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時至洞古墳群發掘調査 -時至洞宅地開發地區內 - 대구시지동고분군발굴조사 -시지택지개발지구

시대 삼국
성격 고분
회수 9
개최일자 1997.04
조회수 2,079
大邱 時至洞 古墳群 發掘調査 - 時至洞 宅地開發地區內 -


1. 調査槪要

가. 遺蹟位置 : 大邱廣域市 壽城區 新梅洞 510-158번지외 30필지

나. 調査期間 : 1996. 7. 25~1997. 5. 20(예정)

다. 調査範圍 : 약 3,240평

라. 調査機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 時至洞發掘調査團(國長: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 大邱廣域市 都市開發公社



2. 調査經過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에서는 대구광역시 도시개발공사의 의뢰로 지난 1994년 11월 24일부터 현재까지 시지동 택지개발지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차는 1996년 5월에 완료하였으며, 현재는 2차 생활․고분유적과 3차 생활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것은 2차 조사에 대한 내용이다.
본 유적에 대한 발굴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발굴구역을 4개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2개지역(21․24G)에 대해서는 1차 발굴조사시에 사용한 그리드를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나머지 2개 지역(25․26G)에 대해서는 택지개발 계획상 구획된 블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2차 조사는 1996년 7월 25일에 착수하여 1997년 5월 20일에 완료할 예정으로 현재까지
수혈식 석곽묘 197기, 횡구식석실 10기, 횡혈식석실 28기, 옹관묘 6기 등 총 249기가 조사되었다.


3. 調査內容

가. 遺構

가) 25그리드
조사된 4구역 중 남서쪽에 위치한 구역으로 삼국시대의 수혈식석곽 158기, 횡구식석실 8기, 횡혈식석실 23기, 옹관묘 3기, 수혈주거지 3동, 근대 우물 2기 등 총 197기가 조사되었다.

(1) 수혈식석곽
총 158기가 조사되었는데, 석곽의 크기는 길이 100~400㎝, 폭 50~100㎝, 깊이 30~100㎝정도다. 벽축조방법은 여러 종류가 있으나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할석을 이용한 평적기법으로 가로쌓기(횡평적)․세로쌓기(종평적)를 한 것.
둘째, 세워쌓기(입수적)와 눕혀쌓기(와수적)를 혼용하여 한벽면을 세워쌓기한 후 상면에 할석을 평적한 것.
셋째, 첫째방법과 둘째방법을 혼용한 것이 있다.
유구의 전체적인 배치는 등고선과 평행한 것과 직교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① 155호 석곽
석곽의 규모는 길이 358㎝, 폭 85㎝, 깊이 80㎝이며, 장축방향이 남-북(N-15˚-E)인 수혈식석곽묘이다. 141․142호와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벽석 축조는 편평한 할석을 눕혀쌓기 한 후 그 위에 할석을 가로쌓기하였다. 양단벽의 판석은 장벽사이에 끼워진 ㅍ상이며, 남단벽의 상부 할석들은 모서리를 말각처리하였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양단벽에 유물을 매납하고 석곽중앙에 목관을 안치하였다. 관의 규모는 길이 145㎝, 폭 38㎝이며, 관의 중앙에서 3점의 단경호가 바닥보다 6㎝정도 높은 위치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는 목관의 목개위에 매납하였던 유물로 판단된다. 특히 155호 석곽묘에서는 북단벽쪽에 금동제이식 1쌍이 확인되어 피장자의 침향이 북향임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은
북단벽에 대부장경호류와 고배 등이 남단벽에는 등자 1쌍, 재갈, 단경호 등이 나왔다.

② 158호 석곽
조사구역의 서편경계지점의 남쪽에 위치하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410㎝, 폭 100㎝, 깊이 70㎝이다. 장축방향이 남북이며,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이다. 개석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도굴의 흔적도 없었다. 장벽의 축조는 편평한 할석을 각각 6매 눕혀쌓기한 후 할석을 가로쌓기 하였고, 단벽은 1매의 편평한 할석을 눕혀쌓기한 후 그 위에 할석을 가로쌓기 하였다. 석곽내부에서 목곽을 설치한 흔적으로 보이는 회백색점토띠가 석곽내부에 5~10㎝정도의 폭으로 확인된다.
출토유물은 대호, 단경호, 대부장경호, 고배, 소형완, 등자, 재갈, 철겸, 철촉 등이 나왔다.

③ 176호 석곽
조사구역의 서편경계지점에 위치하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400㎝, 폭 91㎝, 깊이 70㎝이다. 장축방향이 남북이며,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묘이다. 호석이 유구의 동․남․북편 3면에서 확인되고, 서쪽부분은 조사경계지역바깥이어서 확인이 안된 상태이다. 확인된 호석은 지형상 낮은 쪽에 위치하며, 2~3단으로 축조하고 호석의 외부에는 구가 형성되어있다. 개석은 상부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나, 내부조사중 남단벽에 접해서 1매의 개석이 부러진 상태로 확인되었다. 석곽내부에는 암갈색점토가 채워져 있다. 벽석축조는 편평한 할석을 세우고 그 위에 할석을 2~5단정도로 가로쌓기를 하였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관․곽의 존재가 확인되는 유구로서 석곽내부 바닥면에서 관․곽으로 추정되는 목질이 확인되었고, 추정목관 바닥판재 위에서 수하이식 1쌍이 확인되고 있다. 유물은 양단벽쪽에 위치하는데, 남단벽의 유물은 목곽내 매납으로 유물아래에서 목질이 확인된다. 또한 석곽과 목곽사이에 채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회백색점토가 남단벽까지 확인되고 있어 목곽내 매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단벽쪽에는 고배, 대형 단경호, 장경호 등이 2단으로 포개어서 매납되어 있었으며, 목곽밖에서 출토되었다.

(2) 횡구식석실
총 8기의 유구가 조사되었으나, 잔존상태가 좋지않아,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① 103호 석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270㎝, 폭 108㎝, 높이 86㎝이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이 북서-남동인 횡구식석실이다. 상부벽석의 일부가 내부로 함몰된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개석은 확인되지 않았다. 내부에는 암갈색점토가 채워져 있으며, 입구는 남동단벽으로 벽전체를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네벽은 할석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1~2단은 세로쌓기로 하고, 3단부터 가로쌓기를 하였는데, 3단부터 네모서리가 서로 맞물려서 축조되었다.
시상은 우벽에 붙어서 길이 방향과 일치하게 설치하였고, 천석과 점판암편, 토기편 등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추가장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출토유물은 단각고배, 연질호, 대부완 등의 토기류와 철촉, 철겸 등의 철기류가 나왔다.

(3) 횡혈식석실
총 23기가 조사되었으며, 연도부 방향에 의해 두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연도부가 남쪽에 위치하는 유구로서 전체 조사유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둘째, 연도부가 동쪽에 위치하는 유구로서 전체 조사유구 중 65호, 84호, 104호 3기만이 확인되었다.
연도의 위치에 의하여 분류하면 중앙에 있는 것이 1기, 좌벽쪽에 있는 것이 3기, 우벽쪽에 있는 것이 19기이다. 연도부의 방향이 동쪽인 것은 모두가 좌편연도이고, 연도부가 남쪽인 것은 모두 우편연도이다.

① 104호 횡혈식석실
유적의 중심에서 북서편에 위치하며, 규모는 전벽길이 150㎝, 후벽길이 130㎝, 좌벽길이
205㎝, 우벽길이 1705㎝, 높이 80㎝이다. 현실의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석실이다. 봉분이나, 호석은 확인되지 않고, 석실벽석․천정석일부가 석실내부로 함몰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석실의 길이방향은 북서-남동이다. 벽은 할석을 주로 사용하여 눕혀 쌓았는데, 1~2단은 세로쌓기로 하고, 3단부터 가로쌓기를 하여 벽면이 내경하도록 하였다.
벽석은 5~6단정도 남아있다. 시상은 생토면위에 자갈돌과 소형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후벽과 나란하게 1차 시상을 축조하고, 우벽과 나란하게 2차 시상을 축조하였다.
연도부는 동쪽에 위치하며, 편평한 할석 1매로 막음하였고, 이 1매의 판석은 현실바닥면보다 10㎝정도 높으며, 연도부 좌․우벽석 또한 현실에서 연도로 빠지면서 높이가 올라간다.
104호 석실은 104-①․②․③호의 제사유구가 확인되고 있다. 104-①호는 연도부 남동쪽에 위치하며, 대호내부에 소형완, 연질호, 단각고배를 넣은 것으로 대호의 동체상부는 결실되어 저부와 내부매납토기만이 확인되고 있다. 104-②호는 부정형부장곽으로 석실 북동편에 위치하며 부정형의 수혈을 굴착한 후 할석을 세우고 대부장경호, 단경호를 매납하였다. 104-③호는 101호의 동단벽을 파괴하고 위치하는데 토광이 확인되지 않고, 대부완 1점이 확인되었다. 이 세 유구는 봉분내에 위치했던 제사유구로 추정되어져 봉분의 범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출토유물은 1차 시상에서 대부호, 단각고배, 대부장경호등이 나왔고, 2차 시상에서는 단각고배 세트, 유개합, 대부호, 도자, 이식 1점 등이 출토되었다.

② 122호 횡혈식석실
유적의 남서편에 위치하며, 석실의 규모는 전벽 150㎝, 후벽 260㎝, 우벽 400㎝, 좌벽 275㎝, 높이 50㎝이다. 연도는 현실의 남쪽에 위치하며, 4차에 걸친 추가장이 이루어졌다. 1차 시상은 할석을 2단으로 쌓고 그 위에 전체적인 높이를 맞추기 위하여 자갈돌을 약 5㎝정도 깔았다. 높이는 약 30㎝정도로 높은 편이며, 후벽과 나란하게 축조되었다. 출토유물은 대부장경호 2점, 철탁 2점, 도자 1점 등이 나왔다. 2차 시상은 좌벽면에 접해서 1차 시상과 직교되게 길이 140㎝, 폭 80㎝, 두께 15~20㎝정도되게 축조하였다. 출토유물로는 단각고배 3점, 뚜껑 2점, 적색연질발 1점 등이 있다. 3차 시상은 좌벽면에 접해서 1차 시상과 나란하게 길이 150㎝, 폭 50㎝, 두께 15㎝정도되게 2차 시상의 북쪽부분위에 축조하였다. 출토유물로는 고배, 대부완, 뚜껑, 마탁(청동)등이 나왔다. 4차 시상은 우벽면에 접해서 1차시상과 직교되게, 2차 시상과는 나란하게 축조하였다. 출토유물은 단각고배세트 4점, 도자 1점이다.

(4) 옹관묘
총 6기가 조사되었으며, 이 중 75호, 옹관1․2호를 제외한 2기는 3호와 관련된 배묘성격이다. 5기 모두 합구식이며 굴광내에 소형 토기를 1~2점씩 매납하고 있다. 75호는 석곽을
짠 후에 옹관을 안치하였으며, 개석도 확인이 되었다.

나) 26그리드

총 52기 가운데 수혈식석곽 39기, 횡구식석실 2기, 횡혈식석실 5기, 옹관묘 3기, 기타 3기 등이 조사되었다. 전체적인 성격은 25그리드와 비슷하며, 시기적인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26그리드에서 특이한 것은 개석이 확인된 3기의 유구가 개석을 제거한 결과 석곽이 아닌 목곽이며, 출토유물은 대부장경호와 연질호 등이다.
또한, 장축방향이 남북인 유구의 경우에 유구바깥 남쪽에 굴광을 파서 적색 연질호 1점을 매납한 것이 특징이다.

(1) 수혈식석곽묘

① 196호 석곽
석곽의 규모는 길이 270㎝, 폭 70㎝, 깊이 50㎝이다. 장축방향이 북서-남동향이고, 평면형태가 장방형인 수혈식석곽이다. 197호와 나란히 위치한다. 3매의 개석이 남단벽쪽에 얹혀 있으며, 개석과 개석사이에 할석과 천석을 이용하여 막음하였다.
벽석은 천석을 주로 이용하여 가로쌓기를 하였으며, 네모서리는 말각처리하였다. 개석의 함몰로 인해 석곽중앙의 상부벽석들중 일부가 내부로 함몰되어 있다. 시상은 직경 10㎝미만의 천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설치하였고, 유물이 부장된 남동단벽에는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유물은 단경호, 고배, 대부장경호 등이 출토되었다.

(2) 횡혈식석실

① 208호 석실
현실의 규모는 전벽길이 135㎝, 후벽길이 215㎝, 좌벽길이 250㎝, 우벽길이 350㎝, 높이 30㎝이며, 연도부는 길이 125㎝, 너비 70㎝, 높이 36㎝이다. 현실의 평면형태가 방형인 횡혈식석실이다. 봉분은 확인되지 않으나, 석실의 서쪽부분과 남․북쪽부분의 일부에서만 주구가 확인된다. 석실의 상부벽석과 천정석은 확인되지 않고, 현재 1~2단의 벽석만이 잔존하고 있다. 1단은 세로쌓기를 하고 2단부터는 가로․세로쌓기를 같이 하였다. 연도부는 현실남동편에 위치하며, 폐쇄석은 확인되지 않는다. 시상은 2차 시상까지 확인이 되는데, 1차시상은 후벽과 나란히 하였고, 강돌을 이용하여 2단으로 축조하였다. 유물은 시상 북편에 매납되어 있다. 2차 시상은 우벽에 접해서 나란하게 축조한 것으로 1차시상과 직교한다. 2차 시상의 서편이 1차시상 북동장벽을 일부 덮고 있어, 추가자의 순서를 명확히 알
수 있다.
208호는 주구내에 208-①호인 판석조석곽 1기와 봉토내로 추정되는 208-②호인 합구식
옹관묘 1가 있다.

다. 출토유물
유물은 지표채집품과 21․24․25․26그리드의 출토유물이 있다. 21․24그리드의 유물은 취락에 관계되는 유물로서 대부분이 삼국시대의 적색연질토기편이고, 25․26그리드에서는 대부장경호, 부가구연장경호, 고배, 단각고배, 단경호, 적색연질발 등의 각종 토기류와 철촉, 철겸, 철탁, 철도자, 등자, 재갈, 유자이기 등의 철기류 그리고 금동제 이식, 은제이식, 곡옥, 경식 등 장신구류가 출토되었다.


4. 調査成果 및 意義

가. 이 유적의 주위에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와 주거지, 삼국시대의 고분․취락유구․토기요지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삼국시대의 고분과 취락유구가 동시에 확인되고 있다.

나. 삼국시대의 고분유구가 취락유구를 파괴하고 축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분유적이 취락유적보다 시기가 늦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 이번 조사에서 시지동 취락유적의 전체 범위 중 서쪽 경계면의 일부를 확인 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기존의 발굴된 것과 추후 발굴될 것을 조합하면 시지동 취락유적의 전체규모를 알 수 있게 되어 당시 이 지역의 고대사 연구 및 신라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5. 향후 과제

가. 고분유적과 취락유적과의 관계 문제
나. 조사완료 후 대표적인 유구의 이전복원에 대한 문제
다. 시지지구 주변에 대한 개발시의 문제

 

유적 전경
176호 목곽, 목관 확인상태
176호 북단벽 유물노출상태
103호 횡구식 석실
104호 횡혈식 석실
104호 제사토기
122호 횡혈식 석실
75호 옹관
196호 수혈식 석곽
이식류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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