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浦項 草谷里 先史遺蹟 發掘調査 포항 초곡리 선사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
성격 취락
회수 12
개최일자 1998.06
조회수 1,686
浦項 草谷里 先史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가. 遺 蹟 位 置 : 慶尙北道 浦項市 興海邑 草谷里 山 39-1番地

나. 調 査 期 間 : 1998. 2. 25~1998. 6. 24(예정)

다. 調 査 範 圍 : 약 4,000여평

라. 調 査 機 關 : (社)嶺南埋藏文化財硏究院 草谷里發掘調査團(團長:李白圭)

마. 調査依賴機關 : 大韓不動産信託株式會社


Ⅱ. 調査經過

포항을 중심으로 환동해안권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여타지역에 비해 극히 미진한 편
이었으나 근년에 이르러 활발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에 조사하게 된 浦項 草谷里 遺蹟은 1995년에 본 연구원에서 발굴조사한 흥해읍 玉
城里遺蹟의 발굴기간중 주변지역에 대한 地表調査시 확인되었다.
대한부동산신탁은 초곡리 유적이 위치한 능선 일대를 아파트부지로 선정함에 따라 정확
한 유적의 분포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에 試掘調査를 의뢰하여
1997년 7월 25일 ~9월3일 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으며, 당시의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98년 2월25일 부터 현재까지 發掘調査를 실시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능선의 말단을 중심으로 약 4,000여평에 실시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靑銅器
時代 竪穴住居址 등 총 24기의 遺構를 확인할 수 있었다.

Ⅲ. 調査內容

1. 遺構
이번 조사에서는 靑銅器時代의 竪穴住居址와 그와 관련한 溝狀遺構 등 24기이며 竪穴
住居址는 18棟, 溝狀遺構 5基, 掘立柱建物(高床式倉庫?) 1棟이 확인되어 조사중에 있다.

가. 住居址
초곡리 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는 方形, 長方形의 평면형태를 유지하며 방형주거지가 주
를 이룬다. 유구는 능선의 정상부와 사면에 등고선방향과 나란하게 분포하며, 능선의 정상
부를 따라 규모가 큰 주거지들이 위치한다.
조사구역내에서 環豪와 같은 防禦除施設은 확인되지 않았다.
규모는 최대 49.5㎡ 에서 최소 16㎡ 에 포함된다. 주거지 내부의 柱穴配置는 정연하지 않
으나 대부분의 주거지가 벽면을 따라 ‘ㄷ’字狀의 溝가 설치되어 있고 溝 내부에도 주혈이
만들어져 있다. 바닥은 基盤層을 정지하여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내부공간의 중앙과 서편
에 爐址가 설치되어 있다. 출입구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개별 주거지를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1) 2號 住居址
유적의 정상부 중앙에서 동편으로 치우친 지점에 위치하며 그 동쪽으로 약 10m 떨어진
지점에는 1호 주거지가 위치한다.
풍화암반층을 기반층으로 하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으로 주축방향은 N30°W이며 등고선
과 직교하는 남북방향의 수혈주거지로 주거지 내부에 다시 평면형태가 방형인 수혈구조
를 가지는 아주 특이한 주거지이다.
전체 수혈의 규모는 전체길이 920cm, 폭 650cm, 최대깊이 49cm 정도로 본 유적의 주거
지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내부 수혈의 규모는 전체길이 374cm, 폭 330cm, 깊이 10cm
내외이다.
주거지의 남서편 가장자리는 후대 채목작업에 의해 파괴되었고 북쪽에 비해 남쪽부분이
후대에 많이 삭평되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주거지내의 시설로는 남벽을 제외한 동·서·북벽을 따라 가면서 약간 붉은색조를 띠며 점
성이 상당히 강한 진암갈색점토를 사용해 벽체시설을 만들었으며 그 폭은 15~45cm 내외
이다. 벽체 아래에는 남벽을 제외한 동·서·북벽을 따라 壁溝가 설치되었는데 전체적으로
‘ㄷ’字狀을 나타내나 함께 연결된 것이 아니고 부분부분 단절되어 설치되었다. 이러한 벽
구시설을 바탕으로 하여 上面에 벽면을 따라가면서 벽체시설을 만든 것 같다. 벽구의 폭
은 10~30cm 내외이며 깊이는 부분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10cm 내외이다. 내부토는 일부
미세사립과 황갈색이 섞인 흑갈색점토이며 구 내부에서 일부 주혈이 확인되었으나 정연하
지는 않다.
주거지 바닥은 일단 기반층을 정지하고는 그 위에 5~10cm 내외의 두께로 일부 미세사
립이 포함된 회황갈색 점토를 사방으로 깔아 다지고는 중앙에서 약간 북벽으로 치우쳐 다
시 방형의 수혈구조를 만들었다. 내부 방형수혈의 북벽과 동벽에는 다시 ‘ㄱ’字狀의 벽구
시설이 확인되었으며 그 폭은 10~20cm 미만이며 깊이는 5cm 내외이다. 이 벽구시설이
평면상에서는 남동쪽 가장자리에서 남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나타난 것처럼 보이나 내부토
가 서로 다르며 깊이도 남동쪽 가장자리에서부터 약 10cm 정도 차이가 나는 점으로 보아
별개의 시설일 가능성도 있다.
노지는 1기가 확인되었는데 내부수혈의 서북편 가장자리 상단에 위치한다. 직경 약
60cm 내외의 평면형태가 타원형에 가까운 원형으로 내부에는 燒土가 채워져 있으며 그
주위는 일부 목탄 및 재로 둘러져 있다.
유물은 크게 석기와 토기, 기타로 나눌 수 있는데 석기로는 북벽 벽체제거중 벽체바닥면
에서 출토된 길이 12cm, 폭 5cm 정도의 2단병식 마제석검1점을 비롯해 반월형석도, 석
촉, 지석, 미완성석기, 용도불명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대부분이 편으로 출토되었
는데 공열토기편을 비롯한 무문토기저부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주거지 내부 방형수혈의 바닥면에서 출토되었으며 일부 상부에서 출
토된 유물도 있다.
저장시설이나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주혈은 현재 조사중에 있다.

2) 3號 住居址
3호 주거지는 해발 22m 선상, 사면에 위치한다. 주축방향이 N80°E 인 수혈식 주거지이
다. 남동쪽이 심하게 삭평·유실되었으나 본 유적의 지형에서 유구의 입지상 방형주거지로
추측된다. 규모는 전체길이 500cm, 폭 420cm, 최대깊이 73cm이다.
내부시설로는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40×45cm 규모의 원형노지가 확인되었는
데 이 노지는 별다른 시설은 하지 않았다. 主주혈은 직경 10~20cm, 깊이 5~10cm 전후
로 11개가 확인되었다.
한편 사면의 세벽면을 따라가면서 폭 1.5cm, 깊이 5cm 의 ‘ㄷ’字狀의 벽구가 설치되었는
데 내부에는 직경 10~20cm, 깊이 10cm 의 주혈이 3개가 확인되었다. 주거지 바닥은 별
다른 시설없이 생토면을 이용하였으며 목탄과 초본류들이 많이 검출되어 본 주거지가 화
재로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벽구상면에서 주거지가 폐기될 때 유입되었을 것으
로 보여지는 2단병식 마제석검과 일단병식 마제석촉이, 바닥에서는 지석, 미완성석기가
출토되었다.

3) 5號 住居址
유적의 남동편 경사면에 위치하는데 해발 약 24m 선상에 있다. 주축방향은 N54°E 이고,
자연경사면으로 인하여 남편이 유실되었지만 그 잔존상태로 보아 방형의 수혈주거지로 추
정된다. 규모는 전체길이 420cm, 잔존폭 275cm, 최대깊이 44cm이다.
주거지 내부토는 황갈색 사질점토가 주를 이루는데 내부에 풍화된 암반부스러기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그 아래층은 점성이 강한 암갈색 점토를 다량의 목탄과 목탄흔, 불맞은 흔
이 나타난다. 목탄은 북편과 서편의 溝상부에서 벽면과 나란히 하여 노출되거나, 중앙부
를 향하여 넘어져 있는데 길이가 약 40cm 정도의 것과 판재 성격의 납작한 목탄도 보인
다.
벽구는 ‘ㄷ’字狀으로 추정 되나 동편 벽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으며 그 폭은 약 20cm,
깊이는 6~7cm 정도이다.
바닥시설은 특별한 시설이나 점토정지, 불다짐의 흔적이 보이지 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주혈은 북편 벽구 내부에 직경 15cm 내외, 깊이 10cm 정도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주혈
이 2개가 있고, 바닥면에 북벽과 나란히 하여 직경 20~30cm, 깊이 5~10cm 의 주혈이 3
개가 있다.
출토유물은 2단병식마제석검1점을 비롯해 석촉, 지석편, 미완성석기편과 무문토기저부
편 등이 출토되었다. 석촉 2점만 벽구상부에서 출토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유물은 바닥
면에서 출토되었다.

4) 6號 住居址
유적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주거지로 자연경사면으로 인하여 남쪽이 유실되었지만
남서쪽의 모서리가 일부 남아 있어 그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데 전체길이 1,000cm, 폭
370cm, 최대깊이 65cm 인 세장방형의 수혈주거지이다.
주거지 내부토는 풍화된 암반부스러기가 다수 포함된 황갈색 사질점토이고 그 아래층에
회색점토띠가 유구 내부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으며 회색 점토 上面에는 많은 양의 목탄이
노출되었다. 벽체는 풍화된 암반부스러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황갈색 사질점토로 벽체
와 내부토 사이에서 5mm 내외의 얇은 판재로 추정되는 목탄이 노출되었다.
벽체의 상면과 바닥, 벽면에 불의 영향으로 붉게 또는 검게 변색된 흙과 목탄이 많이 노
출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불에 의한 폐기로 추정된다. 바닥시설이나 노지, 주혈은 조사중
이다.

5) 11號 住居址
해발 29m인 유적의 정상부 중앙에 위치하고 주축방향이 N44°W로 평면형태가 방형인 수
혈주거지이다. 전체길이 580cm, 폭 560cm, 최대깊이 52cm 이며 주혈배치상으로 보아 4
柱式 수혈주거지로 여겨진다.
내부시설로는 중앙에 50×30cm 의 타원형노지가 확인되고 동쪽벽면 중앙과 서쪽벽면 북
벽으로 치우쳐서 직경 10~15cm 정도의 소규모 노지가 확인되었는데 별다른 시설은 하
지 않았다.
主주혈은 직경 10~12cm, 깊이 10cm 전후로 모두 7개가 확인되었다. 한편 세벽면을 따
라가면서 폭 15cm, 깊이 3~10cm 의 ‘ㄷ’字狀의 벽구가 설치되었는데 그 내부에는 직경
10~5cm, 깊이 6cm 정도의 주혈이 13개가 확인되었다.
주거지바닥은 별다른 시설없이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중앙의 노지시설이 있는
곳은 약간 불룩하게 되어 있고, 목탄이 많이 검출되는 것으로 보아 화재로 폐기된 것을 알
수 있다.
유물은 남쪽면 바닥에 치우쳐 환상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중앙의 노지 시설 주위로 무문토
기편들이, 벽구 상부에서는 지석·미완성단인석부, 바닥에서는 격지 등이 출토되었다.

나. 溝狀遺構
초곡리 유적에서 주거지의 주변 또는 주거지를 파괴하면서 형성된 溝狀遺構가 확인되었
다. 평면형태는 ‘ㄱ’字狀 또는‘ㄷ’字狀 형태를 취하고 있다. 1호와 3호는 각기 8호 주거지
와 16호 주거지를 파괴하면서 만들어져 있는데 溝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문토기편, 석
촉 등으로 주거지와 시기를 달리하는 유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최근에 조사된 유적에서 일
부 출토예가 있으나 그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1) 溝 1호
해발 29m 인 유적 정상부와 북쪽사면에 걸쳐서 7호, 9호 주거지와 나란히 위치하는데 층
위상으로 7호 주거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평면형태는 ‘ㄷ’字狀을 나타내며 잔
존길이 1,100cm, 폭 110cm, 최대깊이 35cm 내외이다.
내부토는 황갈색 사질토와 명갈색 사질점토이며 황갈색 사질토에서 무문토기저부편, 석
촉편이 출토되었고, 명갈색 사질점토에는 숯만 혼입되어 있다.

2) 溝 2호
해발 30~29m인 유적의 정상부와 남쪽사면에 걸쳐서 위치하며 8호 주거지를 파괴시키
고 만들어졌다. 평면형태는 ‘ㄱ’字狀이며 전체길이 880cm, 폭 130cm, 최대깊이 35cm 내
외이다.
내부에서 숯과 무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2. 출토유물
유물은 수혈주거지내부, 구상유구내부, 주거지 주변 퇴적층 등에서 출토되었으며 모두
청동기시대에 해당된다. 그 내용은 석기와 토기가 주를 이루며 기타 토제품 등이 있다.
土器는 모두 파손된 편으로 출토되어 그 器種을 원상복원 하기는 어렵지만 추정복원이
가능한 유물들로서 살펴보면 대부분 鉢形土器이며 壺形토기도 일부 확인된다. 토기의 문
양은 孔列文이 일부 확인되며 공열문은 棒狀道具를 이용, 토기의 내면에서 바깥으로 찔러
施紋하였는데 완전히 뚫지 않았다.
石器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磨製石劍, 石鏃, 石鑿, 石斧, 環狀石器, 半月形石
刀, 未完成石器, 用途不明石器, 擦切石器 등이 출토되었다.
석검은 4점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2段柄式으로 영남지역 출토품중 古式에 해당된다.
석촉은 無莖式과 有莖式이 함께 출토되었다. 그 외 漁撈道具인 魚網錘가 40여점 출토되었
는데 모두 전체길이 5cm 정도로써 크고 무거운 편에 해당한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가. 草谷里遺蹟은 慶北 東海岸圈에서 처음으로 발굴조사된 마을유적으로써 그 의의가 크
다 하겠으며, 유적이 많이 훼손되었음에도 적지 않은 住居址(竪穴住居址 18棟)와 상태 양
호한 磨製石劍, 石鏃 등의 100여점의 遺物이 출토되었다.

나. 住居址는 方形住居址와 長方形住居址가 함께 나타나지만 두 住居址간에 현격한 시기
차는 찾을 수 없으며 규모가 큰 長方形의 住居址는 동일시기내의 성격을 달리하는 住居址
라 파악된다.

다. 住居址 시기는 대략적으로 靑銅器時代 前期에 포함시킬 수 있는데 이는 토기자료의
정리와 함께 좀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 출토된 磨製石劍의 경우 方
形住居址인 5號에서 출토된 2段柄式의 磨製石劍과 長方形住居址인 2號에서 출토된 磨製
石劍의 형식이 嶺南地域 磨製石劍 출토품중 古式인 前期의 이른시기에 해당한다.

라. 끝으로 草谷里遺蹟이 靑銅器時代 前期의 이른시기로 인정된다면 동해안을 통하여 내
려온 咸慶道 계통의 無文土器文化 전파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전경
2호 주거지
3호 주거지
5호 주거지
6호 주거지
11호 주거지
1호 구상유구
마제석검 각종
석기류 각종
마제석촉 각종
환상석부,방추차
어망추 각종

재단법인 영남문화재연구원 / 주소 : 39852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천평2길 43(천평리 221)
TEL : 054-971-8085 / FAX : 054-971-8083 / E-mail : ynicp@daum.net

copyright (c) 2016 ynicp.or.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