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達城 汶山里古墳群 發掘調査 달성 문산리고분군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삼국,조선
성격 고분
회수 8
개최일자 2001.11
조회수 1,637
대구 문산정수장 건립부지내 유적(Ⅱ구역) 達城 汶山里古墳群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가.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산29번지 일대

나. 조사기간 : 2000. 12. 26.~2001. 11. 22.(예정)

다. 조사범위 : 약 10,000평

라.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院長 : 李白圭)

마. 조사의뢰기관 : 대구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Ⅱ. 調査經過

대구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는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에 취․정수장 건립을 계획하고 이에 따라 지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대구대학교박물관, 1998.). 그 결과 직경 20m급 이상의 대형고분을 비롯한 고분군과 인접지역에 문산리산성이 위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0.), 그 결과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삼국시대 봉토분을 비롯한 다수의 석곽묘, 옹관묘 등의 분묘유적, 조선시대 건물지와 분묘 등 청동기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이 형성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Ⅰ․Ⅱ․Ⅲ구역으로 나누어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우리 연구원은 Ⅱ구역에 대하여,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Ⅰ․Ⅲ구역에 대해여 발굴조사를 실시중이다. 우리 연구원의 조사대상구역인 Ⅱ구역은 자연유실과 도굴, 후대의 경작 등으로 인하여 크게 훼손되었지만, 삼국시대의 봉토분 2기를 비롯하여 석곽묘 122기, 옹관묘 7기가 확인되었고, 조선시대의 토광묘 5기, 건물지 1기 등 모두 137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Ⅲ. 遺蹟의 立地 및 周邊環境

조사지역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산29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다사읍에서 성주방면으로 30번 국도를 따라 4km 정도 가다보면 도로 북쪽으로 문양리 마을이 나타난다. 문양리의 반대편인 도로 남쪽으로 1km 정도 들어가면 낙동강에 연하여 낮은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유적은 이 곳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쪽에는 낙동강이 서에서 동으로흐르고, 서쪽에는 낮은 구릉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문산리산성이 낙동강과 접한 구릉의 정선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문산리 마을이 산록을 따라 자리잡고 있고, 마을 동편에는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유적은 낙동강을 경계로 하여 남쪽은 고령지역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성주지역과 접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주변에는 삼국시대 고분 및 산성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알려진 유적으로는 문산리산성, 문양리고분군(1999~2001, 영남문화재연구원 발굴), 죽곡리고분군(1994, 대구대학교박물관 발굴), 죽곡리산성, 봉촌리고분군 등이 3km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특히 인접한 문양리고분군에서는 최근 중소형 봉토분 16기와 함께 360여기의 분묘 유구가 조사된 바 있다.
또한 낙동강 동안을 따라서 성산리고분군 및 토성, 설화리고분군 및 산성, 본리리고분군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마주보는 낙동강의 서안에도 노곡리고분군 등의 분묘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Ⅳ. 調査內容

1. 유구

가. 봉토분
Ⅱ구역에서 외형상 봉토가 잔존하고 있는 봉토분은 모두 2기가 확인되었으며, 직경 20m 내외의 대형분 1기(M2호분)와 직경 10m 정도의 중형분 1기(M1호분)이다. M2호분은 유적의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리는 능선의 중앙 정선부에 위치하며, M2호분에서 북서쪽으로 약 20m 정도 떨어져 M1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Ⅱ구역의 능선에는 이들 2기의 봉토분 이외에도 중형급의 봉토분이 추가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여지나 봉토의 잔존상태로 보아 현재는 2기만 뚜렷하게 확인된다.

1) M1호분
M1호분은 조사전 이미 개석이 드러나 있는 상태였으며, 유적내를 가로지르는 농수로관매설시 봉토의 동쪽 일부와 상부가 파괴되어 유실된 상태였다. M1호분은 봉토 내에 1기의 석곽묘와 2기의 옹관묘가 조성되어 있었다. 2기의 옹관묘는 봉토의 유실로 인하여 상부가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고, 석곽묘는 길이 572cm 정도로 규모가 크고 세장하다. 바닥에는 유구의 장축방향과 직교되게 4열로 할석을 놓아서 관대시설을 하였다. 관대시설이 위치하는 곳의 양 장벽쪽에서 꺽쇠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목곽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에서는 고배, 장경호, 단경호 등의 토기류와 환두대도, 투구, 찰갑, 재갈, 등자 등의 무구류 및 마구를 포함하여 1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 M2호분
조사전 M2호분의 봉토는 북서-남동을 장축으로 하여 장경 21m, 단경 14m 내외의 타원형으로 남아있었다. 봉토의 주변에는 최근까지 밭이 경작되면서 봉토의 외기저면을 심하게 삭평시킨 상태로, 봉토의 외기저면을 따라 밭고랑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봉토의 북쪽에는 밭경작과 관련된 잡석더미가 봉토에 붙어져 있어 실제 봉토의 규모는 훨신 더 크게 보였다.
봉토는 거의 전면에서 도굴이 이루어진 상태이었는데, 이미 조사전 북동쪽과 남동쪽에 각각 200×200㎝, 300×400㎝ 정도의 도굴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매장주체부의 개석도 도굴구에 의해 지표에 드러나 있었다. 또한 중앙 정상부에는 400×200㎝, 북서쪽에는 380×250㎝, 북쪽에는 400×200㎝ 등 모두 5곳에 걸쳐 도굴의 피해를 입었으며, 도굴구 정리시다량의 토기편들이 수습되었다.
봉토의 조사는 기존의 봉토조사방법인 4분법을 응용하여 봉토 전면을 6등분하였으며, 조사전 도굴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봉토의 남북쪽에 각각 1기씩 2기의 매장주체부가 확인되어 이에 주석실로 판단되는 북쪽유구의 중심을 지나는 임의의 기준점을 설정하였다. 다음으로 기준점을 지나는 남북, 동서방향의 폭 80㎝ 둑을 구획하고, 남쪽유구의 장축을 지나는 동서방향의 둑을 북쪽유구의 남북둑과 교차되게 구획하여 봉토의 전면을 6등분하였다. 이는 조사전 이미 두 유구의 장축방향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봉토의 장단축보다는 유구방향을 고려하여 구획한 것으로, 두 유구간 간격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좁지는 배치로, 두 유구의 장축을 지나는 동서둑 역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간격이 좁지는 ‘>’자 형태이다.
둑의 설정은 둑의 벽면에 나타나는 층위를 통해 봉토의 축조상태를 파악함과 동시에 한봉토내 다수의 유구가 조성된 경우 유구간 선후 또는 동시축조를 파악하는 것으로, M2호분의 발굴둑 설정 역시 이러한 조사주안점에 염두하여 6등분한 둑을 구획하였다.
도굴의 범위가 가장 큰 중앙 정상부의 도굴구는 봉토의 상면에서 약 200㎝ 깊이까지 진행되었으며, 이 도굴구에서 이미 확인된 2기의 유구 외에 또 다른 1기의 유구를 확인하여모두 3기의 유구가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3기의 유구는 북에서 남으로 오면서 각각A, B, C호로 명명하였다.
이상과 같이 6등분한 발굴둑을 설정한 후 각 분구별 수평제토를 실시하면서 봉토의 평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M2호분의 봉토내에는 모두 3기의 유구가 조성되었으며, 유구들은 최소 2차에 걸쳐 축조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유구의 선후관계를 보면, 먼저 봉토의 북쪽과 중앙에 위치한 A, B호는 봉토의 토층상으로 보아 동시에 축조된 유구이며, 이 A,B호의 봉토를 절개하고 C호가 축조되었다. 이는 봉토의 중앙에 형성된 대형의 도굴구를 정리한 동쪽단면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절단선이 확인되며, 단면에서 보여지는 절단선과 연결되는 평면선 역시 봉토의 동쪽과 서쪽에서 확인되었다. 즉 선축된 A, B호의 남쪽봉토 일부를 C호가 절단하고 조성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A, B호에 C호를 연결시킨 연접분의 형태이다.
선축분(A,B호)의 봉토는 유구의 중앙부를 기점으로 동서를 달리하는 지그재그선이 확인되는데, 이 선을 중심으로 동쪽은 황갈색, 갈색의 사질점토를 사용하여 봉토를 쌓았으나,서쪽은 대부분 청석의 암반편을 다량 사용하여 봉토를 쌓았다. 이 지그재그선은 개석 상단 80㎝ 정도에서부터 확인되는데, 이는 봉토축조과정에서 개석을 덮은 후 1차로 3~5㎝정도의 명황갈색점토로 밀봉한 후 2차로 황갈색, 또는 갈색의 사질점토를 약 80㎝ 두께로봉토를 견고히 한 후 마지막으로 동서방향에서 동시에 각기 다른 흙을 사용하여 봉토를 축조하였다. 서쪽에 사용된 청석의 암반층은 단면상에서 청석층 중간중간에 황갈색의 사질토가 마치 띠를 이루며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봉토축조시 청석으로만 사용할 경우 봉토가 함몰될 수 있기 때문에 축조시 일정한 간격으로 황갈색 사질토를 다져가면서 봉토를 견고히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후축된 C호의 봉토역시 유구의 중앙부를 기점으로 토층의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데, 선축유구의 지그재그선과 같이 뚜렷한 구분은 나타나지 않으나 확연히 구분되는 이질토를 사용하여 봉토를 축조하였다. 봉토의 축조순서는 1차로 두께 3㎝ 정도의 명황갈색 점질토를 사용하여 개석을 밀봉한 후 2차로 두께 70㎝정도의 갈색, 황갈색의 사질점토를 사용하여 봉토를 견고히 한 후 마지막으로 갈색의 마사토와 황갈색의 사질점토를 사용하여 마무리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봉토는 2차단계 위에서 동서토층의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데, 동쪽은 정선된 입자의 갈색마사토를 사용하였으나 서쪽은 청석암반편과 풍화암반편이 포함된 황갈색의 사질점토를 사용하였으며, 이 두 층은 C호의 중앙부에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이루고 있다.
봉토조사 후 개석의 노출상태를 보면, A호는 5매의 개석으로 덮혀져 있으며 개석의 전체 길이는 약 7m정도이며, B호는 7매의 개석이 덮혀져 있으며 개석의 전체길이는 A호와 거의 같은 7m정도이다. C호는 모두 16매의 개석이 덮혀져 있으며 개석의 전체길이는 약 11m 정도이다. 각 유구의 개석은 봉토의 토압과 도굴 등의 교란에 의해 대부분이 유구 내부로 심하게 함몰된 상태이다.
현재 조사는 개석을 모두 들어낸 상태로 내부조사를 진행중이나, 각 유구의 내부는 봉토의 함몰과 도굴 등에 의해 대부분 교란된 상태였으며, 특히 동시에 축조된 A, B호의 경우 장벽의 대부분이 유구내부로 함몰된 상태였는데, 이는 A호의 남장벽과 B호의 북장벽과의거리가 약 40㎝ 밖에 되지 않으며, 두 벽석 사이에 별다른 중전시설을 하지 않아 벽석의 함몰이 더욱 심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C호는 개석을 들어내자 양 단면쪽에 부곽이 확인되었는데, 부곽은 주곽의 단벽에 붙여 축조된 형태로, 서쪽 부곽의 경우 잔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나, 동쪽 부곽은 이미 도굴의 피해를 입어 벽석의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였다. 주곽의 경우 봉토의 토압에 의해 양 장벽의 함몰이 심한 상태였으며, 전체적으로 유구 내부로 벽석이 내경된 상태이다. 현재 조사상황으로 보아 A, B호는 수혈식석곽으로 두 유구가 동시에 축조되었으며, C호는 선축분의 봉토를 일부 절개하고 조성된 유구로, 양 단벽쪽에 별도의 부곽을 갖춘 수혈식석곽묘이다.

나. 석곽묘
모두 122기의 석곽묘가 확인되었다. 석곽묘는 조사구역의 전면에 분포하고 있으며, 길이가 5m 내외인 비교적 규모가 큰 유구는 경사가 완만하거나 평탄한 지역인 M1․2호분이 위치한 능선의 정선부와 유적의 북동쪽경사면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경사가 급한 남쪽과 동쪽, 북서쪽 사면에는 소형유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유구의 규모가 5m 내외로 비교적 큰 경우는 기대가 출토되는 예가 많으며, 대도가 출토되거나, 재갈, 등자편 등의 마구류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대도가 출토된 유구는 8호, 기대가 출토된 유구는 ,13,15, 22, 44, 53, 81호, 재갈이 출토된 유구는 2, 8, 13, 53, 54호, 등자편이 출토된 유구는 13, 44호 등이다.
석곽묘는 대부분 상부가 유실되어 개석이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적으며, 개석이 남아있는 유구는 유구의 규모가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개석이 남아있는 2, 13, 70, 131호 등은 개석의 압력으로 인하여 벽석이 일부 유구 내부로 함몰된 것을 볼 수 있고, 유물도 비교적 잘 남아있는 편이다.
개석이 남아있거나 대도, 기대, 재갈, 등자편 등의 유물이 출토된 유구는 대부분 길이가5m 내외로 유구의 규모가 비교적 큰 유구에 해당한다.
M2호분과 인접한 거리에 위치하는 53, 54, 56호 석곽묘와 55호 옹관묘는 하나의 주구가포함하는 범위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구의 규모가 5m 내외로 비교적 큰 점, 각 유구 사이가 거의 접하여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원래는 하나의 봉토내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곽묘의 구조는 할석을 평적하여 축조한 것이 대부분이며, 다른 형태의 것도 일부 조사되었다. 14, 57호는 양 장벽은 할석을 평적하여 축조하고 양 단벽쪽을 판석을 수적하였으며, 83호는 동단벽이 유실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남아있는 서단벽은 판석을 세우고 그 상단에 할석을 평적하였다. 89호는 남단벽만 판석을 세운 뒤 그 상단에 할석을 평적하였고 북단벽은 할석을 평적하였다. 70호는 네 벽을 모두 하단에 판석을 수적하고 그 상단에 할석을 평적하여 축조하였다.
바닥시설은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아무런 시설 없이 바닥면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 유구의 장축방향과 직교되게 일정한 간격으로 2~3열의 할석을 놓아서 관대를 설치한 경우,그리고 유물이 부장된 양 단벽쪽을 제외한 중앙부 전면에 편평할석을 깔아서 관대시설을 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52호는 바닥에서 장축방향과 직교하는 방향으로 놓아진 목질흔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바닥시설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도 목재의 관대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 옹관묘
모두 7기의 옹관묘가 조사되었다. 옹관은 대부분 장동옹 2점으로 구연부를 합구한 합구식옹관이며, 127호의 경우는 1점의 장동옹을 옹관으로 사용하고 할석 1매를 구연부에 막아 두었다. 옹관묘의 구조는 28호, 127호, 128호와 같이 기반층을 굴착하고 아무런 시설없이 옹관을 설치한 경우와, 43호, 62호, 87호와 같이 판석을 수적하는 방법으로 석곽을 촉조하고 그 내부에 옹관을 설치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129호는 심하게 유실되어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바닥에 소할석을 깔고 옹관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석곽을 축조하고 옹관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62호 옹관묘에서는 수하식이식이 출토되었다.

2. 유물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석곽묘에서는 고배, 기대, 장경호, 단경호, 대부완, 삼이부호, 파배, 시루, 영배 등의 토기류와 이식, 재갈, 등자편, 철촉 등이 출토되었고, 봉토분에서는 삼루환두대도, 투구, 찰갑 등과 등자편, 재갈 등의 마구류도 출토되었다. 석곽묘의 출토유물을 살펴보면 주변에 위치하는 문양리고분군에 비해 재갈, 등자편 등의 마구류의 출토량이 많은 것이 특징적이며, 봉토분에서 투구와 찰갑이 출토되는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M1호분과 13, 19, 54호 등의 유구에서는 고배를 4~5점씩 열을 지워 매납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문양리고분군과 죽곡리고분군, 성주 성산동고분군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조선시대 토광묘에서는 백자와 청동합, 청동숟가락, 관정 등이 출토되었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문산정수장 Ⅱ구역 발굴조사에서는 대형봉토분 1기, 중형봉토분 1기와 삼국시대 분묘유구 129기가 확인되어, Ⅰ구역과 더불어 이 지역에 삼국시대 분묘가 대규모로 군집하고 있음이 조사되었다. 또한 주변지역에서 조사된 문양리고분군, 죽곡리고분군과 비교연구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구 서부지역의 고분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기대된다.

2. Ⅱ구역의 M2호분은 구분 성토의 흔적이 뚜렷이 확인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3기의 대형 매장주체부가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M2호분의 후축분이 선축된 봉토를 절개하고 연접하여 무덤을 축조한 연접분의 형태임을 확인한 점은 새로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3. 문산리고분군 Ⅱ구역에서 목곽묘는 확인되지 않았고, 17호 석곽묘 등에서 출토되는 고배, 단경호 등의 유물로 보아 Ⅱ구역에서 고분이 처음 조영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중엽인 것으로 생각되며, 대부분의 유구가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초기 사이에 조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대형분의 축조는 인접한 문산리 산성의 축조와도 시기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문산리고분군에 분포하는 봉토분의 크기는 대부분 직경 20m 이상의 대형분으로서 주변의 문양리고분군에 비해 그 규모가 월등하며, 죽곡리고분군의 대형분도 단 1기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문산리고분군 집단이 이 지역의 중심집단인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 전경
M1-A 석곽
M1-A 석곽 유물
M1-A 석곽 투구
M1-A호 삼루환두대도
M2-A,B,C 석곽
M2호 남북둑 토층
53 ~ 56호
87호
출토 유물
96호 출토 방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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