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州 九於里古墳群 發掘調査 경주 구어리고분군 발굴조사

시대 삼국
성격 고분,요지
회수 14
개최일자 1998.07
조회수 1,746
慶州 九於里古墳群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가. 遺蹟位置 : 慶尙北道 慶州市 外東邑 九於里 556-1․8番地 一帶

나. 調査期間 : 1998. 4. 24.~ 1998. 8.22

다. 調査範圍 : 約 1,200여坪

라. 調査機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 (院長 : 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 최현준(慶尙北道 慶州市 外東邑 毛火里 165-2番地)


Ⅱ. 調査經過

慶州 九於里遺蹟에 대한 조사는 경주시 외동읍 구어리 556-1번지와 556-8번지 일대에 단독주택을 건축하기 위해 부지 조성공사를 하면서 封土墳 1基와 주변의 木槨墓 및 三國時代 古墳 다수가 파괴되어 경주시 문화과의 유적보호조치 및 긴급수습발굴계획에 의해 본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긴급조사를 실시하게 된 유적이다.
유적은 慶州遺蹟地圖(P143,東部地域60)에 표기된 구어리고분군 1에 해당하며 발굴조사는 단독주택 신축예정지인 구릉말단부분의 약 1,200여평에 실시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삼국시대 古墳 40여기 및 기와窯址 2기이다.


Ⅲ. 調査內容

1. 遺構
慶州 九於里 遺蹟에는 木槨墓, 積石木槨墓, 甕棺墓, 石槨墓, 橫穴式石室 등의 다양한 墳墓遺構와 함께 기와窯址 2기를 포함해 총 42基의 遺構가 확인되었으며 墳墓遺構는 木槨墓 24基, 積石木槨墓 12基, 橫穴式石室 3基, 甕棺墓 1基가 확인되어 조사중에 있다.

가. 木槨墓

경주 구어리 유적의 목곽묘는 총 24기 확인되었는데 시기적으로 4세기대가 중심연대이다. 목곽묘는 평면형태에 따라 小形 長方形木槨墓, 大形 長方形木槨墓, 主副槨式木槨墓로
나눌 수 있으며 특히 대형 주부곽식목곽묘는 경주지역의 전형적인 목곽묘 및 細長方形의同穴 主副槨式木槨墓와 다른 異穴主副槨式木槨墓란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이혈이지만 墓壙이 매우 細長한 형태라는 점(3호 목곽묘)과 묘광은 釜山, 金海지역과 별 차이는 없지만목곽이 매우 세장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慶州式 목곽묘의 요소도 어느정도 포함하고있는 듯하다.

1) 1號 木槨墓
조사구역의 구릉 정상에서 약간 북쪽 사면쪽에 치우쳐 위치한 主副槨式木槨墓로서 목곽
의 상부의 대부분과 부곽의 동쪽 단축부분은 부지조성공사 도중 포크레인에 의해 파괴된
상태이며 잔존깊이 35㎝정도이다.

가) 主槨
주곽의 주축방향은 N-84˚-E이고 등고선방향과 평행하다. 유구의 축조는 624(길이)×340
(너비)×20㎝(깊이) 규모의 묘광을 판 후 목곽이 설치될 부분을 길이 525(길이)×190(너비)
×30㎝(깊이)로 다시 파 내려가서 전체적으로 보면 목곽이 설치될 부분은 더 깊은 계단상
의 二重墓壙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내부에는 525(길이)×190(너비)×30㎝(깊이)의 木槨을
설치하고 목곽과 묘광사이에는 암반부스러기가 다수 혼입된 황갈색사질토로 충진하였다.
바닥부분은 被葬者의 주위에 천석을 이용하여 1~2단 정도 높게 쌓아 전체적인 횡단면 형
태가 ‘┗┚ ’자상이 되도록 하였다
遺物의 副葬은 출토위치를 기준으로 하여 피장자 주위(석열내부), 槨內유물, 목곽상부
(추정봉토내)유물로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피장자 주위에는 屍身을 안치하
기 위해 鑄造鐵斧를 한 벌 깔고 그 위에 다시 목곽의 주축방향과 동일하게 鐵鉾를 한 벌 깔
았다. 그리고 내부에는 동북모서리 부분에 筒形器臺 1점과 圓低壼 1점을 매납하였고 가장
자리에는 鐵鉾와 大刀등의 武具類를 매납하였다. 목곽 상부에는 大壼片들과 함께 圓低壼
2점, 長胴形甕 1점이 매납되었고 목곽의 가장자리를 따라 鐵鉾와 鐵斧 등의 철기류가 출토
되고 있다. 鐵鉾는 주로 板狀鐵鉾이며 刺가 있는 철모도 일부 있으며 철부는 鍛造鐵斧이
다.

2) 副槨
주곽의 서쪽에 거의 일직선상에 위치하며 주축방향은 N-76˚-E로 주곽과 8˚정도 차이가
난다. 유구의 축조는 325(길이)×272(너비)×25㎝(깊이) 규모의 방형의 묘광을 판 후 내부
에는 270(길이)×160(너비)×25㎝(높이)의 목곽을 설치하고 목곽과 묘광사이에는 주곽과
유사한 암반부스러기가 혼입된 황갈색사질토로 충진하였다.
출토유물은 槨의 북서 모서리부분에는 瓦質과 古式陶質의 圓底短頸壼 5점과, 북동모서
리부분에 有蓋臺附壼 1점, 瓦質과 古式陶質의 短頸壼 6점, 瓦質長胴甕 2점을 매납하였다.
그리고 남쪽 중앙에는 판갑편(?) 및 頸甲과 腰甲(?) 1령을 매납하였다. 전체적인 부장양태
는 토기류는 곽의 북쪽에 치우쳐 매납하였고 남쪽에는 甲冑類를 부장하였던 것으로 판단
된다.

2) 4號 木槨墓
조사구역 중앙 북쪽의 능선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소형목곽묘로 주축방향은 N-76˚-W이
며 상부 및 서남단축부분은 후대 유실과 부지조성공사도중 파괴되었다. 유구의 축조는 황
갈색 생토암반부스러기가 혼입된 황갈색사질토로 충진하였으며 바닥은 생토암반을 그대
로 이용했다.
출토유물은 동단벽 아래에 古式陶質의 短頸壼 4점, 컵形土器 1점, 爐形土器 1점과 鐵鉾 1
점을 매납하였고 서단벽쪽에 壼 1점과 軟質甕 2점을 매납하였다.

나. 積石木槨墳
17호, 18호, 19호, 20호, 22호, 24호가 해당되며 평면형태에 따라 單槨式, 日字形主副槨
式, T字狀主副槨式의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고 있으며 적석시설 또한 목곽상부와 묘광과
목곽사이에 적석을 채워 보강한 일반적인 적석목곽분 뿐만아니라 목곽상부에만 설치한 것
도 확인되고 있으며 시상과 유물부장은 礫石屍床과 兩短副葬이 기본적인 형태이다. 특히
단곽식인 4호와 T字狀인 5호의 중복관계로 미루어 볼 때 시기차는 그리 크지 않으나 T字
狀적석목곽분보다 단관식이 보다 앞선 시기임을 알 수 있었다.

1) 17號 積石木槨墳
조사구역 서편에 위치하는 日字形積石木槨墳으로 주축방향 N-80˚-E로 등고선과 평행한
다. 조사전 상태는 상부일부와 동편 대부분이 부지조성과정에서 파괴된 상태였고 유구의
상부에는 약 15~40㎝ 크기의 천석으로 덮혀져 있었다. 유구의 축조는 255(잔존길이)×225
(너비)×98㎝(주곽깊이), 55㎝(부곽깊이)로 묘광을 주곽과 부곽의 깊이를 달리하게 만들
고 나서 내부에 110(현길이)×150(너비)×50㎝(깊이) 규모의 주곽과 115(길이)×145(너비)
×50㎝(깊이) 규모의 부곽을 설치한 후 생토암반부스러기가 일부 혼입된 적갈색 사질토로
써 목곽과 묘광사이를 충진하였다. 그리고 적석시설은 목곽상부만 설치하였으며 바닥시설
은 주곽에만 5㎝ 이하 자갈을 깔았으며 부곽에는 묘광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출토유물은 주곽은 대부분 파괴되어 출토유물이 없고 부곽에서만 大壼 4점, 臺附長頸壼
3점, 軟質壼 2점이 출토되었다.

2) 19號 積石木槨墓
조사구역 동북편에 위치한 단곽식의 적석목곽묘로써 주축방향은 N-69˚-E로 등고선 방
향과 나란하다. 인접한 20호와 중복 조영되어 護石과 周構는 거의 파괴된 상태이며 유구
의 상부는 15~40㎝의 천석으로 덮혀져 있다.
유구의 축조는 412(길이)×201(너비)×41㎝(깊이)의 장방형 묘광을 판 후 내부에는 350
(길이)×132(너비)×41㎝(깊이)의 목곽을 설치하였다. 목곽과 묘광사이에는 15~40㎝ 정도
의 천석으로 채운 후 다시 생토암반부스러기가 혼입된 황갈색 사질토를 충진하였다.
그리고 목곽 상부에 15~40㎝ 정도 천석을 이용해 적석부를 설치하였고 바닥시설은 자갈
을 2매정도 깔았다. 또 19호 주위에는 인접한 20호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서남편에
크기 40㎝ 정도의 천석으로 축조한 호석과 주구 일부만 남아 있다.
호석의 추정 지름은 7m이다.
출토유물은 목곽 양단벽쪽 高杯, 臺附長頸壼, 壼 등의 토기류를 매납하였고 철기류나 장
신구의 부장은 매우 빈약한 편이다.

다. 石室墳
橫穴式石室墳이 다수 확인되었는데 석실의 평면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으로 割石을 이
용해 축조하였다. 상단부는 파괴가 극심해 대부분 훼손된 상태로 잔존부분은 1단 일부와
시상부분과 벽석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로 정확한 내용 파악에 다소 무리가 따르나 연도
는 玄室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형 할석 또는 자갈을 이용해 축조하였다. 追加葬은 파
괴가 극심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시상에 이용한 돌의 크기 차이 및 시상의 중복관
계로 보아 최소 3회 이상은 실시된 것으로 판단되며 배수구는 연도의 오른쪽에서 확인되
고 있으며 구릉 정상부에 있는 석실 1호의 경우 호석과 주구도 확인되고 있다.

1) 6號 石室
조사구역 동쪽 구릉정상부에 先代遺構 5호, 7호, 16호목곽묘를 중복 파괴하면서 조영된
횡혈식석실분으로 주축방향 N-85˚-W로 등고선방향과 나란하다. 북쪽에 호석과 주구가 남
아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타원형 봉분을 가지고 있었으나 후대 유실과 부지조성과정에
파괴되었고 매장시설 또한 파괴가 극심해 일부 벽석이 1단 정도 남아 있는 상태이다. 현실
은 남쪽벽석 일부만 남아 있으며 정확한 축조방법과 그 규모는 알 수 없으나 묘광을 기준
으로 현실 규모는 240(길이)×220(너비)이고 벽면의 축조에 있어서는 80~100㎝ 정도 비교
적 큰 할석을 이용해 縱平積하였다. 연도는 현실 중앙에 설치되었으나 연도가 남쪽으로 벌
어지면서 축조되었기 때문에 현실쪽의 연도폭은 75㎝이나 연도가 끝나는 부분의 폭은 90
㎝이다.
출토유물은 교란과 파괴가 심해 매우 빈약하였고 그나마 片들로 출토되고 있는 실정이
며 短脚化된 高杯, 附加口綠長頸壼편이 보이고 있다.
시상은 거의 파괴되어 정확한 내용 파악에 어려움이 있으나 시상의 중복관계, 시상의 이
용한 돌크기 차이 등을 감안하면 몇 번에 걸쳐 추가장이 이루워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먼저 현실 안쪽에 160(길이)×70㎝(너비) 규모의 시상이 있는데 40㎝정도의 천석을 이용
해 2단 정도 쌓아 네모서리를 축조한 다음 내부에는 굵은 모래와 1㎝ 정도 자갈로 채워 넣
고 최종적으로 5㎝ 정도 천석으로 시상을 골랐다. 그리고 현실 안쪽의 시상을 만들고 나
서 다시 별개의 170(길이)×120㎝(너비) 규모의 시상을 설치하였는데 먼저 40㎝ 정도의 할
석을 이용해 네모서리를 만든 후 3~4㎝ 정도의 자갈을 깔고 다시 그 위에 30㎝ 정도의 할
석을 이용해 시상상면을 고른 듯 하나 교란과 파괴가 심한 편이다. 연도의 바깥쪽에는 200
(길이)×30㎝(깊이)의 배수구가 파여져 있으며 그 내부에 천석들을 깔았다. 그리고 석실
분 주위에는 석실을 중심으로 추정 직경 10.20m의 호석이 돌아가는데 호석은 대부분 파괴
되었고 서북쪽 일부에 잔존한다. 호석은 100~150㎝ 정도 대형할석을 이용해 1단 정도 쌓
았으며 그 바깥쪽에는 300(길이)×90㎝(너비) 정도의 주구를 설치하여 주구 내부에는 대
호 개체분을 깨뜨려 놓았다.

2. 遺物

상부 지표에서 수습된 有莖式 磨製石鏃을 제외하고는 모두 墳墓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가. 木槨墓
목곽묘에서 瓦質圓底短頸壼, 爐形器臺, 筒形器臺, Cup形土器, 古式陶質短頸壼 등 土器
類가 출토되고 鐵器類로는 鐵鉾, 鐵斧, 大刀, 鐵鎌, 꺽쇠 등이 주로 출토되었으며 특히 1
호 목곽묘의 경우 판갑옷과 頸甲 및 다량의 鑄造鐵斧가 출토되고 있다. 1호 목곽묘 출토
경갑은 18~25㎝(길이)×4㎝(너비) 정도의 地板 24枚를 중복되게 순차적으로 돌려 만들었
으며 출토상태는 매우 양호해 地板의 구부린 곡면도 거의 훼손이 안된 상태로 매우 양호하
게 관찰된다.

나. 積石木槨墳
대부분 토기류의 부장이 많고 장신구나 철기류는 매우 빈약한 편이며 토기류는 臺附長頸
號, 大壼, 2段透窓高杯 등이 주로 출토되고 있다.

다. 석실분
파괴가 극심해 출토유물은 매우 빈약한 편이며 短脚 高杯 및 附加口綠長頸壼편 일부가
보인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가. 본 조사지구는 立地면에서 九於里古墳群의 중심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형의 목
곽묘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능선의 중앙에는 더 큰 규모의 유구가 존재할 것으로 확신한
다. 이를 감안하면 인근 中山里遺蹟과 비교되는 이 지역 中心集團의 墓域으로 판단된다.

나. 금번의 조사에서는 특히 목곽묘의 경우 異穴 主․副槨式의 金海․釜山式 木槨墓가 다수
조사되었으며(1호,3호,5호), 유물의 매납양상에서 볼 때 옥전지역에서 보이는 대량의 鑄造
鐵斧 매납풍속 같은 기존에 慶州지역에서 조사 예가 드문 신자료가 확인되고 있다.

다. 慶州式木槨墓인 細長方形木槨墓는 金海․釜山지역에서 최고 수장층의 묘제인 異穴主․
副槨式木槨墓에 對應하는 慶州지역 특유의 묘제로 생각해 왔으나 금번의 조사성과를 통
해 경주지역 또는 여타 영남지역과 통일한 최고 수장 및 수장층의 묘제는 異穴主․副槨式木
槨墓를 채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경주지역이 여타 영남지역보다 묘제의 位階化가 빨
리 진행된 결과로 異穴 主․副槨式木槨墓와 小形木槨墓의 중간에 慶州式木槨墓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향후 많은 檢討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Ⅴ. 向後課題

가. 본 조사지역과 인접한 竹東里 및 中山里遺蹟과의 상호 관련성 문제
나. 목곽묘의 구조 검토
다. 조사대상지역내 단애면의 봉토분 및 주변지역의 향후 조사 및 보존 문제
라. 유적파괴에 대한 재발방지대책 수립
 

유적 전경
1호 목곽 주곽
1호 목곽 주곽
1호 목곽 부곽 출토 갑주류
1호 목곽 부곽 출토 유물
4호 목곽
17, 18호 적석목곽분
18호 적석목곽분 출토유물
19호 적석목곽분
6호 석실

재단법인 영남문화재연구원 / 주소 : 39852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천평2길 43(천평리 221)
TEL : 054-971-8085 / FAX : 054-971-8083 / E-mail : ynicp@daum.net

copyright (c) 2016 ynicp.or.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