고분과의 관계를 밝히는 문제
→원지형의 파괴 및 발굴조사지역의 한계로 인하여 정확한 성격을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음.

2) 임당 전체 지역에 있어서 고분군과 생활유적을 밝히는 문제
→당시 주거지역과 고분군의 입지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

3) Ⅰ지구에서 출토된 명문석의 내용을 밝히는 문제와 주변유구와의 관련성을 밝히는 문제
 

F 지구 전경
F 지구 목책열 세부
F -II 지구 토광
F -II 지구 1호 우물
F -II 지구 1호 적석
G 지구 전경
G 지구 5,6호 목곽
G 지구 58, 59호 목곽
I 지구 1호 주거지
I 지구 명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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