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大邱 八達洞遺蹟 發掘調査 대구 팔달동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삼국
성격 주거지,고분
회수 8
개최일자 1997.04
조회수 2,669
大邱 八達洞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가. 遺蹟位置 :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145번지외 16필지

나. 調査期間 : 1996. 8. 16∼1997. 4. 30(예정)

다. 調査範圍 : 8,906평

라. 調査機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 八達洞發掘調査團(國長: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 (주)대백종합건설


Ⅱ. 調査經過

八達洞遺蹟은 1980년도 이래 地表調査와 發掘調査(경북대학교박물관, 1993)에 의해 청동기시대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遺構가 있슴이 밝혀져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고, 그에 따라 遺蹟의 보존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1996년 초, (주)대백종합건설이 아파트건설을 위해 본 遺蹟의 벌목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목격되어 시에 통보되었고, 이에 시에서는 공사중지를 명하고 試掘調査가 선행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에서 동년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에 걸쳐 試掘調査를 실시하게 되었으며, 당시의 試掘調査 結果를 바탕으로 1996년 8월 16일부터 현재까지 發掘調査를 실시하고 있다.
發掘調査는 공사대상지 전역(약 9,000평)에 걸쳐 전면발굴을 시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모두 460여기에 이르는 많은 遺構를 확인할 수 있었다.



Ⅲ. 調査內容

1. 遺構
發掘調査에서 확인된 遺構는 모두 460여기에 이르며, 크게 靑銅器時代, 原三國時代, 三國時代, 三國時代이후로 나뉜다. 靑銅器時代 遺構로는 住居址가 20여동, 무문토기 옹관이 120여기 확인되었다. 또 원삼국시대 와질토기 옹관이 12기, 木棺墓와 목곽묘가 120여기 확인되었으며, 삼국시대 석곽묘도 30여기 調査되었다. 삼국시대 이후(주로 조선시대 이후) 墳墓도 150여기 調査되었다. 시기별 대표적인 遺構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住居址
八達洞遺蹟에서는 靑銅器時代 住居址가 모두 19기가 環豪(未調査)와 함께 확인되었다. 그중 調査完了 住居址는 7기, 調査中인 것은 3기이다. 지금까지 調査된 住居址는 본 遺蹟을 ㄷ字(?)로 감싸도는 環濠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고, 평면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을 띠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住居址는 능선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12Grid-1호 住居址로서 장축이 16.5미터에 이르며 단축은 잔존길이 6미터이다. 住居址는 산정상부 평탄지에 위치한 2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능선의 동쪽사면에 위치하고 있고, 환호 바깥쪽과는 달리 환호내에 있는 住居址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예를 지어 조성되어 있다. 특징적인 것으로는 산 정상부에 위치한 12Grid-1·2호를 제외한 나머지 遺構는 모두 排水溝로 추정되는 (周)溝시설을 住居址 내부, 혹은 외부에 설치하였다. 출토유물로는 토기의 경우 삼발형토기 외에 기형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단면육각형의 三角灣入石鏃, 雨刃石斧, 砥石, 石槍, 半月形石刀片 등의 石器類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1) 17G-8호 住居址(調査中)
장축방향이 남서-복동이며 장축 7.3m, 단축 4.5m의 장방형 住居址로써 경사면에 위치한 住居址 중 평면형태가 남아있는 유일한 住居址이다. 住居址의 안팎으로 溝시설이 확인되었는데, 특히 住居址 내부에 설치된 구는 동쪽단벽 아래쪽으로 벽면을 따라 아래로 이어지다가 벽면모서리에서 꺾이지 않고 住居址 굴광선 바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 배수구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 住居址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돌들이 무더기를 이루어 住居址 내부에 채어져 있다는 점이다. 돌들은 주로 지석용으로 가공할 수 있는 사암계통의 것이 대부분이며, 대개의 경우 표면에 가공한 흔적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단면육각형석촉과 석부, 양인석부, 반월형 석도편, 지석, 마제석기편 등이 있다. 이와같은 양상으로 볼 때 본 住居址는 석기제작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2) 19G-2호 住居址
장축방향이 東-西방향이고 평면은 장방형으로서, 규모는 장변이 10.9m, 단변은 잘려나가 2.5m정도만 남아 있다. 기둥구멍은 평면타원형으로서 현재 남은 것이 모두 16개이고, 벽면아래에 바로붙어 60∼80㎝의 일정한 거리간격을 두고 만들어졌다. 깊이는 최고 20㎝에서 최저 4㎝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住居址는 암적갈색암반층을 굴착하여 조성되었으며, 바닥에 특별한 시설을 하지는 않았다. 기둥구멍 외에 구가 남아있는데, 폭이 약 30∼40㎝, 깊이는 약 2∼5㎝로 얕게 파여져 있었다. 住居址 중간부분에 爐址로 추정되는 붉은 소토가 약 2∼3㎝정도의 두께로 형성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도 약간 소토화된 부분이 일부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무문토기 동체부편과 격지편들이 있으나 완성품으로서의 석기는 출토되지 않았다.

3) 19G-59호 住居址(調査中)
장축방향이 西南-東北방향이며 규모는 장변이 9m, 단변잔존길이는 3.3m로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이 住居址 역시 溝가 조성되어 있는데 벽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어 ㄷ字形을 하고 있다. 溝는 폭이 약 15㎝정도이며 깊이는 7∼10㎝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溝와 住居址 바닥면이 맞닿는 부분에 폭 6∼8㎝, 높이 2㎝정도의 둑을 쌓았다는 점이다. 그외 住居址 내부시설로는 기둥구멍과 노지가 있는데, 노지는 방형의 偉石式爐址로서 2기가 확인되었다. 爐址中 1기는 근세토광묘(민묘)에 의해 일부가 파괴되어 爐址를 둘렀던 돌들이 빠져나가고 없으나 다른 1기의 경우는 손바닥크기의 납작한 직사각형(두께 약4㎝) 할석을 한변에 3개씩 일정하게 땅속에 절반을 묻어, 방형(65×68㎝)에 가깝게 만들었다. 住居址 바닥에는 중앙부를 중심으로 넓게 붉은 소토가 군데군데 퍼져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재시 형성된 것이거나, 또는 住居址 조성시 바닥을 다진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유물은 토기의 경우, 북서쪽 모서리 가까이 심발형 토기가 1/2정도 비스듬히 누워 출토된 것 외에는 거의 片들만이 출토되었다. 그러나, 석기의 경우 단면편육각형 삼각만입형석촉 2점(1점은 완형, 1점은 반파)과 석창, 양인석부, 용도미상의 마제석기, 그외 미완성 석기 및 격지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4) 19G-4호 부정형 수혈유구
遺蹟의 남쪽사면에 조성된 「T」字형의 부정형 수혈유구로, 19G-1, 2호 住居址에서 남쪽으로 10여 미터정도 떨어져 있다. 遺構의 최대길이는 8m, 폭은 280㎝∼140㎝이다. 遺構의 북쪽으로 2m 떨어져서 노지가 1기, 그 주위로 기둥구멍이 2개 설치되어 있는데, 기둥구멍은 노지시설과 관련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노지에서 서쪽으로 2m, 5m 떨어진 곳에 각각 기둥구멍이 1개씩 배치되어 있는데 그 성격은 알 수 없다. 내부퇴적토는 크게 4개의 층으로 구분되는데 각층에서 무문토기편과 격지편이 다수 출토되었고, 바닥에서는 단면원형구연점토대토기의 구연부편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구연부와 동중위 이상만 남은 직립구연호 1점과 무문토기 저부 6점, 반제품의 유구석부 1점과 격지편 15점 등이 있다.
본 수혈유구는 바닥면에서 단면원형구연점토대토기 구연부편과 무문토기호가 출토되어 환호내에 위치하는 住居址들과는 시기를 달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遺構의 정확한 성격은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으나, 주변에 위치한 노지등을 고려해 볼 때 단순한 폐기장보다는 어떠한 일정한 역할(토사채취장?)을 담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 甕棺墓
모두 128기의 甕棺墓가 調査되었다. 이중 117기가 단면삼각구연 점토대옹관이고, 11기는 와질토기 옹관이다. 3옹식 옹관 2기를 제외한 대부분이 合口式 옹관이다. 와질토기 옹관은 주로 遺蹟의 서쪽사면에 위치하며 능선의 정상부와 동쪽·남쪽사면에서는 무문토기로 구성된 합구식옹관이 분포한다. 대부분의 옹관은 매납된 깊이는 얕아 파손이 심한 편으로 합구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있으나, 원삼국시대 옹관묘는 대체로 깊게 매장되어 있어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특징적인 것으로서는 8G-9호 옹관묘(調査中)인데, 지금까지 그 출토예가 거의 없는 대형의 옹관묘이다.

1) 19G-65號 甕棺墓
遺蹟의 남쪽사면, 해발 40.4m에 위치하며 19G-1호 住居址의 동쪽단벽 중간에 굴광선 일부를 파괴하고 설치된 단면삼각형구연점토대 무문토기옹관묘이다. 묘광은 황갈색점토층에서 조성되었으며,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96×39×27㎝이다. 옹관묘의 장축은 동북-서남(N-40˚-E)향이고, 등고선 방향과 일치한다. 옹관은 서남쪽에 심발형토기를 놓아 주옹으로 하고, 북동쪽에는 발형토기를 놓아 막음옹으로 하였다. 옹관의 상면 일부가 파손된 상태였고, 부장유물은 없다.

2) 12G-12號 甕棺墓
능선의 정상부 평탄지에 조성된 합구식옹관묘이다. 묘의 주축방향은 동-서향으로 해발48m에 설치되었다. 주옹은 서쪽에 우각형파수부호를 배치하였고, 막음옹으로서 단면삼각형구연점토대 발을 동쪽에 놓았다. 묘광은 적갈색점토층에 조성되었으며,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 83×55×20㎝이다. 부장유물은 없다.

3) 11G-1號 甕棺墓
遺蹟의 서쪽사면, 해발 39.4m에 위치하며 암적갈색 풍화암반토층에서 확인된 합구식옹관묘로서 와질토기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고, 규격은 131×79×41㎝이다. 장축은 등고선 방향에 직교하는 동-서(N-86˚-E)향이다. 크기가 비슷한 두 개의 토기를 맞댄 합구식 옹관이며 西甕은 四耳附 로 구연은 외반하고 견부와 동하부에 각각 2개의 고리형 파수가 부착되었으나, 지금은 2개만이 남아 있다. 東甕은 구연이 약간 외반하고, 동 최대경이 중상위에 있는 원저단경호이다. 동체부상위에서 중위까지는 승석문과 횡침선문이 남아있고, 동하위 이하로는 종방향 승석문이 남아 있다. 옹관은 처음에 구연부가 맞댄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나, 출토당시에는 동옹의 구연부가 서옹에 일부 끼어져 있었다. 부장 유물은 없다.

4) 11G-9號 甕棺墓
遺蹟의 서쪽사면, 해발 38m에 위치하고, 암적갈색 풍화암반토에 조성된 합구식옹관묘로서 와질토기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고 아래쪽인 西단벽이 파괴되었으며 북장벽 일부도 예비군 참호에 의해 파괴되었다. 묘광의 잔존 규격은 167×65×51㎝이며 장축은 등고선 방향에 직교하는 동-서(N-75-˚E)향이다. 옹관은 서쪽에 길이 90㎝의 장란형 토기를 주옹으로 사용하였고 동쪽에는 現高 35㎝의 원저단경호를 막음옹으로 사용하였으며, 두 옹의 구연부를 서로 맞대어 매납하였다. 묘광바닥은 암반층이며 바닥에 암갈색 사질점토를 5∼10㎝ 두께로 깔고 그 위에 옹관을 놓았다. 부장유물은 없다.

5)19G-29號 甕棺墓
遺蹟의 남쪽사면, 해발 42m의 완만한 경사면에 조성된 3옹식 옹관묘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으로서 163×69×33㎝이고, 장축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남-북(N-13˚-E)향이다. 북옹은 길이 78㎝의 장란형토기이고 주옹은 저부를 깨어낸 와질의 단경호로 구연부가 북옹의 구연부에 삽입되었으며 남옹은 길이 38㎝인 발형토기로 구연부를 중옹의 깨어진 부분에 끼워 연결하였다. 묘광 바닥은 암반이고, 바닥에 점토를 3㎝×5㎝ 두께로 깔고 그 위에 옹관을 설치하였다. 북옹의 저부밑과 바닥면 사이에 소형토기(장경호) 1점을 부장하였다.

6)19G-30號 甕棺墓
遺蹟의 남쪽사면, 해발 39.4m의 완만한 경사면에 조성된 합구식 옹관묘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규격은 130×68×40㎝이고, 장축은 등고선방향과 거의 일치하는 동-서(N-77˚-W)향이다. 회청색경질의 장란형옹이 주옹이며 와질의 완이 막음옹으로 사용되었다. 주옹은 胴上位에 우각형파수가 2개 부착되어 있고 저부는 좁은 굽이 있다. 합구형태는 동쪽 막음옹의 구연부를 주옹속에 끼워넣었다. 묘광의 벽면에는 폭 6㎝∼7㎝정도의 도구로 굴착한 흔적(굴지흔)이 나타나는데, 굴지흔의 상태로 보아 위에서 아래로 굴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 木棺墓

1) 7G-5호 木棺墓
遺蹟의 서쪽斜面에 위치하는 木棺墓이다. 암적갈색충화암반층에 조성된 木棺墓로서 環濠를 일부 파괴하고 설치되었다. 墓壙의 평면형태는 長方形으로 규격은 255×145×67㎝이고, 長軸방향은 東西向으로 등고선과 直交한다. 목관의 규격은 180×50×40㎝이고, 목관과 묘광사이에는 암적갈색암반덩어리가 다량 함유된 암적갈색점토로 충진하였다. 충진토는 東·西 兩短壁과 모서리 일부에서만 그 형태를 유지하였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허물어져 있었다. 유물들은 원래 충진토위에 놓여져 있었으나, 충진토가 허물어지면서 목관내부로 쓸려내려온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유물로는 삼각구연점토대옹, 두형토기, 소형의 장경호, 철검, 주조철부 등이 있다.

2) 8G-8호 木棺墓
遺蹟의 서쪽 斜面에 위치하며 암적갈색풍화암반층에 조성된 목관묘로 8G-52호 옹관묘(합구식옹관묘,와질토기)와 一部 중복되어 있다. 墓墳의 평면형태는 長方形으로 규격은 248×112×67㎝이고 방향은 長軸이 東西로써 등고선과 直交한다. 內部堆積土는 크게 5개층으로 구분되고, 층위는 U자형으로 함몰되어 있었다. 목관의 규격은 181×40㎝이고, 목관과 묘광사이에는 암적갈색암반덩어리가 다량 함유된 암갈색 점토로 충진하였다. 출토유물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충진토는 20∼25㎝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로는 臺附甕, 단면삼각형구연 점토대옹, 小甕, 주조철부 2점, 철검 등 모두 6점으로 小甕을 제외한 나머지는 충진토 위에서 출토되었다.

3) 11G-4호 木棺墓
능선의 서쪽사면에 위치하는 구유형(통나무)積石木棺墓로서 목관의 규격은 230×55×30㎝이다. 묘광은 암적갈색암반층에서 확인되었고 평면형태는 長方形이다. 규격은 270×90×97㎝이고 방향은 장축이 東西로서 등고선과 직교한다. 내부퇴적토는 크게 3개층으로 대별되고 다시 8개의 층으로 세분된다. 퇴적토내에는 직경 20∼30㎝의 돌들이 47개나 채워져 있었는데, 토층의 함몰상태로 보아 木蓋 상부에 놓여져 있던 것이 목개와 목관의 부식으로 내려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바닥면과 토층상에서 목관의 木質痕으로 보이는 회백색점토띠가 「U」자상으로 잘 남아 있었고, 목관아래 암반바닥에서는 요갱과 기둥구멍 2개가 확인되었다. 기둥구멍은 양단벽쪽에 치우쳐 있었는데, 이는 경남 의창 다호리 1호 木棺墓에서 보듯이, 목관의 위아래를 고정시키는 쐐기(지름 약 21㎝)고정용 구멍이다. 요갱은 목관의 가운데부분에서 장벽쪽에 붙어 있었고, 규격은 47×23㎝, 깊이 약 7㎝정도이다. 목관과 묘광사이에는 암적갈색암반덩어리가 다량 함유된 暗赤褐色粘土로 충진되었으며, 충진토의 높이는 일정치는 않지만 대략 25∼30㎝ 정도가 남아 있었다.
유물은 충진토 상부와 목관 하부에서 각각 출토되었다. 충진토 상부출토유물은 모두 서단벽에서 출토되었는데, 충진토가 일부 허물어져 아래쪽으로 내려않은 상태였다. 출토유물로는 무문토기로서 적갈색의 우각형 파수부옹, 蓋, 두형토기 등이 있으며, 요갱내에서는 동모, 동과, 철모, 판상철부가 1점씩 출토되었다. 이외에 동북쪽모서리에 붙어서 철검이 1점, 동단벽에서 성격불명의 철편이 출토되었다.

4) 11G-7호 木棺墓
능선의 서쪽사면에 위치하는 木棺墓로서 목관의 규격은 220×50×30㎝이다. 장축방향은 동-서향으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묘광의 규격은 300×110×70㎝이고, 바닥은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목관과 묘광사이에는 서단벽쪽을 제외하고 판석을 1-2단정도로 흙과 함께 충진하였다. 내부퇴적토중에는 직경 30㎝정도되는 큰 할석이 놓여져 있었는데 목개위에 놓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출토유물로는 칠초, 검파두식, 두형토기, 철모등이 있다. 칠초는 목관내부의 중앙에서 북동쪽에 붙어 놓여져 있었고, 검의 실물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는 칠초의 출토상태가 불안정한 상태이고, 칼집의 대부분이 파손된 상태이므로 검이 완파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나, 원래부터 검을 부장하지 않았거나 목검을 넣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두형토기와 철모는 유구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출토되었는데, 출토위치와 높이로 보아서 두형토기는 관위에, 철모는 목개위에 놓여져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라. 木槨墓

현재까지 목곽묘는 모두 20여기 확인되었고, 이중 3기만이 조사되었다. 墓의 장축방향은 木棺墓와 달리 등고선과 평햏한다. 묘는 주로 능선의 동북쪽사면에 집중적으로 밀집되어 있고, 발굴대상지의 북쪽경계밖으로 더 많이 유존할 가능성이 많다. 유물은 주로 목곽내 단벽쪽에 치우쳐 부장되었고 출토유물은 대부분 단경호류이다. 묘에는 대부분 半月形의 周構가 있고, 주구내에서도 단경호 등의 유물이 일부 관찰된다.

1) 6G-5호 목곽묘
능선의 동쪽사면에 위치하는 목곽묘이다. 주축방향은 東西이고 6G-3호 민묘에 의해 西短壁 일부가 파괴되었다. 북쪽으로 약 190㎝되는 지점에 폭 50∼80㎝, 現 깊이 15㎝정도의 반원형 周構를 설치했다. 적갈색풍화암반층에 조성된 묘광의 규격은 300×90㎝이며 깊이는 경사면에 설치된 관계로 대부분 削土되고 현재는 20㎝가량 남아있다. 內部堆積土는 높이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 함몰양상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충진토는 비교적 잘 남아있었고, 충진토가 남아 있는 양상으로 볼 때 목곽의 규격은 252×62×20㎝정도였던 같다. 유물은 목곽내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원저단경호와 단경호는 서단벽에서, 환두도는 북장벽 중앙지점에서 출토되었다.

마. 石槨墓

八達洞遺蹟에서 확인된 石槨墓는 모두 30기로 구릉의 정상부에서 남쪽사면쪽으로 능선을 따라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石槨의 平面形態는 주로 長方形이며, 長軸方向은 대부분 등고선과 일치한다. 石槨에는 대부분 경사면 윗쪽에 半圓形의 周構가 돌아간다. 그러나 周構가 없는 것도 있으며, 屍床臺를 따로 마련한 것과 별다른 시설을 하지않은 것, 또 屍床石도 편평한 割石을 이용한 것과 작은 割石을 이용한 것, 강돌을 이용한 것 등 다양함을 보이고 있다. 石槨의 蓋石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후대의 경작으로 인하여 벽석도 일부만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1) 16G-2號 石槨墓
능선의 정상부 남쪽말단부에 위치하고, 14號 민묘와 중복되어 있는 竪穴式石槨墓이다. 묘는 대부분 파괴되어 벽석의 最下端石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石槨의 규격은 300×105×22㎝로 長方形이며 長軸方向은 N-50˚-W이다. 벽석은 兩長壁 일부만이 남아 있는데 割石으로 縱平積하였고, 바닥은 점토를 한벌 깔아 整地하였다. 石槨의 북동쪽과 남서쪽 일부에 周構가 돌아가는데, 폭은 55∼80㎝정도이며, 깊이는 5∼20㎝ 정도이다. 周構內에는 토기편이 여러점 출토되었다. 유물은 고배, 장경호, 연질옹, 파수부배, 개, 대부장경호, 철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2) 19G-7·8號 石槨墓
남쪽사면에 위치하는 竪穴式 石槨墓이다. 7호와 8호석곽묘가 중복되어 있는데, 8호석곽묘 주구의 동쪽 끝부분에 7호석곽묘가 주구의 일부를 파괴하면서 설치되었다. 8號 石槨墓는 北長壁 일부만 남아있고 바닥은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石槨의 규모는 255×120×29㎝로 長方形이며 장축방향은 N-70˚-E이다. 石槨墓 윗쪽에는 半圓形의 周構가 있는데, 폭 120㎝, 깊이 20㎝정도이며, 周構內에서 祭祀遺物로 추정되는 적갈색 연질완 1점이 출토되었다. 석곽내 출토遺物은 동쪽에서 철촉 1점만이 출토되었다.
7號石槨墓의 규격은 165×70×30㎝로 抹角方形이며 長軸方向은 N-80˚-W이다. 벽석은 割石을 이용하여 長壁을 橫平積하였고 短壁은 板石 1枚로 축조하였다. 遺物은 南長壁쪽에는 대부장경호 1점, 장경호 1점, 광구소호 1점이 출토되었다.

3) 19G-12號 石槨墓
남쪽사면 아랫쪽에 위치하며 황갈색사질점토층에 설치된 竪穴式 石槨墓이다. 石槨의 규격은 355×112×40㎝로 長方形이며 長軸方向은 N-55˚-E이다. 벽석은 兩長壁 일부만이 1∼3단 정도 남아 있는데, 割石을 이용하여 最下段을 縱平積으로 축조한 후 나머지는 橫平積하였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없이 묘광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石槨墓의 윗쪽으로 半圓形의 周構가 돌아가는데 규격은 폭 70∼120㎝, 깊이 20㎝정도이다. 周構內에는 祭祀遺物로 추정되는 대부장경호 2점, 연질유개고배 4점, 적색연질토기 구연부편 등이 출토되었다. 석곽내 출토유물은 동쪽에서 적색연질단경호 1점, 대부장경호 2점, 서쪽에서 단경호 1점, 유개고배 1점, 개 2점, 철기 2점, 세환이식 1쌍 등이 출토되었다.

마. 石室墓

1) 18G-3號 石室墓
남사면의 서쪽단에 가까이에 위치하고 암적갈색岩盤層에 설치된 石室墓이다. 石室墓의 구조는 대부분이 파괴되어 자세히 알 수 없었다. 石室의 규격은 204×187×46㎝이며 長軸方向은 N-10˚-W이다. 벽석은 북단벽과 서장벽 일부만이 1∼2단 정도 남아 있는데, 큰 割石을 이용하여 平積하였고, 바닥에는 손바닥규격만한 割石을 전면에 깔았다. 석실 바깥쪽에는 護石이 일부 남아 있는데, 주로 割石을 이용하였고 부분적으로는 岩盤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遺物은 북단벽 쪽에 高杯片과 蓋片이 출토되었다.

2. 출토유물

팔달동유적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들을 각 시기별로 나열해 보면,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경우 대부분절반정도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한 유물조합상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유물로는 반월형석도, 삼각만입석촉, 지석, 미완성석기, 심발형토기, 무문토기편 등이 있다. 원삼국시대 유물로는 동모, 동과, 조합식우각형파수부장경호, 주머니호, 대부옹, 두형토기, 흑도장경호, 철부, 철모, 철검, 옥 등이 있으며, 삼국시대유물로는 고배, 장경호,단경호, 파수부배, 방추차, 세환이식, 철탁, 철도자 등이 있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1. 영남지역 목관묘의 새로운 구조인 적석목관묘가 양호한 상태로 다수 조사됨으로써 남부지방의 목관묘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되며, 종래 중부지방에서 확인된 바 있는 적석목관묘(?)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목관묘문화의 계통 및 구조연구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여겨진다.

2. 대구의 비산동, 평리동, 만촌동 등에서 출토된 바 있는 동과, 동모 등 청동유물이 학술조사에 의한 발굴유구에서 다수 출토됨으로써, 종래 알려진 자료들과 함께 대구지방의 청동기문화 연구 자료로서 크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3. 한 유적에서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분묘 및 주거유적이 밀집·중복 분포하는 현상이 조사되었으며, 특히 시기 변천에 따라 입지의 선택 및 구조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본 유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은 앞으로 선사 및 역사시대의 주거생활 및 매장문화의 상관관계, 입지선택의 변천양상 등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4. 200여기에 이르는 옹관묘가 조사됨으로써 옹관묘문화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대구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되는 대형의 옹관묘는 규모면에서 볼 때 특이한 현상으로 보이며, 앞으로 이 옹관묘의 성격 및 다른 지역(영산강유역) 옹관묘와의 비교연구가 이루어지면 영남지방 옹관묘문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다수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Ⅴ. 향후 과제

1. 본 조사의 적석목관묘와 다른 지역 유사유구와의 구조적 관련성에 관한 문제

2. 부정형수혈유구, 환호 및 주거지의 구조 및 성격에 관한 문제

3. 조사지역 주변유적에 대한 보존·보호 문제
 

유적 전경
17G 8호 주거지
19G 2호 주거지
11G 1호 옹관묘
11G 4호 목관묘
11G 4호 목관묘 바닥
11G 7호 목관묘
11G 7호 목관묘 칠초 출토 상태
11G 4호 목관묘 출토 동모, 동과
7G 5호 목관묘 출토 유물
목관묘 출토 조합식우각형 파수부장경호 각종
목관묘 출토 주머니호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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