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蔚山 川上里 聚落遺蹟 發掘調査 울산 천상리 취락유적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
성격 취락
회수 2
개최일자 2000.04
조회수 1,795
울산 선암․천상정수장부지내 蔚山 川上里 聚落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가. 유 적 위 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면 천상리 527-1번지 일원

나. 조 사 기 간 : 1차조사 - 1999년 6월11일 ~ 1999년 12월 23일
                       2차조사 - 2000년 3월 1일 ~ 2000년 5월 29일(예정)

다. 조 사 면 적 : 전체 8,000평(1차조사:5,000평 / 2차조사3,000평)

라. 조 사 기 관 : 재단법인 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李白圭)

마. 조사의뢰기관 : 울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Ⅱ. 調査經過

울산 선암․천상정수장부지에 대한 조사는 울산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의 의뢰로 우리 연구원이 1998년 9월 30일부터 1998년 12월 28일까지 정수장부지 전체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정수장부지의 북동지역에 해당하는 구릉상에서 청동기시대의
수혈주거지가 다수 확인됨에 따라 구릉 전체를 발굴조사하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유적이 확인되는 구릉을 1, 2차 조사지역으로 나누어 추진하였다. 1차조사는 구릉의 사면 말단을 중심으로 5,000평에 대해 1999년 6월11일부터 1999년 12월 23일까지 조사하였으며, 2차조사는 구릉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3,000평에 대한 조사를 2000년 3월 1일부터 현재까지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조사결과 나즈막한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에서 환호를 포함하는 청동기시대의 마을이 확인되었다.
주변유적의 현황을 살펴보면 태화강을 따라 형성된 충적지대와 인접한 소구릉에 선사시대의 유적이 다수 분포한다. 천상리유적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평지성취락인 반천동유적이 위치하고 북쪽에는 구릉성취락인 입암리, 구영리유적, 동쪽으로는 구릉성취락인 다운동유적과 무거동유적이 위치한다. 이들 유적은 천상리유적을 중심으로 반경 4km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Ⅱ. 調査內容

주거지는 구릉의 사면 말단에서부터 사면을 따라 올라가면서 정상부까지 분포하고 있지만, 정상부에 비해 사면의 저평한 지역에 유구의 분포 빈도가 높다. 주거지 확인층은 표토
바로 아래의 기반층인 풍화암반층과 암반층의 상층인 적갈색점토층에서 확인되며 잔존상태로 보아 최근까지 이 일대에서 이루어진 과수재배에 의해 상당부분 삭평, 훼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住居址 41棟과 이와 관련한 溝狀遺構 2基, 사면아래쪽에 ㄷ字狀으로 감싸는 環濠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구릉을 가로지르는 조선시대의 溝1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1. 遺 構
1) 住居址
주거지의 분포는 사면아래에서부터 정상부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으나 정상부 가까이 평탄한 부분에서는 주거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곳은 주거지의 입지상 양호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주거지가 조성되지 않고 아울러 주변에서 확인되는 주거지군이 이를 감싸듯이 축조되어 있어 이 곳이 마을의 공공장소 즉 광장일 가능성이 있다. 조사지역의 서쪽경계에는 주거지 3동이 동쪽편의 주거지군과는 별도의 공간에서 축조되어 있다. 이 일대는 능선의 가장 높은 지역에 해당하며, 주거지 3동의 가까이에서 구상유구 2기가 확인되고 있어 취락과 관련한 의례의 공간일 가능성이 높으나 조사진행 중에 있어 향후 그 성격이 주목된다.
주거지 사이의 중복은 2개소에서 이루어지고 있고(11호․12호 / 23호․24호) 마을을 감싸는 환호의 바깥에도 주거지가 확인되고 있으나 유물상에서 현격한 시기차를 구별하기가 힘들다. 취락내 족장 또는 수장의 주거지라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으나 조사된 주거지 중에서 규모나 유물, 입지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22호주거지가 주목된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 있으며 세장방형은 1기도 확인되지 않았다. 방형과 장방형의 비율은 장방형이 70%를 차지하여 장방형이 주류를 이루는 취락이라 판단된다. 장방형 주거지의 경우 규모가 큰 것은 길이 740cm 내외, 너비 480cm 내외, 최대깊이
70cm 내외, 소형은 길이 460cm 내외, 너비 280cm 내외, 최대깊이 60cm 내외이며 방형의 경우 대체적으로 길이 300~350cm내외, 너비 250~300cm 내외, 최대깊이 60cm 내외에 해당한다.
조사구역내 주거지의 방향성은 지형에 맞추어 축조되어 있으나 등고선과 직교하게 축조된 주거지가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된 주거지보다 이른 시기임을 중복관계를 통해 알 수있다. 천상리 취락유적에서 화재로 인해 주거지가 폐기된 경우는 드물며, 마을의 이동 등으로 인해 자연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의 구조는 주혈의 배치에 따라 8주식, 6주식, 4주식으로 확인되며 장방형의 경우 8주식과 6주식을 방형의 경우 4주식을 기본으로 한다. 내부시설로는 장방형과 방형 모두 벽구가 확인되고 있는데 벽구는 벽구내 기둥구멍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대별되며, 평면형태는 주거지 바닥 4면을 모두 감싸는 ㅁ자형과 3면 또는 2면 만을 감싸는 ㄷ자형, ㄱ자형으로 확인된다. 벽구의 폭은 5~20cm 내외, 깊이는 10cm 내외이며 단면형태는 넓고 얕은 ‘U자상, 또는 좁고 깊은 ’U자상으로 구분된다. 노지는 장방형, 방형 모두 1기씩 확인되며 확인되지 않는 유구도 있다. 일부 주거지의 경우 토층조사에서 벽구 상부에 점성이 강한 적갈색 또는 갈색의 점토로 구성된 벽체시설이 확인되었다. 출입구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4주식과 6주식 8주식의 대표적인 주거지의 세부 설명은 아래와 같다.
(1) 4柱式住居址
해당유구는 5, 6, 7, 12, 13, 16, 17, 20, 21, 33, 34, 36, 37, 38호 주거지이다.
유적의 사면에서 정상부까지 고르게 분포하며 평면형태는 대부분 방형으로 면적은 3-5평이다. 바닥은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내부바닥시설로는 주혈, 벽구, 노지가 확인되었다. 노지는 평면형태가 원형이며 별다른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벽구는 평명형태는 ㄷ, ㅁ 자형이며 단면형태는 V, U 자형이다. 내부에 주혈이 없는 피홈으로 이루어져있다.
ㆍ12호주거지(4주식, 방형, 환호내부)
구릉의 정상부 가까이 평탄한 지형에 위치하며, 환호내부에 축조된 주거지이다. 유구의 북편모서리와 벽면 일부는 후대 과수원 조성으로 인하여 일부 파괴되었다. 12호주거지는
11호주거지와 중복관계를 이루며 축조되어 있다.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까우며 주축방향은 N-17-E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주거지내부의 시설물로는 주혈, 벽구, 원형수혈이 있다. 주혈은 4주식의 주주혈을 중심으로 보조주혈이 11개가 설치되어있다. 주주혈의 크기는 직경 15cm, 깊이 10cm내외이며 보조주혈은 그보다 작고 깊이도 얕다. 벽구는 서남북면에 ㄷ자상으로 둘러져 있으며 폭 10~20cm, 깊이 5cm내외이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했으며 서벽에 치우쳐져 원혈수혈이 확인되었는데 내부에 목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노지의 가능성이 높다. 출토유물은 床面에서 단사선문의 발형토기, 홍도, 지석, 등이 출토되었다.
(2) 6柱式 住居址
해당유구는 2, 8, 11, 18, 25, 27, 28, 30, 31, 32호 주거지이다.
환호 외부의 2호주거지를 제외하고 유적의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을 중심으로 감싸듯이 분포한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면적은 5~8평이다. 바닥은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내부시설로는 주혈, 노지, 벽구가 있다. 노지는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며 노지바닥 면에 토기편이 깔려있는 유구가 수기 확인된다. 벽구는 평면형태가 ㄱ ㄷ ㅁ이며 단면형태는 V, U 자상이다. 벽구내에 주혈이 없는 피홈으로 이루어진 경우와 벽구내부에 직경 5~10cm의 주혈이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ㆍ 28호 주거지(6주식, 장방형, 환호내부)
구릉의 서편 정상부에서 남쪽사면에 치우쳐져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환호내부에 축조되어있는 주거지이다. 주거지의 주축방향은 N-3-E 이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게 축조되어 있다. 유구는 사면아래쪽 3면은 수직으로 굴착하였으나 사면위쪽인 북벽은 비스듬이 내려오다 수직으로 굴착되어 있다. 이는 주거지의 깊이가 깊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추정된다. 상부의 교란이 심하지 않아 비교적 원상이 잘 남아있는 주거지이다.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525cm, 너비 373cm, 최대깊이 70cm이며 면적은 6평이다. 주거지의
내부시설로는 주혈과 벽구, 노지가 확인되었다.
주혈은 벽구 내에서 2기가 확인되며 주혈의 배치형태는 6주식이다. 주주혈의 크기는 지름 30cm정도이며 깊이는 25cm내외이다. 벽구는 4면에 모두 둘러져있다. 벽구는 폭 20cm내외이며 내부에 다시 폭 10cm정도로 파여져 있어 단면형태는 깔대기모양을 하고 있다.
벽구의 남서모서리에 주혈이 2기가 확인되어 출입구의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노지는 북쪽벽면에 치우쳐져 1기가 설치되었는데 평면형태는 원형으로 깊이 10cm정도의 수혈을 파서 사용하였으며 바닥에 무문토기편을 깔아놓았다. 노지의 규모는 40cm내외이다.
주거지내부에서 화재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주거지의 바닥에는 다수의 석재들이 무질서하게 출토되고 연석봉이 4점이나 출토되어 취락내의 특수한 역할을 분담한 주거지라 생각된다.
(3) 8柱式 住居址
해당유구는 1, 22, 23, 24호 주거지이다.
환호의 외부와 내부에 분포하며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면적은 10~12평이다. 바닥은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내부시설로는 주혈, 노지, 벽구가 있다. 노지는 평면형태가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별다른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벽구의 평면형태는 ㄷ자상이며 벽구내부에 직경 20cm내외의 주혈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있다.
ㆍ1호 주거지(8주식, 장방형, 환호바깥)
구릉의 동쪽 사면에 위치하며 환호 바깥에 축조되어있는 주거지이다. 북쪽으로 2호주거지 10m 떨어져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되어있으며 주축방향은 N-17.5。-E이다. 유구는 풍화암반층을 수직으로 굴착하였고 바닥은 생토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사면 아래쪽은 후대교란으로 10cm정도만 남아있다.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717cm, 너비 400cm, 최대깊이 44cm이며 면적은 8.69평이다. 주거지의 내부시설로는 주혈과 벽구, 외구, 노지 등이 있다. 주․주혈의 배치형태는 8주식이며 크기는 25m~30cm, 깊이 40cm이다. 주주혈을 제외한 주혈은 벽구내에서 조밀하게 설치되어있고 노지 주변에서 2개가 확인되었다. 벽구는 평면형태상 ㄷ자상으로 돌아가는데 사면아래쪽은 확인되지 않는다. 벽구는 20cm정도의 폭을 가지고 깊이 10cm내외 단면형태는 U자상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내부에는 지름10~30cm사이, 깊이 15~20cm의 주혈이 34개가 조밀하게 설치되어 있다. 노지는 북쪽에 치우쳐져 1개가 설치되어 있고 완만한 U자상의 수혈을 파서 노지로 사용하였는데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45cm, 폭40cm이다
외구는 주거지의 남동편 모서리에서 사면 아래로 향하면서 설치되어있다.
주거지는 내부에서 확인되는 목탄으로 보아 화재에 의해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빈약한 점은 이주 등으로 인한 자연 폐기 후 화재가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출토유물은 발형무문토기1점 뿐이다.

2) 環濠
취락이 조성되어있는 구릉의 남쪽 사면에서부터 동쪽사면, 그리고 북쪽 사면 일부에 이르기까지 구릉을 감싸면서 설치되었다. 현재 확인된 규모는 전장 141.2m, 폭 2~2.5m 내외, 깊이 50~80cm 내외이며 평면형태는 장타원형이다.
환호는 풍화암반층을 파고 형성되었는데 내부토는 흑갈색 또는 갈색 부식토이며 바닥에는 환호굴착시 제토한 것으로 추정되는 풍화암반토가 들어가 있다. 환호의 단면형태는 ‘U자상이며 최하층에서 반월형석도, 갈판, 박편, 원형석기 및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환호내부의 토층을 살펴볼 때 환호 외부에서 환호내부방향으로 풍화암반토가 급격하게 퇴적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토루가 있다면 환호외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환호는 남쪽 사면 중앙에서 단절되었다가 약 20m 정도 서쪽으로 이격되어 다시 확인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마을로 들어가는 출입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3) 溝
조사구역의 남편사면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길게 형성되어있다. 규모는 현 확인 전장 82m, 폭 3-4m, 최대깊이 2m이며 평면형태는 직선적이다. 배수로의 기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바닥에서 출토되는 백자편 등을 통해 볼 때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의 매몰토는 흑갈색부식토 및 갈색사질토이다.


2. 遺物
천상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청동기시대의 유물로서 석기,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출토된 유물의 총 수량은 163점이다. 출토된 유물중 석기는 석촉, 편평단인석부, 합인석부, 반월형석도, 지석, 미완성석기, 연석, 연석봉, 박편 등이며 토기는 무문토기발, 무문토기호, 홍도등이다.
토기의 경우 19호주거지와 31호주거지에서 내면에서 외면으로 반관통시킨 공열토기편 2점이 출토되었고 구연부 아래 횡선문과 사선문이 시문되어있는 발형토기편이 다수 확인되었다. 구순각목문토기등과 같은 이른시기(전기무문토기의 전반대)의 토기는 출토되지 않았다. 석촉은 일단경식이 대다수이며 2단경식이 22호 주거지에서 일단경식석촉과 함께 출토되었다.
석부의 경우 단인석부과 합인석부의 함께 출토되나 합인석부의 출토비율이 높다. 반월형석도는 7점이 출토되었는데 장주형이 3점이다. 지석은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연석은 환호내부에서 1점이 확인되었고 연석봉은 5점이 출토되었는데 28호 주거지에서만 4점이 출토되어 28호주거지의 용도가 단순주거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Ⅳ. 調査成果 및 意義

가. 최근에 들어 대규모의 취락유적의 조사와 연구가 진전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취락의 구성요소와 취락간의 관계 등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금번의 천상리유적 또한 청동기시대 취락이 위치한 구릉전체를 조사할 수 있어 취락의 구성과 공간활용 등을 밝힐 수 있는 좋은자료라 생각된다. 특히 환호의 확인으로 울산지역의 다른 환호취락과의 연구를 통해 그 관계를 밝힐 수 있는 신 자료로써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이다.

나. 전체조사가 진행되지 못한 관계로 취락의 명확한 구성을 파악하기는 시기상조라 생각되지만 환호의 설치와 출입구의 확인, 그리고 마을 공공의 장소인 광장의 확인, 취락내 의례, 공간의 존재 등에 대한 인식은 조사가 진전됨에 따라 금번조사의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다. 천상리 유적의 시기는 최소 두 개의 기로 나눌 수 있는데, 1기는 청동기시대의 전기 후반대, 2기는 중기의 이른시기로 편년될 수 있다. 비교되는 유적으로는 울주 검단리유적을 들 수 있다.

유적 전경
23, 24, 30호 전경
12호 주거지
28호 주거지
22호 주거지
28호 벽구
22호 벽구
25호 굴지구흔
28호 출토유물
30호 출토유물
환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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