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達城 汶陽里古墳群 發掘調査Ⅱ 달성 문양리고분군 발굴조사Ⅱ

시대 삼국
성격 분묘
회수 5
개최일자 2001.03
조회수 1,570
지하철2호선 문양차량기지 건설부지 達城 汶陽里古墳群 發掘調査Ⅱ


Ⅰ. 調査槪要

가.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산30번지 일원

나. 조사기간 : 1999. 8. 10.~2001. 4. 1.(예정)

다. 조사범위 : 약 18,000평 (1차 : 12,300평, 2차 : 5,700평)

라.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院長 : 李白圭)

마. 조사의뢰기관 : 대구광역시 지하철건설본부


Ⅱ. 調査經過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산 30번지 일대의 지하철 2호선 문양차량기지 조성사업과 관련하여 우리 연구원에서는 대구광역시 지하철건설본부의 의뢰를 받아 형질변경지역 약 10만평에 대한 지표조사를 1996년에 실시한 바 있다. 지표조사 결과 대규모의 삼국시대 분묘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지표조사 당시에도 능선의 정선부에위치하는 봉토분은 도굴로 인하여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지표조사 결과에 따라 1999년 3월 2일부터 4월 27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약 18,000평 정도의 범위에 분묘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발굴조사는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99년 8월 10일부터 2000년 8월 4일까지 1차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현재까지 2차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대상지역은 기반 암반층의 풍화와 급경사로 인한 자연유실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도굴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지만 봉토분 16기(개별분묘 51기)를 비롯하여 목곽묘 36기, 석곽묘 228기, 옹관묘 14기, 석실묘 4기, 토광묘 1기, 고려조선묘 26기 등 모두 360기가 조사되었다. 이 중 봉토분 12기(개별분묘 42기), 목곽묘 11기, 석곽묘 89기, 옹관묘 2기, 석실묘 2기, 고려조선묘 3기 등 총 152기가 2차조사구역에서 조사되었다.


Ⅲ. 遺蹟의 立地 및 考古學的 環境
문양리고분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산 30번지 일대이며, 북에서 남으로 길게 뻗어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은 해발 30m~75m 이며, 주능선은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휘어져 뻗어 있다. 주능선의 정상부에는 16기의 삼국시대 봉토분이 능선을 따라 조영되어 있고 주변의 경사면에는 삼국시대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석실묘, 고려 및 조선시대 분묘 등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주변으로는 해발 100m 전후의 낮은 구릉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전방인 남쪽으로는 1km 거리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고 낙동강을 따라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펼쳐져 있다. 유적은 낙동강을 경계로하여 남쪽은 고령지역과 접하고 있고, 서쪽은 성주지역과 접하고 있으며 성주지역으로 나가는 주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유적 주변에는 삼국시대 고분유적 및 산성유적이 다수 분포한다. 알려진 유적으로는 문산리고분군(현재 영남문화재연구원,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중) 및 산성, 죽곡리 고분군(대구대 박물관 발굴조사) 및 산성, 봉촌리고분군 등이 3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거리상으로 다소 떨어져 있으나 성산리고분군 및 구라리 성지, 설화리고분군 및 산성, 본리리고분군 등이 낙동강 동안을 따라 분포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건너편에도 노곡리고분군 등 고분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Ⅳ. 調査內容

1. 遺構
가. 목곽묘
1) 220호묘
주능선이 남쪽으로 오면서 점점 낮아지다가 남동쪽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다시 높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220호는 지형이 기복하는 부분의 능선상에 위치하는 M6호분의 봉토하부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목곽묘이다. 장축방향은 N-16°-W 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M6호분의 봉토 끝자락에서 단경호 수 점이 노출되어 있어 유구의 존재를 알 수 있었으며, M6호분의 토층조사에서 봉토의 하부에 유구가 조성되어 있음이 확인되어 M6호분의봉토를 일부 제거하고 묘광을 확인하였다. M6호분의 봉토조성과 후대의 자연유실로 인하여 유구의 상부가 일부 유실된 것으로 판단되며, 서단벽쪽은 심하게 유실되어 유물이 드러나 있었다. 유구의 크기는 묘광 401×121×40cm, 목곽 338×75×40cm 정도이다.
유구는 황갈색 풍화암반층을 굴착하고 묘광을 조성한 다음 목곽을 설치하고 목곽 내부에 시신을 안치하고 유물을 부장하였다. 목곽과 묘광 사이에는 묘광 굴착시 나온 풍화암반편이 포함된 황갈색 사질점토를 충전하였으며, 남단벽과 서장벽의 남쪽 모서리 부분에는 주변의 암반에서 떼어낸 암반할석이 충전토에 일부 포함되어 있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없이 편평한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양단부장하였으며 북단벽쪽에서 단경호 5점이 출토되었고, 남단벽쪽에서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2) 221호묘
2차 조사구역의 정상부 근처에 위치하며, M11호분에 서쪽으로 접해있는 삼국시대 목곽묘이다. 유구의 장축방향은 N-10°-W 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평면형태는 남아있는 묘광의 흔적으로 보아 장방형인 것으로 판단된다.
유구는 213호 석곽에 의해 남단벽쪽이 일부 파괴된 상태이며, M11-C호 석곽의 서장벽이 동장벽쪽 묘광위에 축조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동장벽쪽 상부가 일부 파괴된 것으로판단된다. 유구의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M11-C호 석곽의 서장벽을 일부 해체하고 동장벽쪽 묘광을 확인하였다. 유구의 크기는 묘광 405(추)×146×38cm, 목곽 370(추)×109×38cm 정도이다.
유구는 황갈색 암반층을 굴착하고 묘광을 조성한 다음 목곽을 설치하고 유물을 부장하였으며, 목곽과 묘광 사이에는 묘광 굴착시 나온 암반편이 포함된 갈색 사질점토로 충전하였다. 목곽의 내부에는 풍화암반편을 포함한 황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없이 편평한 암반 바닥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구의 중복으로 남단벽쪽이 유실되어 유물 부장양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며, 북단벽쪽에서 단경호 6점이 출토되었고, 중앙부에서 단경호 2점, 노형기대 1점, 적색연질옹 1점이 출토되었다. 북단벽쪽 출토유물은 안정된 상태로 출토되었으나, 중앙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뒤집어 지거나 넘어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또, 토기가 출토된 위치에서 토층이 급격하게 함몰된 양상이 확인되었다. 이로 보아 중앙부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목곽 상부에 매납하였던 것이 목곽 함몰시 목곽 내부로 떨어진 것이라고 판단된다.

나. 석곽묘
1) 225호
2차조사구역 주능선 정상부의 북쪽 능선상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석곽묘이다. 유구의 남쪽으로 226, 227, 228, 229호 석곽이 밀집해있고, 북쪽으로 M10호분이 위치한다. 장축방향은 N-64°-E 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조사전 동단벽쪽이 일부 유실되었으며, 동단벽을 중심으로 직경 1m 정도의 도굴구덩이가 형성되어 유물이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유구는 풍화암반면을 굴착하고 묘광을 조성하였으며, 유구의 규모는 묘광 379(추)×149×37cm, 석곽 320(잔)×70×51cm 정도이다. 벽석의 축조 상태를 보면, 동단벽은 유실되었고, 서단벽은 또한 교란이 심하여 축조방식은 명확하지 않다. 양 장벽은 주변 암반에서 떼어낸 할석을 평적하였다. 남장벽이 북장벽에 비해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4단 정도 남아있다. 최하단석은 비교적 큰 할석을 사용하였으며, 벽석사이의 공간에는 갈색점토와 천석을 끼워넣었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서단벽쪽은 낮은 부분을 사질점토로 채워서 평평하게 하였다.
유물은 동단벽쪽에서 기대 1점, 고배 1점, 장경호 1점이 출토되었고, 서단벽쪽에서 토기편이 일부 출토되었다. 기대는 엎어진 상태로 출토되었고, 그 아래에서 장경호 1점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기대 위에 장경호가 놓아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2) 226호묘
2차조사구역 주능선상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석곽묘이다. 주변으로 225, 227, 228, 229호 석곽이 밀집해 있다. 장축방향은 N-55°-E 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유구의 동단벽쪽이 일부 유실되었고 나무뿌리로 인하여 석곽 내부가 교란된 상태였다.
유구는 암반면과 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고 묘광을 조성하였으며, 유구의 크기는 묘광 509×190×68cm, 석곽 430(추)×55×82cm 정도이다. 벽석의 축조는 주변의 암반을 떼어낸 할석을 이용하였으며, 동단벽은 유실되었다. 북장벽은 50~60cm 정도의 할석을 1~2단 횡평적한 뒤 보다 작은 할석과 천석으로 평적하였으며, 남장벽의 동쪽 1/3은 작은 천석을 이용하였고, 최상단은 비교적 큰 할석으로 종평적하였다. 서쪽 2/3는 할석을 평적하였고 벽석 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서단벽은 판상할석을 수적한 뒤 할석을 1단 평적하였다. 벽석의 축조순서는 동단벽이 유실되어 원형을 알기 어려우나, 남장벽 1/3 지점에서 시작하여 양쪽으로 쌓아 나가서 북장벽 중앙부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고 편평한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동단벽쪽에서 장경호 1점이 기대위에 올려진 채 출토되었고, 그 외에 장경호 1점, 고배 1점, 철모 1점, 철부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서단벽쪽은 심하게 도굴되었으며 고배대각편과 토기편이 일부 출토되었다.

3) 238호묘
2차조사구역 주능선 정상부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석곽묘이다. 장축방향은 N-82°-E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유구의 북서모서리쪽은 자연 경사면에 의해 일부 유실된 상태이고, 유구 내부에는 갈색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유구는 황갈색풍화암반층을 굴착하고 묘광을 조성하였으며, 바닥면 서쪽부분에 암반이부분적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묘광 조성시 암질이 단단하여 깨어 내기 어려워서 남겨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유구의 크기는 묘광 584×190×94cm, 석곽 415(추)×73×78cm 정도이다. 벽석의 축조 상태를 보면, 서단벽은 대부분 유실되었고, 동단벽은 판석 1매를 세웠다. 남․북장벽은 25~45cm 정도 크기의 할석으로 종평적과 횡평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남장벽은 5단 북장벽은 3단 정도 남아있다. 남장벽은 석곽 내부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바닥에는 아무런 시설 없이 풍화암반 바닥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양단부장하였으며, 서단벽쪽에서 고배 2점, 장경호 2점, 대부장경호 1점, 파수부대부완 1점, 파배 2점, 적색연질발 1점, 단경호 1점 등 토기류와 방추차 1점, 도자 1점이 출토되었고, 동단벽쪽에서 고배 2점, 대부장경호 1점과 기대 1점 위에 장경호 1점이 올려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4) 240호묘
2차조사구역 주능선 정상부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석곽묘이다. 장축방향은 N-83°-W 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유구는 239호의 남장벽쪽 묘광을 파괴하고 묘광을 조성하였으며, 북장벽과 239호의 남장벽이 맞물려 있다. 남장벽쪽 묘광에 일부 중복되어 241호가 위치하는데, 241호의 북장벽이 남장벽쪽 묘광 상면에 축조되었다. 각 유구의 장축방향은 239호와는 서쪽으로 가면서 가까워지는 ‘>’형을 보이고, 241호와는 동쪽으로 가면서 가까워지는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구는 황갈색풍화암반층을 굴착하고 묘광을 조성하였으며, 내부에는 갈색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유구의 크기는 묘광 510×219×115cm, 석곽 410(추)×80×83cm 정도이다. 벽석의 축조상태를 보면, 서단벽은 유실되어 남아있지 않으며, 동단벽은 판석 1매를 입수적하고 그 위에 할석을 1단 종평적하였다. 남장벽은 최하단에 50~60cm 정도의 할석을 주로 횡평적하고 일부 종평적한 후 7단 정도 종평적과 횡평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북장벽은 5단 정도 남아 있으며, 북동 모서리쪽이 도굴로 인하여 심하게 파괴되었다. 북장벽은 25~60cm 정도의 할석을 이용하여 종평적과 횡평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바닥에는 아무런 시설을 하지않은 암반 바닥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동단벽쪽은 바닥면 보다 깊게 도굴구덩이가 파여져 있다.
유물은 양단부장 한 것으로 판단된다. 서단벽쪽에서 고배 3점, 파배 1점, 적색연질파수부배 1점, 장경호 2점, 단경호 1점, 발형기대 1점, 방추차 1점이 출토되었으며, 발형기대에는 장경호가 올려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동단벽쪽은 심하게 도굴되어 토기편들 몇 점만이 남아 있었다.
5) 242호묘
2차조사구역 주능선 정상부의 북쪽 경사면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석곽묘이다. 장축방향은 N-87°-E 로서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243호 석곽묘와 중복되어 남장벽쪽 묘광이 일부 파괴되었다. 243호와는 장축방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벌어지는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유구는 황갈색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묘광을 조성하고 석곽을 축조하였으며, 내부에는 갈색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유구의 크기는 묘광 460×175×66cm, 석곽 408×69×81cm 정도이다. 벽석의 축조는, 동단벽의 경우 판석 1매를 수적하였으며, 서단벽은 벽석이 유실되었으나 바닥에 판석을 끼우기 위한 홈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서단벽도 판석 1매를 세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 양 장벽은 최하단 1단을 30~60cm 정도의 할석을 횡평적한 후 그 위로 25~70cm 정도의 할석으로 종평적과 횡평적을 혼용하여 5단정도 쌓았다. 양 장벽 모두 서쪽부분이 심하게 유실되어 1~2단 정도만이 남아있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 없이 편평한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유물은 양단부장 하였으며, 서단벽쪽에는 주로 토기류를 매납하였고 서단벽쪽에는 철기류를 주로 매납하였다. 서단벽쪽에서 유개고배 4점, 대부완 1점, 파배 1점, 단경호 2점, 적색연질발 1점, 지석 1점, 철부 1점, 철겸 1점, 철모 1점, 착형철기 1점, 철촉군 등이 출토되었고, 동단벽쪽에서 유자이기 1점, 판상철모 4점, 철착 1점 이 출토되었다.
6) 282호묘
2차조사구역 남쪽 경계부에 위치하며, 281호 석곽묘에서 남쪽으로 15㎝정도 떨어져있다. 장축방향이 N-68°-E인 삼국시대 석곽묘로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다.
묘광은 회황갈색 사질점토층을 파고 만들었으며, 유구의 크기는 묘광 370(추)×129×59cm, 석곽 305(잔)×62×59cm 정도이다. 묘광의 내부에는 황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교란으로 인하여 묘광의 동단벽과 남장벽 일부가 파괴되었다. 벽축조상태를 살펴보면, 동단벽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서단벽은 85×58×6㎝정도 크기의 판석 1매를 수직으로 세웠다. 남.북장벽은 30~70㎝정도 크기의 청석 및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3~5단 정도만 남아있다. 특히 북장벽 일부분 및 남장벽이 묘의 내부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벽석은 주로 종평적 하였으며, 부분적으로 횡평적을 실시했다. 바닥에는 20㎝ 정도의 할석들을 이용해서 1단으로 시상을 설치했는데, 전면적으로 설치하지 않고 45㎝정도의 간격을 두고서 설치했다.
유물은 양단부장 하였다.
서단벽쪽에서 유개고배 1점, 대부장경호 1점, 적갈색연질발 1점, 대부완 1점, 무투창고배 대각편 1점, 고배개 1점이 출토되었으며, 동단벽쪽에서는 토기편들이 일부 출토되었으나 모두 교란된 상태였다.
7) 283호묘
282호 석곽묘에서 남쪽으로 약 1m정도 떨어져서 위치한다. 장축방향이 N-58°-E인 삼국시대 석곽묘로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후대의 파괴로 인하여 묘광의 동단벽 및 남장벽쪽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묘광은 회황갈색 사질점토층을 파고 만들었으며, 유구의 크기는 묘광 385(잔)×124×39㎝, 석곽 330(잔)×62×38㎝ 정도이다. 내부에는 황갈색 사질점토와 암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동단벽쪽의 유물들은 교란으로 인하여 노출되어 있었다. 벽축조상태를 살펴보면, 동단벽은 완전히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았으며, 서단벽은 50×33×4㎝인 1매의 판석이 세워져 있으며, 판석의 일부는 깨어져 없어졌다. 남장벽은 20㎝정도의 할석을 이용하여 평적하였으나 현재는 대부분 파괴되어 없어졌으며, 3~4매의 할석만 남아있다. 북장벽은 2단정도 남아있으며 20~30㎝정도의 할석을 이용하였다. 북장벽은 대부분 내부쪽으로 조금씩 밀려들어왔으며, 최하단은 종평적하였으며, 2단부터는 종,횡평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바닥에는 20㎝미만의 할석을 이용하여 시상을 설치했으며, 길이는 160㎝~165㎝, 너비 55㎝ 정도이다.
유물은 양단부장 하였다. 동단벽은 모두 교란되어 고배편 1점만 출토되었으며, 서단벽쪽에서는 대부완 2점, 단경호 2점, 고배 1점, 유개고배 1점, 연질발 1점, 파배 1점, 북장벽 직하 중앙부에서는 철촉군(3개체 이상)과 철겸편이 출토되었다.

다. 봉토분
1) M5호분
M5호분은 해발 53m정도에 위치하며, 1차 조사구역과 2차 조사구역의 경계부에 위치한다. 5호분의 북쪽은 계곡부로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6m정도 떨어져서 문양리 마을 주민들이 언덕을 넘으면서 만들어놓은 ꡒ성황당ꡓ돌탑지가 지금은 무너진 채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 약 10m정도 떨어져서 M6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5호분의 크기는 동-서 875cm, 남-북 835cm, 봉토높이 45cm 정도이며, 조사결과 중심부에 주매장주체부 2기(M5-A호․M5-B호)와 주변으로 배장된 소형석곽묘 1기(M5-D호), 석곽옹관묘 3기(M5-C호․M5-E호․M5-F호) 등으로 이루어진 봉토분이다. 조사당시 봉토분의 상부에는 크기 67cm 정도의 도굴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봉토의 서쪽 가장자리 부근에서도 전신주 보조기둥을 설치한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5호분은 주매장주체부를 남-북으로 평행하게 설치하였으며, 주변에 위치하는 두 묘를 중심으로 남쪽과 동쪽으로 4기의 소형묘들을 弧狀으로 설치했다. 두 기의 주매장주체부는봉토하 27㎝ 정도에서 확인되었으며, 거리는 100㎝정도 떨어져 있다. 봉토단면을 조사한 결과 선축된 M5-A호 묘가 평탄한 남쪽면에 설치되었으며, 후축된 M5-B호 묘가 경사면인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외곽으로 설치된 4기의 소형묘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M5-C호묘의 남장벽과 M5-D호묘의 북장벽, 그리고 M5-E호묘의 남장벽, M5-F호묘의 북장벽이 호상으로 일치하는 현상처럼 나타나며, 이는 마치 M5호분 전체에 대한 호석의 역할 또는 경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①M5-A호묘
주매장주체부 가운데 남쪽에 위치하며, 북쪽편에 위치하는 M5-B호묘와는 100㎝정도 떨어져서 나란하게 설치되었다. 장축방향이 N-62°-W인 삼국시대 석곽묘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묘광은 무덤을 만들기위하여 정지한 암갈색사질점토층과 청석암반층을 파고 만들었으며, 유구의 크기는 묘광 619×199×96㎝, 석곽 407×55×125㎝ 정도이다. 석곽 내부에는 황색사질점토, 청석편이 다량 포함된 암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벽석재로 사용되었던 다수의 할석들과 개석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점판암계 판석 1매도 석곽내부에 떨어져 있었다. 조사결과 이 묘는 도굴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북장벽의 일부가 심하게 석곽 내부로 함몰되어 있었다. 상부에서 확인된 개석재는 서단벽에서 동쪽으로 95㎝정도 떨어져서 노출되었으며, 크기는 75×75×10㎝ 정도로서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벽석의 축조상태를 살펴보면, 동,서단벽은 판석을 수직으로 세운 뒤 상면에는 20㎝~35㎝정도인 할석을 2~3단정도 횡평적하였다. 그리고 벽석과 벽석사이의 빈 공간에는 10㎝-20㎝정도의 할석 및 청석편을 끼워넣어 보강하였으며, 묘광과 벽석 사이에도 벽석과 동일한 크기의 할석들을 청석편이 다량 포함된 암갈색 사질점토와 함께 채워넣었다. 한편 동단벽쪽에서는 묘광선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봉토의 축조와 동시에 동단벽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장벽은 크기가 20㎝~40㎝정도의 할석을 이용해서 남장벽에는 6~8단, 북장벽에는 5~7단의 벽석을 횡,종평적을 혼용해서 축조하였다. 남장벽은 축조당시처럼 거의 수직으로 벽석이 세워져 있었으며, 일부의 벽석은 85㎝정도로 긴 할석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북장벽은 전술하였듯이 중앙부 일부가 석곽 내부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함몰되어 있었으며, 이들을 모두 제거하자 남아있는 벽석은 최하단석만 남았다. 이들 양장벽의 경우도 벽석과 벽석 사이의 빈 공간에는 소형 할석을 끼워넣어 충전하였다.
특히 장벽의 최하단석은 대부분 종평적하여 축조하였다.
바닥면의 중앙에는 시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양단벽쪽은 생토바닥면을 그대로 이용했다. 동단벽쪽의 유물부장공간의 크기는 85㎝, 시상의 크기는 205㎝×75㎝, 서단벽쪽의 유물부장공간의 크기는 115㎝ 정도이다. 시상석은 대개 10㎝~30㎝ 정도의 청석판석을 1겹으로 깔았으며, 양장벽과는 서로 맞닿게 설치했다. 시상의 동쪽 가장자리 쪽에서 피장자의 두개골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침향은 동향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시상석이 석곽이 중앙부에만 설치된점과 출토유물의 배치상태가 벽석들과 맞닿아 있는 점으로 보아 석곽 내부에는 목관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상부에서 1점의 개석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석곽 상부에는 개석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상석의 동쪽에서 두개골 및 치아가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동,서 양단벽쪽에서 출토되었다. 동단벽 쪽에서는 모두 9점의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발형기대 2점, 원저장경호 2점, 2단투창 유개고배 4점, 적갈색연질발 1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남장벽에 붙어서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서단벽 쪽에서는 대호 1점, 단경호 4점, 대부장경호 2점, 2단투창 유개고배 3점, 1단투창 유개고배 5점, 단조철부 1점, 유자이기 2점, 철촉 1점, 철모 1점이, 그리고 북장벽 쪽에서 도자 1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동단벽쪽의 발형기대 2점의 위에는 원저장경호가 각각 1점씩 얹혀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②M5-B호묘
M5-B호묘는 M5-A호묘와 더불어 M5호분의 주매장주체시설의 하나이며, M5호분의 북쪽 경사면에 등고선과 나란하게 설치되었다. 장축방향이 N-58°-W인 삼국시대 석곽묘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묘광은 무덤을 축조하기 위하여 정지한 암갈색사질점토층을 파고 만들었으며, 유구의 크기는 묘광 572×229×107㎝, 석곽 387×60×126㎝ 정도이다. 석곽 내부에는 청석암반편이 다량 포함된 흑갈색 사질점토와 황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경사면의 상부쪽인 남장벽석으로 추정되는 할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피장자의 발치쪽으로 추정되는 서단벽쪽에서는 황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는데, 석곽의 상면에서는 내부쪽으로 약 150㎝정도의 범위에서 확인되었으며,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그 범위가 축소되어 벽석의 2단 정도에서는 그 범위가 70㎝정도로 축소되었다. 한편, 이 흙이 분포하는 석곽의 서쪽부분에서는 바닥면 가까이에서도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교란과 관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벽석의 축조방법을 살펴보면, 동.서 단벽의 경우는 먼저 45㎝~70㎝정도의 화강암판석을 와수적한 뒤 그 상면에 30㎝~40㎝정도의 할석을 3단정도 평적하였으나 서단벽의 경우는 교란으로 인하여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남.북장벽은 크기가 20㎝~60㎝ 정도의 할석을 사용해서 4~7단 정도 횡.종평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벽석의 축조순서는 단벽과 장벽의 축조상태를 통하여 볼 때 양단벽의 화강암 판석을 먼저 수적한 뒤 양장벽의 벽석을 평적하였다. 그러나 장벽의 경우 4단 이상의 상부에서는 일부 그 순서가 바뀌어서 장벽을 먼저 축조한 뒤 단벽의 할석을 평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벽석과 벽석사이의 빈 공간에는 20㎝~25㎝, 묘광과 석곽사이에는 20㎝~70㎝ 크기의 할석을 채워넣었다. 한편, 남장벽은 경사면의 상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토압에 의해서 석곽 내부쪽으로 경사져 있었으며, 경사면의 아래쪽인 북장벽은 바깥쪽으로 경사져 있었다. 바닥면에는 양단벽쪽의 유물부장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시상을 설치하였는데, 시상의 크기는 길이 210×75㎝ 정도이며, 편평한 할석 및 암반편을 이용하여 1단으로 설치했다. 사용된 시상석들의 크기는 대체로 15㎝~25㎝, 두께 5㎝ 내외이다. 유물부장공간은 동쪽편이 95㎝, 서쪽편이 90㎝ 정도이고, 바닥면은 풍화암반층을 그대로 이용했다.
묘광의 바깥쪽인 남동장벽쪽과 동단벽쪽에는 1단으로 이루어진 호석열이 설치되어 있는데, 남장벽쪽의 호석열과 묘광과의 거리는 약 110㎝, 동단벽쪽에서는 20㎝~50㎝정도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어서 묘광을 포함한 석열의 전체 평면형태를 복원해보면 동-서 600㎝~660㎝, 남-북 440㎝~460㎝ 정도의 타원형이다. 호석으로 사용된 석재들은 크기 20㎝~40㎝ 정도의 청석암반편들로서 특별히 가공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양단부장 하였다. 동단벽쪽에서 대부장경호 3점, 소형파배 1점, 적갈색연질발 1점, 고배 4점(추정), 단경호 2점, 유자이기 1점이 출토되었으며, 중앙부에서도 단경호편이 1점 출토되었다. 북단벽쪽에서는 상부에서 확인된 황색사질점토인 교란토에 의하여 대부분의 유물이 없어진 상태이며, 고배대각편으로 추정되는 대각편 3점과 유자이기로 추정되는 철기 2점만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시상석의 동쪽편에서 세환이식 1쌍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피장자의 침향은 동쪽으로 추정된다.
③M5-C호묘
M5호분의 매장주체부인 M5-A.B호의 남쪽에 등고선과 평행하게 위치하며, 동쪽으로 약 30㎝정도 떨어져서 석곽묘인 M5-D호묘가 확인되었다. 장축방향이 N-76°-W인 삼국시대 석곽옹관묘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묘광은 암반면 및 M5-A호와 동일한 층에서 파내려간 것으로 추정되며, 유구의 크기는 묘광 122(잔)×63×23㎝, 석곽 83(잔)×29×25cm 정도이다. 묘광의 내부에는 암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옹관의 상면은 후대의 파괴로 인하여 대부분 깨어져 있었다. 벽석으로 사용된 석재들은 모두 주변지역에서 떼어낸 암반편들로서 크기는 대체로 15㎝~27㎝ 정도이며, 남.북장벽 쪽에서만 각각 1단씩 남아있었다.
옹관의 현길이는 80㎝ 정도이며, 모두 3개의 옹을 합구시킨 3옹식으로서, 동쪽에 위치하는 3번옹은 연질옹의 구연부로서 막음시설을 위하여 구연부의 ½정도를 깨트린 다음 수직으로 세워놓았다.
출토된 유물은 옹관으로 사용된 연질옹편, 연질발 1점, 원형투공구슬 2점, 철촉 1점 등이다. 남쪽편에서 출토된 원형투공구슬은 3번옹 보다 2㎝정도 더 높은곳에서 출토되었으며, 철촉은 촉신이 동쪽을 향해서 출토되었다.
④M5-D호묘
M5호분의 매장주체시설인 M5-A호의 남쪽에 위치하며, 서쪽에 80㎝정도 떨어져서 M5-C호묘가 확인되었다. 장축방향이 N-82°-W인 삼국시대 석곽묘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묘광은 청석암반면을 파고 만들었으며, 석곽의 크기는 159×34×42㎝ 정도이다. 묘광의내부에는 암갈색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벽석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네 벽석은 4~5단 정도 쌓여있었으며, 양장벽은 내부로 약간 경사져있었다. 벽석으로 사용된 석재들은 모두 주변에서 떼어낸 암반편으로서, 석재들의 크기는 대개 20㎝~50㎝ 정도이며, 종.횡평적을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유물은 동.서단벽쪽에서 출토되었다. 동단벽 쪽에서는 대부장경호 2점, 무투창 고배 1점, 무투창 유개고배 2점, 대부완 1점, 고배개 1점, 방추차 1점이, 서단벽 쪽에서는 유개고배 1점, 대부장경호 1점, 연질발 1점이 출토되었다.
⑤M5-E호묘
M5호분의 주매장주체시설인 M5-A호의 동쪽에 위치하며, 북동쪽 50㎝정도 떨어져서 M5-F호가 확인되었다. 장축방향이 N-40°-E인 삼국시대 석곽옹관묘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묘광의 서쪽은 M5호분의 봉토인 암갈색사질점토층을, 나머지는 청석암반면을 일부 파고 만들었다. 유구의 크기는 묘광 140×75×33㎝, 석곽 124×31×33㎝ 정도이다. 묘광의 내부에는 암갈색의 부드러운 사질점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옹관으로 사용된 옹②는 상부가 대부분 깨어져 있었다. 석곽으로 사용된 석재들은 점판암계 할석으로서 크기는 대개 20~50㎝ 정도이며, 1단-2단으로 축조하였다. 특히 서장벽쪽의 트랜치 조사결과 M5-E호는 M5호분의 봉토를 파고 축조한 것이 확인되었다. 옹관과 벽석사이의 빈공간에는 크기가 15㎝정도인 청석암반편을 수직 또는 수평으로 채워넣어서 옹관을 고정시켰다.
옹관의 길이는 95㎝, 너비 27㎝ 정도이며, 2개의 옹을 합구시킨 형식으로서, 옹①은 조사당시 상면일부가 파괴된 상태였으며, 크기는 길이 48㎝ 정도이며, 옹②는 상면의 대부분이 유구상부의 파괴로 인하여 결실된 상태였다. 그리고 옹①의 구연부 주변에는 깨트린 옹편을 이용하여 일부 보강하였으며, 옹①과 옹②와 관계된 옹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옹관의 외곽에서 대부장경호의 대각편으로 추정되는 토기편 1점, 철촉 2점, 광구소호(?) 1점등이 출토되었다. 철촉은 슴배부분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2점모두 옹관의 외부에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⑥M5-F호묘
M5호분의 매장주체부인 M5-B호묘의 동쪽부분 호석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동쪽으로 약 50㎝정도 떨어져 있으며, 남서쪽으로 50㎝정도 떨어져서 5-E호묘가 확인되었다. 장축방향이 N-44°-E인 삼국시대 석곽옹관묘로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묘광은 암반면 및 M5-B호와 동일한 층에서 파내려간 것으로 추정되며, 석곽의 크기는 99×37×54㎝ 정도이다. 묘광의 내부에는 암갈색 사질점토 및 벽석으로 사용되었던 무너진 할석들이 덮여있었으며, 옹관의 상면은 후대의 파괴로 인하여 대부분 깨어져 있었다.
석곽으로 사용된 석재들은 점판암계 할석편과 주변에서 떼어낸 암반편으로서 크기는 대개 15㎝~35㎝ 정도이며, 동쪽벽은 1단, 서쪽벽은 최소 2단 이상이다.
옹관의 길이는 76㎝, 너비 22㎝ 정도이며, 2개의 옹을 합구시킨 형식으로서, 북쪽의 ①번옹은 동체부의 절반 이상을 파괴시킨 뒤 옹의 아랫부분만을 사용하여 막음옹으로 사용하였으며, 동쪽의 바깓부분에는 옹의 구연부편을 깨뜨려서 보강하였다. 그리고 ②번옹은 길이 57㎝ 정도이며, 설치당시 옹관의 상면쪽을 파손시킨 뒤 시신을 안치시킨 것으로 추정되는데, ①번옹의 직경보다 ②번옹의 구연부 직경이 더 넓기 때문이다.
유물은 옹관 이외에는 출토되지 않았다.
3) M13호분
M13호분은 2차조사구역 주 능선의 동남사면에 위치한다. M13호분의 북쪽 약3m 상단에는 M14호분이, 북서쪽 약 3m 상단에는 M12호분이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조사전 봉토의 규모는 장축 770㎝, 단축 520㎝, 높이는 현 지표에서 약 50㎝ 정도로 전체적인 형태는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다.
봉분은 조사전 이미 여러곳에 도굴에 의해 원상이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는데, 봉토의 중앙부에서 북쪽으로는 동서 약 4m, 남북 약 3m 정도의 도굴구가 봉토와 유구의 상당부분을 파괴하였으며, 남쪽으로는 지름 약 1m 내외의 도굴구가 3곳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도굴된 구덩이를 정리하자 2기의 석곽 벽석이 노출되었는데, 2기 모두 유구 바닥까지 심하게 교란된 상태였다.
봉토조사는 봉토의 정선부에 유구의 장축방향을 고려하여 임의의 기준점을 설치한 후 폭 40㎝의 동-서, 남-북 방향의 둑을 구획하였다. 분구의 구획은 토층파악이 용이한 ‘ㄱ자둑 사분법’을 사용하였으며, 수평제토를 기본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 봉토를 10㎝ 정도 제토하자 동-서둑을 중심으로 북쪽 상단부에서 적석군이 노출되었다. 따라서 먼저 적석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적석은 봉토의 북쪽에 위치한 M13-B호묘의 북쪽 상단에 호상의 형태로 집중되어 노출되었다. 적석은 10~20㎝ 내외의 암반할석을 사용하였는데,B호묘의 북쪽 240㎝ 상단, 적석이 끝나는 지점에는 30㎝ 내외의 할석이 호상의 형태로 위치하고 있는데, 이 할석열은 적석의 범위를 표시하는 경계석열로 보여진다.
봉토의 토층은 크게 2층으로 구분된다. 상층은 청석암반편이 다량 포함된 황갈색의 사질토로 입자의 구성이 약해 쉽게 부서지며, 하층은 갈색의 소토성 사질점토층으로 매우 단단한 층위를 이루고 있다.
단면상 확인되는 봉토는 기반층인 풍화암반면을 경사면 상단에서 하단으로 ‘ㄴ’자상으로 굴착한 후 그 위에 갈색의 사질점토를 채운후 석곽을 조성하기 위해 묘광을 파고 다시봉토를 쌓은 형태이나, 유구의 선후관계는 봉토의 심한 교란과 유실로 인하여 파악하기는 어렵다.
봉토의 북쪽 상부에는 호상의 주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주구는 지면의 삭평에 의해 일부만 잔존한다. 주구는 풍화암반을 굴착하여 조성한 것으로 내부에는 갈색사질점토로 채워져 있다. 주구의 내부에는 호편이 깨어진 채 출토되었다.
주구와 봉토의 적석부 사이에는 20㎝ 내외의 할석 일부가 호상의 형태로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유구의 호석으로 보여진다.
①M13-A호묘
M13호분의 남쪽하단에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위치한다. A호의 북쪽 상부에는 M13-B호 석곽묘가 위치한다. 유구는 장축방향이 N-81°-W인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묘이다. 석곽의 크기는 420×66×61㎝ 정도이고, 조사전 동서단벽쪽과 유구의 중앙부에 지름 약 1m 가량의 도굴구에 의해 파괴된 상태였으며, 지면의 삭평과 토압 등에 의해 유구의 상부는 대부분 유실된 상태였다.
유구는 원 지반인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조성한 것으로 유구의 내부에는 황갈색의 사질점토를 채웠다. A호는 적석된 봉토의 내부에 위치한 석곽으로 유구의 상부에 적석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는 북장벽 상단부에만 적석이 잔존한다.
북장벽은 현재 1~2단 정도만 잔존하는데, 북장벽의 상부는 황갈색 사질점토와 적석이 혼재되어 쌓여져 있으며, 토압에 의해 벽석의 대부분이 유구의 내부로 함몰된 상태였으며, 잔존하는 벽석 역시 대부분이 유구 내부로 내경된 상태이다. 북장벽에 비해 남장벽은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도굴에 의해 파괴된 벽석을 제외하면 약 5단 정도 잔존한다. 잔존하는 벽석의 축조상태를 보면, 벽석의 최하단석은 30㎝ 내외의 할석을 주로 횡평적한 후 상단석은 15~30㎝ 내외의 할석을 종횡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양 단벽은 도굴에 의해 모두 파괴, 유실되어 원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동단벽쪽에는 벽석을 세웠던 벽석홈이 일부 관찰된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 없이 암반면을 그대로 바닥으로 사용하였다.
유물은 양단부장형식이나 서단벽은 심하게 도굴되어 조사시 토기편이 다량 수습되었으나 원상을 갖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동단벽은 비교적 유물이 원상을 갖추고 있었는데, 고배, 유개고배, 대부장경호, 단경호 등 토기류 10점이 출토되었고, 유구 바닥의 전면에서 철부, 철도, 유자이기, 판상철모(?) 등 철기류 11점 등이 출토되었다.
②M13-B호묘
M13호분의 봉토내 북쪽 상단에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위치하는 유구이다. 유구의 남쪽 약 1m 하단에는 M13-A호 석곽묘가 위치한다. 유구는 장축방향이 N-83°-W인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묘이다. 조사전 유구는 전면에 걸친 심한 도굴에 의해 내부가 완전히 교란된 상태였다. 석곽의 크기는 360(잔)×50×55㎝정도이다.
B호묘는 기반층인 풍화암반을 굴착하여 묘광을 조성한 후 석곽을 축조한 형태로, 묘광인 암반층 위에 다시 황갈색 사질점토와 암반할석을 사용하여 적석한 형태이다. 유구의 전면에 걸친 도굴에 의해 유구 상부에 적석이 이루어 졌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잔존하는 적석이 벽석의 상단면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구의 전면에 적석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벽석은 도굴에 의한 파괴와 적석의 토압 등에 의해 대부분 유실되거나 내부로 함몰된 상태로, 북장벽은 바닥석만 잔존하며, 남장벽은 1~4단 정도 잔존한다. 잔존하는 벽석의 축조상태를 보면 최하단석은 30~50㎝ 내외의 할석을 횡평적한 후 상단석은 20㎝ 내외의 암반할석과 소할석을 종횡혼용하여 쌓았다. 단벽의 경우 동단벽은 도굴에 의해 파괴되어 원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서단벽의 경우 지름 30㎝ 내외의 암반할석과 황갈색 사질점토를 혼재하여 막쌓은 형태로, 유구의 바닥에서 약 50㎝ 높이로 잔존한다. 바닥은 풍화암반 바닥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내부의 중앙부와 동단벽쪽으로 2매의 할석을 장축방향과 직교되게 1열로 배치하여 놓았는데, 관대시설로 생각된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어 잔존하는 유물은 거의 없다. 동단벽쪽에서 고배편이 일부 수습되었으며, 양 단벽쪽에서 유자이기, 도자, 철촉 등 철기류 3점 등이 출토되었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문양리고분군 발굴조사에서는 중․소형 봉토분 16기를 포함하여 모두 360기의 삼국시대 분묘가 대규모로 군집하고 있음이 조사되었으며, 토기를 비롯한 다량의 유물도 함께 출토됨으로써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문양리고분군의 존재를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주변지역에 분포하는 문산리고분군, 죽곡리고분군과 더불어 주변의 성주와 칠곡지역의 고분군과 비교 연구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앞으로 낙동강 중류역에 분포하는 신라고분문화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2. 문양리고분군의 목곽묘 조사를 통해 이 유적의 조영은 4C 전반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으로 보이며, 석실묘와 토기자료의 분석에 의해 유적의 조영이 완료되는 시기는 6C 말~7C 전반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이 유적에서 석곽묘의 출현은 4C 말~5C 초로 보인다.

3. 봉토분은 주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1~2열로 배치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유적의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며 조성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으며, 그리고 경사면에도 다수의 봉토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봉토가 대부분 유실되어 뚜렷이 밝힐 수가 없었다.

4. 봉토분의 기본배치는 대형의 매장주체부(석곽) 1~3기를 나란하게 설치하였으며, 일부 봉토분(3, 6, 7, 11, 16호분)의 경우는 주변으로 돌아가면서 소형석곽 및 옹관을 1~6기정도 배장시켰다. 이 때 배장된 분묘들은 대형의 매장주체부보다 나중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단일 묘역 내에서는 경사면의 하단에 위치하는 분묘가 먼저 축조되었음이 밝혀졌다.

5. 문양리고분군의 봉토분 크기는 6m~12m 정도의 중․소형분으로서 인접해 있는 문산리고분군의 대형봉토분(직경 20m 정도)에 비해 규모상 열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 유적을 조영한 집단은 문산리고분군 집단보다는 하위에 해당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6. 문양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류들은 낙동강 중류역의 신라토기문화를 연구하는데 일조를 할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목곽묘 단계와 석곽묘 초기 단계의 자료는 낙동강
중류역의 문화변동연구와 자료 공백의 보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220호 전경
221호 전경
225 - 229호 전경
238 -240호 전경
M5-A호 전경
M5-A호 유물 세부
M13호 전경
M15호 전경
15호 유물 세부
221호 출토유물
M1호 출토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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