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辰泉洞遺蹟 發掘調査 대구 진천동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고려
성격 지석묘,건물지,주거지,생활유적
회수 7
개최일자 2001.10
조회수 1,506
진천동 코오롱아파트 신축부지내 大邱 辰泉洞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 유 적 위 치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716-6번지 일원

2 . 조 사 기 간 : 2001년 7월 23일 ~ 2001년 10월 20일

3 . 조 사 면 적 : 3,150.6㎡(약 955평)

4 . 조 사 기 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李白圭)

5 . 조사의뢰기관 : 코오롱건설주식회사


Ⅱ. 調査經過

조사는 코오롱건설주식회사에서 추진하는 아파트 건축부지에 대한 발굴조사이다.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는 코오롱건설주식회사로부터 지표조사를 의뢰받아 2000년 12월 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결과 지석묘 상석으로 추정되는 巨大石이 확인되었으며, 지표면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로부터 조선시대 자기 등의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어 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후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1년 1~2월에 걸쳐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이후~고려시대 이전에 해당하는 밭유구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건물지 적심및 집석유구를 확인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Ⅲ. 遺蹟의 立地 및 周邊環境

유적은 대구광역시의 남서쪽에 해당하며 대덕산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진천천변의 충적대지에 해당한다. 대구광역시 지하철 1호선의 종착역인 진천역에서 남서쪽으로 직선거리 약 55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주변에는 공장과 주택이 밀집되어 있다. 조사구역은 섬유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조사착수시 이미 철거된 상태였고, 지표에는 폐기물이 다량 흩어져 산재하고 있었다. 또한 여러군데에 공사를 위한 터파기 작업이 상당부분 이루어진 상태였다.
본 유적은 史蹟 411號 辰泉洞 立石遺蹟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0여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 토층과 주변지형으로 보아 전형적인 선상지 선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선사인이 생활할 수 있는 적합한 입지조건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는 35기 정도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었으나, 그 후 급속한 도시개발로 인해 다수가 유실되거나 매몰되어 현재는 10여기 정도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본 유적 주변에는 진천동 입석유적을 비롯하여 월암동 입석군, 상인동 입석, 진천동 지석묘군, 상인동 지석묘군, 월성동 지석묘군이 알려져 있다. 유적에서 동쪽으로 약 1.5km정도 떨어져 있는 월성동 야산에서는 월성동 주거지와 송현동 주거지가 조사된 바 있다. 또한, 월성동 주거지 서쪽아래 평지에서는 상인동 지석묘가 발굴조사되었다.

Ⅳ. 調査內容

1. 遺構
지금까지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지석묘, 주거지, 석관묘 각 1기, 청동기시대 이후~고려대 이전에 해당하는 밭유구, 고려시대 건물지 1동, 수혈유구 4기, 집석유구 2기, 석곽1기, 석렬유구 10기 등 모두 22기이다. 지석묘는 기저부조사에만 국한된 조사이므로 주체부 조사는 하지 않은 상태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원형주거지로 본 조사범위 내에서 1기만이 확인되었다. 밭유구는 조사구역의 북쪽에 동-서 방향으로 溝와 함께 조성되어 있으나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고려시대 건물지는 조사구역 서쪽 경계부분에서 확인되었고, 부속시설로 보이는 부석군은 경계바깥으로 계속 이어지는 양상이다. 석렬유구는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가. 지석묘
지석묘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장방형의 묘역을 만들고, 그 위에 상석을 놓아 조성하였다. 상석은 크게 4개로 깨어져 있는데, 이중 제일 큰 상석은 부석의 중간부분에 남동방향으로 약 45。 기울어진 상태로 박혀있다. 이 상석의 밑부분과 윗면은 원형 그대로이고, 북동쪽과 남서쪽 옆면이 깨어진 상태인데, 남서쪽이 더 많이 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상석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210cm로 추정되며, 높이는 123cm이다. 나머지 작은 상석편들은 상석의 북서쪽에 붙어 같이 모여 있는 상태로써, 크기는 가로×세로 1m정도이다. 크기로 보아 상석의 남서쪽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상석사이에는 콘크리트가 붙어있고, 근대 쓰레기와 함께 섞여 있어 교란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부석의 규모는 500×640cm의 장방형으로, 장축방향은 N-34。-E이다. 부석의 경계는 45×50cm정도 되는 치석된 편평석을 이용하여 기단을 조성하였다. 기단석이 잔존하고 있는 양상으로 보아 최소한 2단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과 남쪽 기단석은 대체로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동쪽 기단은 근대 섬유공장의 시설물로 인해 거의 대부분 파괴되었고, 서쪽 기단은 중간부분이 상석편들과 근대 쓰레기로 인해 유실된 상태이다. 기단축조는 서쪽 기단석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윗쪽 기단석은 기단 바깥쪽으로 밀려나 기울어져 있는 상태로 남아있으나, 아래쪽은 제자리에 남아있다. 기단의 높이는 20cm 내외로, 2단일 경우 약 40cm정도가 된다. 부석은 대개 30cm내외의 자연석과 할석으로 구성되었다.
동쪽기단을 파괴한 근대 시설물의 범위는 4×2m정도로, 이 시설물로 인해 지석묘의 주체부가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북서, 남동 모서리 부석 아래에서 판석이 확인되는데, 그 성격은 알 수 없다. 부석 사이에서는 무문토기와 격지가 소량 확인되며, 서쪽 기단석 바깥쪽에서 지석 1점이 출토되었다.
남쪽기단 바깥에 또다른 부석군이 확인되는데, 이 부석군의 동쪽과 서쪽부분이 교란되어 있어 지석묘 부석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 부석군 남쪽에 기단석이 일렬로 남아 있는 상태로 보아, 지석묘 부석 남쪽기단에 같은 크기로 ㄷ자 형태로 덧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설의 중앙에는 석곽묘로 추정되는 시설이 남아 있다. 이 석곽묘의 개석은 판석을 5~6매 사용하였는데, 판석은 30×70cm정도이다. 석곽의 장축방향은 N-58。-W이다. 개석은 판석을 2겹으로 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벽석은 평면양상으로 보아 자연석을 이용하여 벽면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석곽의 규모는 200×80cm이다. 석곽의 경계석은 지석묘의 기단석에 비해 크기는 비슷하나,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석곽묘가 조성된 부석까지 포함하면 부석의 전체 규모는 500×815cm이다.

나. 주거지
유적 남쪽에 조성되었고, 북쪽에 있는 지석묘와는 약 23m 정도 떨어져 있다. 황갈색 사질점토층에 조성되었고, 서쪽 벽면이 수혈 4호와 중복되었고, 현대 건물지 담장시설 등에 의해 동쪽과 서쪽 벽면 일부가 파괴되었다. 평면형태는 원형이고, 직경 510cm, 깊이 5cm이다. 내부 퇴적토 토층은 수평퇴적을 보이며, 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비교적 점성이 많은 흙이 퇴적된 것이 관찰된다. 특히 상면 중앙부에서 소량의 소토가 검출되었다. 바닥 중앙부에 모두 8개의 小穴이 확인되는데, 중앙에 직경 58cm, 깊이 10cm의 작업공(?)이 있고, 외곽에 깊이 5cm미만의 주혈(?) 3쌍이 확인되고, 북동쪽에 깊이 37cm로 비교적 깊은 주혈이 확인되었다. 바닥면은 굴광면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생토면보다 더 밝은 황갈색을 띠며 단단하다. 바닥에서 완형으로 확인된 유물은 없고 내부 퇴적토 중에서 무문토기 저부 등이 수습되었다.

다. 밭(田作址)
조사구역 내 북쪽에서 동-서방향에 걸쳐 노출되었다. 출토면은 청동기시대 생활면인 암갈색 사질점토층의 윗층인 황갈색 사질토를 기반층으로 하여 조성되었다. 동쪽은 후대교란으로 인해 유실된 상태이고 서쪽은 범위 바깥으로 계속 이어지는 양상이다. 전체범위는 동서 34m, 남북 10m이다. 고랑과 두둑은 후대 교란으로 인해 많이 변형된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단면 「U」字狀을 보이고 있다. 고랑과 두둑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으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폭이 점차 좁아지고 바닥면 또한 점점 올라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랑의 폭은 22cm, 두둑의 폭은 30cm정도로 서쪽부분만이 정연한 형태를 보이고 있고, 동쪽으로 갈수록 많이 교란된 상태를 보이고 있다.
남쪽 가장자리에는 溝가 조성되어 있는데, 폭이 약 4m이고 바닥에는 작은 溝가 곳곳에 불규칙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유물은 전혀 출토되지 않아 조성시기는 현재로선 알 수 없으나 토층을 참고로 대체로 청동기시대 이후에서 고려시대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라. 건물지
건물지는 砂礫層위에 조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유실되어 적심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건물의 주축방향은 N-12˚-W이다. 건물지의 동쪽으로 약 3.5m정도 떨어져 담장이 남아 있고, 북쪽으로는 약 3m 정도 떨어져 부석군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 부석군과 건물지 사이에서 노지시설이 1기 노출되었는데, 건물지와 관련되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건물지는 정면, 측면 모두 1칸의 방형 건물지로 각각 440cm정도이다. 동북쪽 적심과 바로 근접한 지점에 호(?)1점이 매납되어 있다.
담장은 길이 약10m, 폭 66cm 정도로, 북쪽 일부만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교란된 상태를 보이고 있다. 형태는 양쪽으로 자연석을 놓았고, 내부에는 할석을 채웠다. 노지시설은 소토벽체가 「U」字狀으로 남아 있는데, 폭 46cm, 길이 50cm정도이다. 소토벽체가 끝나는 부분에는 편평석이 각각 1개씩 세워져 있다. 부석군은 동서11m, 남북 7m정도의 범위로 나타나고, 서쪽경계 바깥으로 계속 연장되고 있다. 부석군 내에서 특징적인 것은 확인되지 않는데, 대체로 남쪽부분보다 북쪽부분의 돌들의 규격이 작은 편이다. 또한, 부석군의 가장자리에서부터 한가운데로 오면 점차 낮아지는 양상이다. 부석군의 성격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잔존상태로 보아 축대시설이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 수혈 4호
암갈색 사질점토층에서 노출되었으며, 주거지 1호와 중복되었다. 북서쪽에는 수혈 2호, 3호가 있고, 서쪽으로 1m 떨어진 지점에 집석유구 2호가 위치한다. 암갈색 사질점토층에서 확인된 유구는 평면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장축 596cm, 너비 410cm이다. 장방형 수혈 내 동쪽에 치우쳐 직경 2m가량의 수혈이 확인되며, 깊이는 45cm이다. 내부에는 다량의 토기편과 돌들이 퇴적되어 있는데, 토층으로 보아 유구의 폐기는 회황갈색 점질사질토가 10cm가량 퇴적된 이후에 토기와 돌이 다량 포함된 층이 퇴적되었다. 출토 유물은 다량이나 대부분 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방형 수혈내의 원형수혈은 동쪽으로 치우쳐있는데, 기반층 서쪽에 사력층이 노출되어 있고, 동쪽이 점성이 많은 사질점토가 분포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점토 채취장일 가능성이 있다.

바. 석곽
유적 남서쪽에 있으며, 남쪽으로 7m 떨어져 집석유구 1호가 위치한다. 유구는 평면 장방형의 수혈을 파고 30cm 내외의 천석을 사용하여 벽석을 축조하였는데, 최대 2단 잔존하며, 최하단석은 수혈바닥에 약간 홈을 파고 묻었다. 내부에는 기반토와 유사한 회황갈색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고 벽석뒤에서 도질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유구의 입지가 동시기의 건물지와 인접한 평지이고, 주변 유구의 해발고도를 보아 원래 깊이가 깊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墳墓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판단된다.


2. 出土遺物

진천동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동기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각 시기별 유물이 확인된다. 다만, 유구 대부분이 많이 유실된 상태여서 舊생활면에서의 출토유물이 다수를 차지한다.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는 무문토기 저부와 파수가 남아있는 동체부편 등 소량이 출토되었고, 지석묘 부석 사이에서는 무문토기 저부와 지석이 출토되었다. 밭유구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고려시대 유물로는 건물지, 수혈유구, 집석유구, 석렬유구에서 대부분 출토되었는데, 기와류가 다수이고, 자기편도 소량 확인되었다. 기와는 평기와 암키와가 다수를 차지한다.
막새기와는 3점이 출토되었다. 기와의 문양은 어골문, 집선문, 중호문, 승석문, 세선문, 격자문, 사격자문, 차륜문, 창해파문, 복합문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소성은 대부분 경질이나 연질소성도 일부 수습되었다. 자기는 청자가 주류를 이룬다. 토기류는 도질과 연질이 고루 출토되었고, 기종은 호류가 다수이고, 시루도 소량 출토되었다. 특히, 파수가 여러 점 출토되었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이번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주거지, 석관묘와 고려시대의 건물지, 집석유구, 석렬유구, 수혈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됨으로써 이 지역의 시대별 문화상의 일면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진천동 입석유적 주변에 분포하는 지석묘가 처음으로조사되어 그 구조를 개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됨으로써 향후 진천지구의 선사시대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청동기시대 원형주거지가 이 지역에서도 확인됨으로써 칠곡 동천동유적, 서변동유적, 상동유적과의 비교검토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로 보아 당시 대구분지에서는 원형주거지가 보편적으로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3. 대구지역에 분포하는 고려시대 고고자료의 조사 예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번 조사에서 파악된 건물지의 구조와 부속시설의 양상 및 기와류, 토기류 등의 자료는 고려시대의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적 전경
지석묘 전경
주거지 1호
밭 노출 상태
건물지 전경
수혈 4호
출토 기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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