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州 舍羅里 古墳群 發掘調査 경주 사라리고분군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삼국
성격 주거지,고분
회수 5
개최일자 1996.02
조회수 1,977
慶州 舍羅里 古墳群 發掘調査

1. 調査槪要

가. 遺 蹟 位 置 : 慶尙北道 慶州市 西面 舍羅里 573-3외 18필지

나. 調 査 期 間 : 1995. 11. 8~1996. 2. 15(예정)

다. 調 査 範 圍 : (주)명성 제2공장부지 8천평중 유구잔존지역 약4천평

라. 調 査 經 費 : 이억일천사백오십구만사천원(₩214.594.000)

마. 調 査 機 關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 舍羅里發掘調査團(團長:李白圭)

바. 調査依賴機關 : 주식회사 명성(유진산업)



2. 調査經過

사라리유적은 경주시내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5km 떨어져 있는 경주시 서면 사라리마을 앞산 573-31번지일대 해발 45m의 나즈막한 능선에 위치한다.
주변으로 金尺里古墳群, 芳內里古墳群, 大谷里古墳群, 富山城 등 수많은 고고역사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사라리 일대는 國立慶州博物館, 동국대학교 등에서 이미 수차례의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의 존재가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번조사는 (주)명성이 제2공장건립을 위해 부지조성 작업을 하던 중 三國時代 고분이 노출되어 경주시 문화과와 본 연구원의 협조를 받아 전체 유적 8천평에 대한 시굴조사를 1995년 8월 25일부터 9월 8일 까지 15일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유적이 위치한 능선의 정상부와 북사면 약 4천평정도가 파괴되었음을 확인하고 유구잔존지역은 남사면 4천평정도이며 유적은 대부분 삼국시대분묘로 확인되었다. 유구잔존지역 4천평에 대한 發掘調査는 시굴조사결과를 바탕으로 1995년 11월 8일부터 1996년 2월 현재 조사진행중이며 전면발굴을 통해 三國時代墳墓 130여기, 靑銅器時代住居址 4棟이 확인되어 조사중에 있다.


3. 調査內容

가. 遺構

전체유적의 훼손이 심해 정확한 분포상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조사된 유구의 다양함으로 인해 사라리 일대 유적의 성격파악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靑銅器時代 주거지 4棟을 포함하여 原三國時代에서 三國時代까지 고분 130여기가 확인되었다.
유구의 성격은 木棺墓, 甕棺墓, 木槨墓, 積石木槨墓, 石槨墓 등이며 墓制는 각기 시기를 달리하며 조영되어 있다. 시기별 대표적인 유구를 중심으로 각 유구에 대한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1) 靑銅器時代

유적이 위치한 능선의 중앙에서 남사면 쪽으로 치우쳐 장방형의 주거지 4동이 장축 방향을 같이하며 만들어져 있다.

2) 原三國 및 三國時代

가) 木棺墓 : 木棺墓는 능선의 사면 아래에 집중 분포하며, 43호, 74호, 78호, 110호가 해당된다.
① 78호 木棺墓
유적의 남동사면 아래 위치하며 79호와 중복되어있다. 장축방향이 N - 60°-E인 木棺墓로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묘광은 길이 270cm×폭 105cm×깊이 60cm의 장방형 묘광을 파고 길이 200cm×폭 70cm의 목관을 내부에 만들었다. 바닥시설은 생토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했으며 경사면에조성되어 바닥면이 일정하지 않다.
출토유물은 모두 棺외곽-보강토및 棺상부-에 매납되어 있다. 서장벽 보강토내에 조합파수부장경호 1점과 와질단경호 1점이 매납되어 있고 棺상부에 주머니호와 와질호 1점이 매납되었다.

② 110호 木棺墓
유적의 남동사면 아래에 위치하며 78호와 근접해 있다.장축방향이 N - 60°-E인 木棺墓로 등고방향과 직교한다. 묘광은 생토암반면을 길이 230cm×115cm×깊이 60cm의 장방형 묘광을 파고 길이 190cm×폭 80cm의 목관을 내부에 설치하였다. 바닥면은 생토암반면을 이용했으며 요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벽면에는 철부를 이용한 굴지구 흔적이 확인된다.
출토유물은 경식을 제외한 모두가 棺 외곽에 부장되었으며 78호와 부장 양상이 비슷하다.
서장벽쪽에 장란형토기와 조합우각형파수부장경호 1점, 철부 2점, 철겸 1점이 노출되었고 동장벽에 조합우각형파수부장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바닥의 북쪽에 유리제 구슬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 頭向은 북쪽으로 추정된다.

나) 木槨墓 : 5호, 7호, 13호, 18호, 19호, 27호, 55호, 73호, 95호, 96호, 99호, 100호, 113, 121호, 124호 등이 해당되며, 장방형과 세장방형이 있다.

① 18호 木槨墓
유적의 서북쪽끝에 위치하며 장축방향 N -45°-E인 장방형 木槨墓로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유구의 상면은 후대의 교란으로 대부분 유실되고 바닥면 정도만 남아 있다. 유구의 규모는 묘광이 길이 360m×폭 260m×깊이 15m 이며 木槨의 규모는 길이 260m×폭 150m이다. 이 木槨墓는 32호 木槨墓와 함께 불을 태운 유구이다. 木槨의 흔적이 목탄으로 남아 분명하다.
유물의 부장은 ‘ㄱ’字狀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토기위로 목탄이 쓰러져 노출되어 있다. 목곽의 남동장벽과 남단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와질대부호, 양이부호 등이 10점 출토되었다.

② 124호 木槨墓
유적의 동사면 편평한 구릉에 위치하며 4호 주거지를 파괴하며 出土되었다. 상부 유실이 심해 남단벽은 남아있지 않다. 장축방향이 N -30°-W인 木槨墓이며 등고와 직교한다.
유구는 길이 3.0m(잔존)×폭 1.50m×깊이 0.28m이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없이 주거지 내부토를 그대로 이용했으며 잔존하는 출토유물은 노형토기, 와질대부호, 소호, 철모, 철도 등 북단벽과 동장벽에 붙어 있다..

③ 19호 木槨墓
조사구역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1호 주거지와 중복되어 있다. 묘광의 장축방향은 N - 54°-W으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다.
유구는 길이 340cm×폭 135cm×깊이 23cm 규모의 장방형 묘광을 만들고, 내부에 300cm×100cm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의 공간에는 황갈색토를 채워넣어 보강하였다.
유물은 목곽내의 양단벽에 놓여져 있었다. 북서쪽 단벽에는 대호, 광구소호, 연질호, 연질발류, 철모가 남동쪽 단벽에는 파수부광구소호, 단경호, 철부가 출토되었다.


④ 95호 木槨墓
유적의 동남사면 최아래에 위치하며 주축방향 N -40°-E인 木槨墓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유구 남단벽 일부는 경작시 잘려나갔다. 유구는 길이 200cm(현존)×폭 100cm×깊이 28cm의 장방형 묘광을 파고 내부에 墓槨을 안치하였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고 생토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했다. 유물은 남아있는 북단벽쪽에 단경호 2점, 유자이기, 철모, 철부가 매납되어 있다.

⑤ 5호 木槨墓
유적의 서남사면아래에 위치하며 장축방향이 N - 45°-E 인 장방형 목곽묘로서 등고선방향과 직교한다. 유구는 길이 400cm×폭 200cm×깊이 75cm의 장방형 묘광을 파고 내부에 길이 315cm×폭 150m의 목곽을 만들었다. 바닥은 생토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북단벽 아래에 일단투창고배, 이단투창고배, 장경호 등이 매납되어 있고 남단벽쪽에 철모, 철겸 등의 철기류와 家形土器 1점이 노출되어 있다. 북단벽쪽에서 세환이식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枕向은 북쪽이다.

⑥ 13호 木槨墓
조사구역의 남서편에 위치한다. 묘광의 장축방향은 N- 80°-E 으로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발굴전 상태는 부곽이 민묘에 의해 1/3이 파손된 상태였다.
유구는 길이 610cm×폭 174cm×깊이 40cm 규모의 세장방형 묘광을 파고, 한 묘광 안에 주곽과 부곽을 일렬로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의 공간에는 갈색점토와 납작한 암반을 채워넣어 보강하였다. 주곽에는 315cm×115cm 크기의 목곽을, 부곽에는 215cm×130cm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유물은 주곽 내의 양 단벽쪽에 장경호, 고배류, 파수부완, 연질옹 등과 몽고발형주, 철촉군, 철부 등의 철기류가 놓여져 있었다. 주곽의 북장벽쪽에는 장벽과 나란하게 환두철도 1점이, 동단벽쪽에서 이식 1점이 출토되었다. 두향은 동쪽으로 추정된다. 부곽에는 고배, 이형토기, 경갑, 등자, 재갈 등의 철기류가 놓여져 있었다.

⑦ 113호 木槨墓
조사구역의 남동쪽 사면에 위치한다. 묘광의 장축방향은 남북방향으로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유구는 길이 370cm×폭 134cm×깊이 29cm 규모의 장방형 묘광을 만들고, 내부에 330cm×85cm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의 공간에는 황갈색토와 일부에 청석암반을 채워넣어 보강하였다.
유물은 목곽내의 양 단벽쪽과 목곽 중앙에 놓여져 있었다. 북단벽에는 주로 장경호, 대부호, 이단투창고배, 연질옹 등의 토기류가, 남단벽에는 철부, 철겸, 철착, 등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유구의 중앙에 장경호, 대호가 부장되어 있었다.

다) 積石木槨墓 : 7호, 8호, 33호 등이 해당되며, 단곽식, ‘凸’字狀 주부곽식이 있다.

① 7호 積石木槨墓
조사구역의 남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묘광의 장축방향은 N- 70°-E으로 등고선 방향과직교한다.
발굴전 상태는 경작과 도굴에 의해 동단벽의 일부가 파손된 상태였고, 유구 상면에 약 15~40cm 크기의 할석이 덮혀 있었다. 유구는 길이 390cm×폭 205cm×깊이 54cm 규모의 장방형 묘광을 만들고, 내부에 310cm×110cm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의 공간에는 적갈색 점토와 20~30cm크기의 할석을 채워 넣어 보강하였다. 바닥은 납작한 냇돌을 2단 깔아 만들었다.
출토유물은 양단벽쪽에 대호, 대부파수부호, 연질옹, 개, 고배, 판상철기, 철촉 등이 부장되어 있고, 북장벽쪽에 장벽과 나란하게 환두철도 1점이 출토되었다. 이식은 동쪽 단벽에서 1쌍이 출토되었는데 두향은 동쪽으로 생각된다.

② 8호 積石木槨墓
조사구역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묘광의 장축방향은 N - 26°-W 으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다. 발굴전 상태는 경작과 도굴로 군데군데 파손된 상태였고, 유구 상면에 약 20~40cm크기의 할석이 덮혀져 있었다. 유구는 길이 360cm×폭 170cm×깊이 21cm 규모의 장병형 묘광을 만들고, 내부에 300cm×105cm 크기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의 공간에는 황갈색 점토와 20cm 내외의 할석을 채워넣어 보강하였다. 바닥에는 작은 냇돌을 2단 정도 겹쳐 깐 시상석이 3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바닥의 네모서리에는 4개의 기둥구멍흔과 목곽의 목재흔이 나타났다.
유물은 목곽내의 양 단벽쪽에 대호, 고배, 개, 장경호 등 토기류와 철촉, 철부 등 철기류가 부장되어 있다.

③ 33호 積石木槨墓
조사구역의 중앙에 위치하며 적석목곽묘가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유구의 장축방향은 N-40°-W으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다. 발굴전 상태는 경작과 도굴에 의해 부곽은 파괴된 채 노출되었고, 주곽은 상면에 15~30 cm크기의 할석이 2~3단 덮혀 있었다.
유구는 凸자형의 묘광을 판 다음, 길이 310cm×폭 110cm 규모의 장방형의 주곽과, 방형의 부곽에 각각 목곽을 넣고, 묘광과 목곽 사이에 20~40cm 크기의 할석을 채웠다. 유구는 평면 凸자모양을 이루고 있으나 주곽과 부곽의 경계부분에는 약 20cm 크기의 할석으로 한단을 쌓아 낮은 경계벽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주곽에만 납작한 냇돌을 깔았고, 주곽의 바닥이 부곽바닥보다 약 10cm 깊다.
유물은 주로 주곽의 양단벽쪽과 부곽에서 출토되었다. 북서쪽 단벽에는 대부장경호, 장경호, 철촉군이, 남동쪽 단벽에는 뚜껑류, 고배류, 장경호, 연질호 등이 부장되어 있었다.
남동쪽에 철검 1점과 철부 2점이 놓여져 있었는데 철검 1점은 단벽과 나란하게 놓여져 있었다. 부곽에는 장경호, 호류, 재갈, 교구가 부장되어 있었다.

라) 石槨墓 : 84호 등이 해당되며, 6세기대 이후 늦은 시기에 출현한다. 소형으로 벽축조수법 등이 정연하지 못하다.

① 84호 石槨墓
유적의 동편끝에 위치하며 이 일대는 石槨墓들이 집중 분포한다. 주축방향 N - 60°- E인 소형수혈식 石槨墓로 등고선과 일치한다. 유구는 길이 250cm×폭 100cm 깊이 28cm의 장방형 묘광을 파고 내부에 석곽을 만들었다. 석곽의 양장벽은 부정형의 납작한 할석을 이용하여 와수적하였으며 그위에 할석을 평적하였다. 양단벽은 편편하고 넓은 할석을
2매 이용하여 와수적하였다. 바닥에는 2cm정도의 자갈로 시상을 만들었다. 유물은 양단벽에 부장되었는데 동단벽에 단각고배를 비롯한 토기류가 30여점 놓여있었다. 서단벽쪽은 교란되어 부장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나. 遺物

조사전 발굴지역내 유구의 훼손으로 인해 토기및 철기류 등은 상당히 수습되었다. 原三國時代 유물은 조합우각형파수부장경호, 장란형토기, 주머니호, 복합기형토기, 노형토기, 대부호, 소호, 단경호 등의 토기류와 철모, 철부, 철겸, 철촉, 철도 등의 철기류와 절자옥, 유리제 구슬, 마노제옥 등의 장신구가 있다.
三國時代 遺物은 장경호, 단경호, 고배, 파배 등의 토기류와 몽고발형주, 경갑, 등자,재갈, 철검, 환두대도, 교구, 철촉, 철모, 유자이기, 철부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5호목곽묘에서 출토된 완형의 가형토기가 주목할 만하다.


4. 調査成果 및 意義

가. 전면발굴을 통한 다양한 유구의 파악은 묘제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본 조사에서 확인된 목관묘, 목곽묘, 적석목곽묘, 석곽묘는 경주지역의 묘제와 사회상의 순차적인 변천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나. 5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家形土器)는 당시 신라사회의 가옥구조 등 생활상을 파악하는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다. 경주 일원에서 극히 부진한 목관묘 및 목곽묘 자료 및 유물이 다수 확인됨으로서 앞으로 이 부분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라. 사라리 유적에서 조사된 다수의 적석 목곽묘는 그 구조와 유물을 통해 최근 조사가 급증하는 경주외곽지역의 적석목곽묘 조사와 함께 적석목곽묘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바. 일부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모두 규모가 중형급이상으로 최근 경주지역에서 조사가 급증하는 청동기시대 자료와 함께 활발한 연구가 기대된다.


5 향후 과제

사라리 일대는 해발 50여m 내외의 나즈막한 능선이 여러 갈래 뻗어 있으며 지표조사 결과 주위는 대규모 고분이 밀집 분포하는 지역으로 이 일대의 향후 보존 및 보호 대책을수립하여야 하겠다.


 

유적 원경
유적 전경
110호 목곽묘
18호 목곽묘
5호 목곽묘
5호 목곽묘 출토 가형토기
13호 목곽묘
13호 목곽묘 출토 몽고발형 투구
7호 목곽묘
33호 적석목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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